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애정 Affection/Film

트로마영화사

버블건 2007. 11. 2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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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마영화사



컬트의 악동들, 혹은 사우스 파크의 아버지
트로마 엔터테인먼트 등 뉴욕 언더그라운드를 "있게" 하는 사람들

19 세기 말 살벌한 갱들이 많이 거주했고, 끔찍한 범죄가 수없이 벌어진 탓에 ‘지옥의 부엌’이라는 살벌한 이름을 갖게 된 타임스 스퀘어 서쪽 끝 헬스 키친 지역. 최근에는 고급 주택가로 개발하려는 시의 계획에 공동체 파괴를 우려하는 주민들이 강력한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어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곳엔 트로마 엔터테인먼트의 빌딩이 있다. 언더그라운드와 관련된 대부분의 건물이 그렇듯 굳이 찾아나서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쳐버릴 만큼 허름한 이곳이 25년 이상 오직 ‘섹시코믹호러영화’만을 만들어온 영화사의 총본부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계단을 따라 벽에는 이들이 그동안 만들어온 영화의 해괴망칙, 유치발랄한 포스터와 이에 화답하는 팬들의 그림이 붙어 있다. 탁 트여 있는 2층 공간에는 기괴한 모양의 특수분장이나 온갖 영화 기자재 등이 널려 있어 오싹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곳은 트로마 영화의 기획, 제작, 홍보, 배급, 해외업무 등은 물론이고 비디오, DVD, 만화책 제작, 캐릭터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벌이는 공간이다.


혹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한국 팬이 있다면 굉장한 컬트광이 아닐까. 국내에도 <트로미오와 줄리엣>(Tromeo & Juliet)을 비롯, <누크족>(Class Of Nuke’em High), <수퍼 히어로>(Sgt. Kabuki N.Y.P.D.) 등 트로마 엔터테인먼트의 작품이 비디오로 출시돼 있긴 하지만 웬만해서는 이들의 영화를 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설사 이들 영화를 봤다 하더라도 트로마라는 제작사의 이름을 기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미국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다. 이들이 만드는 작품들은 결코 대중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색깔을 갖고 있으며 극장에서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을 세상에 알렸으며 계속해서 속편이 제작되고 있는 <유독성 복수자>(The Toxic Avenger, 1984)를 보자. 주인공은 헬스클럽에서 대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는 멜빈이라는 청년. 그는 유독성 폐기물 탱크에 빠진 뒤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괴물로 변신한다. 영화는 환경을 위협하고 세상을 더럽히는 ‘악의 무리’에 맞서 대걸레 하나로 정의로운 싸움을 벌이는 멜빈의 활약을 그려낸다. 또 <수퍼 히어로>(1992)는 힘을 쓸 때만 되면 가부키 분장을 한 것처럼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변신해 악당들을 무찌르는 한 뉴욕 경찰의 이야기이며, <테러 퍼머>(Terror Firmer, 1999)는 ‘한 예술’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예산영화 감독과 제작진이 성적 혼란을 느끼는 연쇄살인범의 집요한 추적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트로미오와 줄리엣>(1996)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을 ‘젖꼭지 피어싱 클럽’으로 바꿔 화끈한 섹스 장면과 함께 보여주는 영화며, <누크족>(1986)은 원자력발전소 주변의 고등학생들이 방사능에 오염돼 갈수록 난폭해져 벌이는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이들 영화에서 일관된 점은 유치하기 그지없는 특수분장을 한 캐릭터들이 별로 진지하지 않은 연기를 펼쳐 실소를 자아내며, 포르노에 가까운 섹스장면이 시도 때도 없이 펼쳐진다는 것. 때문에 할리우드영화에서 활동하는 기성 배우들과 포르노 배우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진풍경도 볼 수 있다. 또 돈을 들이지 않은 티가 팍팍 날 정도의 ‘신발끈 예산 영화’라는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얼핏 싸구려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들 트로마 영화는 일부에서는 열광적인 반응과 진지한 평가를 얻고 있다. 12월1일부터 10일까지 뉴욕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에서 펼쳐진 ‘트로마 회고전’은 대표적인 예다. 색깔있는 독립영화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등 나름의 명확한 기준을 갖고 영화를 선정하는 앤솔로지쪽은 “코미디적인 취향과 호러와 SF 장르의 전통을 보여줬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들의 작업은 B급영화보다 몇 단계 아래로 평가돼왔다”며 ‘독립영화의 선구자’인 트로마의 작업을 재조명하기 위해 이 행사를 개최한다고 소개한다. 이 행사가 아니더라도 이들의 <유독성 복수자>나 <누크족> 등은 환경문제를 비판적으로 조명했다는 평가를, 국제적인 테러리스트들과 미국 여행객의 대결을 그린 <트로마의 전쟁>(Troma’s War, 1997)은 레이건 시대를 통쾌하게 풍자했다는 평을 받는 등 이들의 작품은 표현이나 메시지가 모두 매우 정치적이며 전복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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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 영화의 영향력 또한 만만치 않다. <사우스 파크>의 장본인 매트 스톤과 트레이 파커는 트로마 필름의 열렬한 팬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정직한 태도를 보였던” 이들의 가능성을 인정한 트로마는 그들이 첫 영화 <카니발 뮤지컬>을 찍을 때 재정적인 지원과 배급을 맡아 도와주기도 했다. 스톤과 파커 역시 트로마의 영화 <테러 퍼머>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사우스 파크>의 악동 기질과 트로마의 성향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또 ‘영화 잡식가’인 쿠엔틴 타란티노 역시 트로마의 대단한 팬이라고 한다.

현재 이들이 벌이는 활동은 결코 일반적인 소규모 영화제작업자라면 꿈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세개의 각종 영화관련 인터넷사이트를 운영하고, 97년부터 영국의 방송사 <채널4>에 <트로마의 에지 TV>(Troma’s Edge TV)라는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있으며, 1년의 상당기간 전국과 세계를 순회하며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열고 있고, 다리오 아르젠토의 <스탕달 신드롬> 같은 영화를 전미 배급하는 등등. 또 선댄스영화제가 열리는 동안에는 같은 장소에서 트로마댄스영화제라는 자체 행사를 열고 있는데 이는 갈수록 선댄스가 상업화, 제도화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란다. 트로마처럼 누구나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는 것.

물론 이들 역시 다른 독립 제작사나 언더그라운드 영화작가와 마찬가지로 영화를 배급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특히 뉴욕에서 이들의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지는 꽤 오래된 이야기다. 갈수록 거대해져가는 대기업의 극장 체인망에 이런 마니아 취향의 영화를 끼워넣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가진 전미 순회 상영회 때는 미니애폴리스나 클리블랜드 같은 지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들 지역에서 트로마 영화는 극장에서 정식으로 상영됐으며 관객도 열광적인 성원을 보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도시의 경우 극장으로 향하는 문이 닫혀 있기 때문에 이들이 의존하는 배급 수단은 주로 비디오. 트로마 엔터테인먼트는 자체의 비디오 회사와 DVD 회사를 운영하며 꾸준히 영화를 공급하고 있다.

이 알쏭달쏭 요지경 같은 트로마 왕국에 관해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영화사의 공동창립자이자 현 대표인 로이드 카우프먼(54)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뉴욕 출신이며 명문 예일대 출신인 그는 인터뷰 내내 농담을 던지며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 무척 재미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최근 내가 펴낸 <영화 제작에서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독성 복수자’로부터 배웠다>는 책을 뉴욕의 모든 언론이 크게 다뤘는데 유독 <뉴욕타임스>만 외면했다. 30년 동안 뉴욕에서 영화를 제작한 나를 어떻게 그토록 무시할 수 있냐”며 한참 동안 목소리를 높일 정도로 쉽게 흥분하는 성격의 인물이었다. 그가 처음 영화를 만든 것은 대학 4학년 때. 예일대 기숙사에서 영화광이던 두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지냈던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첫 작품부터 무척이나 예술적이고 자기 도취적인 작품들을 만들기 좋아했던 다른 60, 70년대의 미국 캠퍼스 영화인들과는 달랐다. 그의 첫 작품 <돌아온 소녀>는 세계가 남자와 여자의 나라로 나뉘어져 있는데, 4년마다 올림픽을 열어 세계 지배권을 다툰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담았다. 트로마 엔터테인먼트는 그가 졸업 뒤인 74년 대학후배인 마이클 허츠와 함께 설립했다. 그는 이 영화사에서 만든 대부분의 문제작을 감독했으며 또 직접 출연하기까지 한다.

그는 스스로의 영화에 관해 “형식에서는 실험적이라기보다는 관습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을 사용하지만, 제작-배급 시스템에서는 독립영화”라고 설명한다. 또 그는 트로마의 정체성은 모든 장르를 종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독립영화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는 “이렇게 독자적인 ‘아트’를 추구하며 미국에서 30년간 꾸준하게 영화제작을 해온 독립영화사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트로마 영화의 정치적 색깔은 분명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를 ‘패배자(underdog) 정신’ 또는 ‘독립 정신’이라고 표현한다. 그들 영화의 공통적인 배경은 뉴저지의 트로마빌(Tromaville)이라는 조그만 마을인데, 항상 관료나 대기업, 엘리트들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이를 유독성 복수자 같은 영웅이 나타나 이들 지배계급에 대항해서 이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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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실 그들의 영화는 소수의 마니아들만이 열광하며 호러, 섹스 등의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B급영화 전략을 구사하는 듯해 전형적인 언더그라운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우프먼이 보기에 그들의 영화는 언더그라운드에 속하지 않는다. “트로마 영화는 미국 전역과 일본 등을 포괄하는 팬을 갖고 있으며 연령층도 16∼35살로 상당히 넓은 편이라 언더그라운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독립영화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갈수록 상업화하고 획일화하는 뉴욕에 실망을 느끼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뉴욕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척 비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지금은 관료와 엘리트와 대기업이 뉴욕의 파워, 즉 돈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뉴욕 바깥 지역에서 나는 희망을 느낀다. 노스캐롤라이나, 클리블랜드 같은 곳은 비록 인종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보수적인 경향도 많이 느껴지긴 하지만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막 살아나고 있다. 이곳에서는 언더그라운드 영화도 꾸준하게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그곳에는 열성적인 팬과 의욕적인 제작자들이 있다.”

그는 이런 얘기를 짐짓 심각한 척하다가도 금세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를 통해 뉴욕에서 첫 극장 상영되는 <테러 퍼머>가 왜 중요한 영화인지를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설명하거나, 자신이 만들어낸 ‘유독성 복수자’의 가면을 바라보고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포즈를 취하는 등 자아도취에 빠진 건지 천진난만한 건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아무튼 “나는 내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을 읽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뿐이다”라는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듯, 주위의 평가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는 ‘무데뽀 정신’이야말로 그와 트로마를 현재의 위치에 올려놓는 원동력이었다는 점만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