좋은파장 SoundGood/USA

Spokane - Measurement

버블건 2007. 11. 25. 12:31
사용자 삽입 이미지


Spokane

 

Spokane의 4번째 앨범 Measurement 중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Cities

 

느리고 우울한 유영

최 근 슬로우코어(slowcore) 장르는 다소 침체되어 있는 듯 보인다. 대표격 밴드들인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Red House Painters)나 로우(Low) 등이 2000년대 들어서도 앨범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신작 발표는 답보상태이며 슬로우코어 스타일 자체가 현재 록 음악의 트렌드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즉 음울하고 맥없는 록 음악에 대한 반감으로 훅과 그루브에 대한 갈증이 증폭되어서인지 지금은 펑크와 거라지 록이 재등장해 있고 슬로우코어 스타일의 정반대편에 서있는 댄서블하고 거친 로큰롤이 유행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느림과 슬픔의 미학을 표방하며 지하로 숨어든 인디 록 밴드들은 양적으로 더 많아진 듯 하고 감성적인 리스너들의 조용하지만 그만큼 고집스런 취향도 여전하다. 이런 정황에서 스포캔(Spokane)과 같은 밴드는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좋은 사례이다.

미 국 워싱턴주 동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전원도시의 이름을 밴드명으로 삼은 스포캔은 사실 이 도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버지니아주 리치먼드(Richmond) 출신의 3인조 밴드이다. 스포캔은 포크 록 성향의 인디 록 밴드인 드렁크(Drunk)를 이끌고 있는 릭 앨버슨(Rick Alverson)의 솔로 프로젝트 밴드로 시작되어 이미 4장의 앨범을 발표했지만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특히 4번째 정규 앨범인 [Measurement]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조차 철저히 무시당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슬로우코어 씬의 전반적인 침체와도 관련이 있는 듯 하다.

무 거운 첼로 연주가 이끌어 가는 "Plotted Courses"나 "Caution", "Cities"와 같은 곡은 느리고 처연한 아르페지오가 주가 되는 기타 연주, 브러쉬 스틱을 사용해 가볍게 터덕거리는 드럼 비트, 음울한 스트링 라인 등으로 설명되는 전형적인 슬로우코어 넘버들이다. 한편, [Measurement]에는 이들의 전작에서 시도되었던 드림 팝적 실험이 보다 강화되어 있다. "Protocol"과 같은 곡의 후반부를 지배하는 앰비언트적 음향실험과 "Temporary Things"에서 떠돌아다니는 듯한 드론 노이즈 등은 일반적인 슬로우코어 사운드에 비해 다소 이질적인 요소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실험성이 가미된 사운드가 나오게 된 데는 동향 출신 포스트록 밴드인 래브래드포드(Labradford)의 멤버 로버트 돈(Robert Donne)의 참여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Leisure and Other Songs

그 러나 스포캔의 음악은 여전히 드라이한 음향실험보다는 감성적인 선율과 무드로 설명되는 것이 더 타당하다. "Able Bodies"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기타 트레몰로 음이나 로우나 아이언 앤 와인(Iron & Wine), 모하비 쓰리(Mojave 3)를 연상시키는 혼성 보컬 하모니는 따뜻하면서도 친숙하다. 특히, "Addition"과 같은 곡에서 홀로 노래하는 여성 보컬리스트 커트니 보울스(Courtney Bowles)의 목소리는 슬로우다이브(Slowdive)의 레이첼 고스웰(Rachel Goswell)만큼이나 천상의 기운 가득한 미감을 뿜어내고 있다.

스 포캔이 만들어낸 가볍고 여린 음의 부유물들은 중력법칙마저 거스르는 듯 시종일관 떠돌아다닌다. 록 음악에서 그루브와 훅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면 [Measurement]는 지루할 수밖에 없는 음악이다. 이런 측면에서 조금만 임팩트가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들의 고집스럽도록 느리고 성긴 음률들은 자체로 완결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기에 그런 기대는 접는 편이 낫겠다. 광기의 댄스 비트가 만연된 저 현장감 넘치는 플로어 위로 우울한 유영은 계속되고 있다.

 

- 장육 jyook@hite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