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로만 Narrative

이청준 - 잔인한 도시

버블건 2007. 11. 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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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도시

이청준



날씨가 제법 싸늘해지기 시작한 어느 가을날 해질녘 그 사내가 문득 교도소 길목을 조그 맣게 걸어나왔다.


  그것은 여간 희한한 일이 아니었다. 근래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일이었다.


  교도소는 도시의 서북쪽 일각, 벚나무와 오리나무들이 무질서하게 조림된 공원 숲의 아래 쪽에 있었다. 그리고 그 무질서한 인조림이 끝나고 있는  공원 입구께에서 2백 미터 남짓한 교도소 길목이 꺾여들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선 교도소 길목과 높고 음침스런 소내 건물들 을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눈에 모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교도소 골목을 오르내리는 것이 면 강아지 한 마리도 움직임이 빤했다.


  하지만 그 길목은 언제부턴가 사람의 눈길을 끌 만한  움직임이 끊어진지 오래였다. 교도 소와 관련하여 길목을 오르내리는 사람의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그것도 교도소를 새 로 들어가는 쪽보다는 몸이 풀려서 나오는 쪽이 더욱 그랬다. 아마 교도소를 새로 들어가는 쪽은 아주 끊어져 없어지지도 않았으리라.  하지만 들어가는 쪽은 언제나  철망을친 차편을 이용하는 있는 터이어서 그것마저 낌새가 분명칠 못했다. 그야  교도소 직원들이나 인근 주 민들이 길목을 지나가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물론 이 길목에서 특별히 사 람의 눈길을 끌만한 움직임은 못  되었다. 이 길목에서 사람의 주위를  끌 움직임이란 역시 형기를 끝냈거나 당국의 사면으로 몸이 풀려 나오는 출감자들이 그것일 수밖에 없었다.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몇해 동안 교도소 수감자들 가운데선 몸이 풀려나 그 길을 걸어 나온 사람이 없었다. 출감자를 내어보내기 위해선  교도소 문이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교도소 안엔 이미 내보낼 죄수가 아무도 없거나, 혹은 그곳엔 아예 종신형의 죄수들만이 수 감되고 있는 그런 감옥이나 아닌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교도소의 마지막 출감자가 언제 마지막으로 그 길을 걸어나갔던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조차도 거의  없었다. 아마도 이 교 도소를 교도관들 가운데서조차 그들이 그 행운의 출감자를 내보내기 위하여 언제  마지막으 로 교도소의 철문을 열었었던가를 더듬어낼 수 있는 소상한 기억력의 소유자는 흔치가 않을 터이었다.


  출감자의 모습이 끊어진 것만도 아니었다. 교도소를 나오는 출감자들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한 다음에도 길목은 한동안 재소자 면회를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로 인적이 심심치를 않 았었다. 한데 언제부턴가는 그 면회객들의 발길조차 이 길목에서 깨끗이 자취를 감추고 말 았다.


  교도소길은 이제 오랜 정적 속에 망각의 길목으로 변해졌고, 그 길목을 걸어나오는 출감 자나 면회객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있는 시간만큼 교도소와 교도소 수감자들의 존재도  바깥 세상에선 기억이 까마득히 잊혀져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교도소 교도관들의 출퇴근 행사는 어김없이  계속 되어오고 있었고, 밤이 면 높다란 감시탑들의 탐조등 불빛들도 그 확고부동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건 이 를테면 그 깊은 세상 사람들의 망각 속에서도 교도소의 존재와 기능은 여전히 엄존하고 있 다는 가차 없는 증거였다.


  그러나 아닌게 아니라 이날 저녁 사내가 마침내 그 길목을 다시 걸어 나온 것이다.


  교도소는 과연 죄수가 없는 유령의 집으로 변해진 것이 아니었다. 종신형 수형자들만이 수감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날 저녁 사내가 그 길목을 걸어 나온 것은 바로 그런 모 든 의문들에 대한 가장 확실한 해답인 셈이었다.


  사내의 뜻하지 않은 출감은 그러니까 교도소와 교도소 길목에선 그만큼 오랜만의  일이었 고 그만큼 눈길을 끄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 나오고 있는 사내 자신의 표정엔 막 상 어떤 새삼스런 감회나 즐거움의 빛 같은 것이 전혀 엿보이질 않고 있었다.


  사내는 언젠가 그가 교도소를 들어갈 때부터  그의 전 재산이었던 낡고 작은 사물보퉁이 하나를 손에 든 채 마치 망각의 길을 헤쳐 나오듯 변화 없는 발걸음으로 교도소 길목을 천 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전쟁 후에 한창 유행하던 염색 야전잠바 윗도리에, 역시 낡고 색이 바랜 홍록색 당꼬바지의 차림새들이 이마 위로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내린 그의 허옇게  센 머리털과 함께 사내의 모습을 더욱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는데, 그의 그런 차림새 나 센 머리털과 함께 사내의  모습을 더욱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는데, 그의 그런 차림새나 센 머리털의 지치고 무기력한 느낌은 사내가 쌍 사람들의 망각 속에 교도소 안에 서 훌쩍 흘려보내버린 그 무위한 세월의 두께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알다시피 사내에겐 물론 동행이 없었다. 그는 함께 출감한 동료 수감자는 물론, 그의 출감 을 맞아주는 가족이나 친지 한 사람 동행자가 없었다. 그의 출감길에 동행이 되어주고 있는 것은 오직 공원 숲 위에서 방금 낙조를 서두르고 있는 저녁 햇살이 지어 준 그 자신의 길다 란 그림자뿐이었다. 그는 마침 그 낙조를 서두르고 있는 공원  숲 쪽의 저녁해를 향해 교도 소 길목을 걸어 나오고 있었으므로 그의 그림자가 등뒤로 길게  끌리고 있었는데, 사내의 좀 구부정한 걸음걸이는 마치 사내 자신이 아니라 그 그림자를 방금 교도소로부터 끌어내어 어깨에 짊어지고 그 길을 무겁게 걸어 나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나 사내는 이미 출기가 가버린 낙조의 가을 햇살마저 눈에 그리 익숙치가 못한 듯 이따금씩 콧잔등을 가볍게 실룩거리며 걸음을 조금씩 지체하곤 하였는데, 바로 그 눈앞을 가로막는 햇살이나 그 햇살에 대한 어떤 부끄러움 때 사내가 교도소 길목으로부터 자신의 그림자를 짊어져내는 일은 더욱 더 피곤하고 힘겨운 일처럼 보이게 하였다.


  하지만 사내의 표정이나 걸음걸이에 어떤 변화가 이는 것은 오직 그 풀기 잃은 저녁 햇살 이 그의 눈앞을 방해해 올 때뿐이었다. 햇빛 앞에서 자신을  망설일 때 이외엔 그의 표정이 나 발걸음에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사내는 그런 표정, 그런 모습으로 조심스러워 보일 만큼 천천히, 그리고 그 구부정하고 변화없는 걸음걸이로 교도소 길목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변화 없던 사내의 얼굴에 비로소 어떤 심상찮은 표정이 떠오른 것은 그가 그 2백여  미터 남짓한 교도소 길목을 빠져나와 공원 입구께에까지 닿았을 때였다.


  새들은 하늘과 숲이 그립습니다.


  공원 입구의 오른쪽으로 한 작은 가겟집이 비켜 앉아 있고 그 가겟집 부근의 벚나무 가지 들에 크고 작은 새장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벚나무 가지들 중의 몇 곳에 그 런 비슷한 광고문구가 씌인 현수막이 이리저리 내걸려 있었다.


  새들에게 날을 자유를 베풉시다.
  자비로운 방생은 당신의 자유로 보답받게 됩니다.


  새장의 새를 사서 제 보금자리로 날려 보내게 해주는 이른바 방생의 집이었다.


  사내는 비로소 긴 망각의 골목을 벗어져 나온 듯 거기서  문득 발길을 머물러 섰다. 그리 고는 어떤 깊은 반가움과 안도감에 젖으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여대었다. 사내의 그 마르고 지친 얼굴 위로는 잠시 어떤 희미한 미소 같은 것이 솟아 번지기까지 하였다.


  사내는 이윽고 다시 고개를 돌려 그가 걸어 나온 교도소 길목을 조심스럽게 한번 건너다보고 나서는 그 방생의 집 쪽으로 길을 건너갔다.


  마침 그때 그 길 건너 가겟집에서는 공원을 찾아온 중년의 사내 한 사람이 흥정을 한  건 끝내가던 참이었다.


  "이제 선생님께선 이 녀석에게 하늘과  숲을 마음껏 날을 날개를 주신  겁니다. 그건 바로 이 녀석의 자유지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이 녀석의 자유를 사신 것은  바로 선생님 자신의 자유를 사신 것입니다…"


  서른이 좀 넘었을까 말까, 하관이 몸시 매끈하게 빨려 내려간  얼굴 모습이 어딘지 좀 오 만스럽고 인색스런 인상을 풍긴데다가 차가운 백동테 안경알 속에서 눈알을 몹시  영민스럽 게 굴려대고 잇는 가겟집 젊은이가 방금 흥정이 끝난 새장을 그 중년의 고객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자, 이제 장문을 열어 주십시오. 그리고 녀석에게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선생님은 선생님의 자유로 오늘의 자비에 충분한 보답을 받으시게 될 겁니다."


  가겟집 젊은이의 그 숙달되고 자신 있는 말투에 비하면 새장을 건네받고 있는 손님쪽이 오히려 거동을 멈칫멈칫 망설이고 있었다.


  길을 건너온 사내가 조심조심 두 사람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출현 으로 두 사람의 일에 어떤 방해거리를 만들고 싶지가 않은 듯 거동을 몹시 신중하게 억제했 다.


  그래 그런지 가겟집 젊은이나 고객 쪽도 사내의 접근에는 별  신경을 안 썼다. 이 허름한 늙은이쯤 그가 어디서 온 누구이든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듯 두 사람 다 그 쪽에는 전혀 아 랑곳을 않으려는 눈치들이었다.


  사내는 결국 자신의 호기심을 숨길 수가 없어졌다. 그는  마치 어른들의 은밀스럼 비밀을 엿보려 드는 어린애처럼 신중하게,  그리고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끝내는 스스로를 억제할 수가 없어져 버린 장난꾸러기처럼 순진하게, 한 발짝 한 발짝 두 사람 곁으로 거릴 좁혀 들 어갔다. 그리고 그 흥정을 끝낸 손님이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모처럼 만의 구경거리를 중단 해 버리지나 않을지 염려된 듯, 은밀하고도 조급스런 표정으로  작자의 거동을 유심히 지켜 보았다.


  "자, 이 녀석아, 그럼 잘 가거라. 장을 나가 넓은 하늘을 날으면서 내 은혜나 잊지 말아라!"


  그러나 이윽고 그 중년의 고객이 장 속의  새에게 자신의 선행에 관한 다짐의 말을 주고 나서 장물을 활짝 열어 젖혔다. 장 속의 새는 금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장문이 열리고 나서도 녀석은 잠시 어리둥절한 눈길로 목짓만 몇차례 갸웃거리고 있더니, 뒤늦게 사정을 깨달은 눈치였다.


  푸르륵


  가벼운 날갯소리를 남기며 녀석이 마침내 조롱을 떠나갔다.


  저녁 노을이 서서히 물들어 오기 시작한 서쪽 하늘로 새는 잠시 드높은 비상을 자랑하는 듯하다가 이내 한 개의 까만 점으로 변하여 공원 숲 그늘로 사라져가 버렸다.


  "고 녀석 그래도 날으는 폼이 법이로군."


  공원 숲 속으로 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다음 중년의 방생자가 한 마디 만족스럽 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젠 그 자신도 어떤 눈에 보이지 않은 날개를 얻어 지닌 듯 가벼운 발길로 가게를 떠나갔다.


  한데 그 중년의 방생자가 가게를 떠나간 다음에도 사내는 아직 몸을 움직일 줄 모르고 있 었다. 그는 자비로운 방생자가 이미 가게를 떠나가 버린 것도  의식하지 못한 듯 그의 거동 에는 아예 아랑곳을 않은 채 새가 사라져간  공원 쪽 하늘에 시선을 오래오래 못박고 있었 다. 새를 날려 보낸 일은 그 새를 사고 간 사람보다도 오히려  사내 쪽에 더욱더 깊은 감동 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새가 처음 하늘을 치솟아 오를 때  사내는 아닌게 아니라 그 어린 애같이 천진스런 즐거움과 억눌린 흥분기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 과 흥분기는 이내 어떤 부러운  감동의 빛으로 맑게 빛나기 시작했다. 사내는 한동안 넋이 빠진 듯 그렇게 새가 사라져간 공원 쪽 하늘만 지키고  있었다. 마음속에 샘솟는 자신의 부 러움을 아무래도 쉽게 지워버릴 수가 없는 듯이 그것은 아마 하늘을 날아간 새에 대한 부러 움일 수도 있었고, 그 새를 사서 날려 보낸 방생자에 대한 부러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것이 어느 쪽이든 사내는 그 부러움을 통하여  새를 산 방생자보다 더 큰 보람과 즐거움과 그리고 길고 오랜 감동을 스스로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내가 이윽고 그 하늘로부터 천천히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
그리나 아직도 뭔가 깊은 아쉬움 같은 것이 남아 있는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사내 의 곁에는 이미 아무도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질 않았다. 중년의 방생자는 공원으로 들어 갔 고, 가겟집 젊은이도 이젠 이미 그의 가게 안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사내는 문득 자신이  당황스러워지고 있는 빛이었다.


  그는 잠시 자신의 행동을 망설이고 있었다.


  가게 앞에 혼자 남겨진 사내는 이제  거기서 더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마치 무슨 덫에라고 걸린 사람같이 좀처럼 그곳을 떠나가지 못했다. 아직도  뭔가 아쉬움이 남은 표정으로 가게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또 한번의 거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혹은 이번에는 그 자신이  가게 주인에게 할 일이 남아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가게 앞을 서성대면서 할 일 없이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마지막 작정을  내리기가 어려운 듯 싶었다. 그는  갑자기 가게 쪽을 향해 발길로 다가서 오다간 이내 다시 몸을 돌이켜 세워 버리기도 하였고, 반개로 가게를 멀어져 가던 발길을 거꾸로 다시 되돌이켜 오는 식의 행동만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고 있었 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새로운 흥정을 시작해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마침 가겟집 젊은이가 다시 문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사내는 그 젊은이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 것만으로도 금세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 럼 초조해 있던 얼굴빛이 활짝 개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한 걸음 젊은이 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하지만 가겟집 젊은이는 도대체 이 초라하고  늙은 사내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는 이제 가겟문을 닫을 참이었다. 젊은이가 나뭇가지에 걸린 새장들을 하나하 나 가게 안으로 떼어 들고 있는 걸 보자 사내가 다시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제 가게를 닫으려고 그러오?"


  사내는 거의 반사적인 동작으로 젊은이에게로 다급히 다가들고 있었다.


  "그래요. 이젠 날이 저물었으니까요."


  사내 쪽엔 거의 눈길도 스치지 않고 잇는 젊은이의 대꾸에 그는 비로소 어떤 결심이 내려 진 모양이었다.


  "그럼, 저…"


  잠시 중지해 주길 바라듯 사내가 재차 젊은이의 주의를 재촉하고 나섰다.


  가겟집 젊은이는 그제야 겨우 새장을 떼어내려던 동작을 멈추고 사내의 얼굴 쪽을 돌아다 보았다.


  "노인장께서 제게 무슨 볼일이…?"


  방금 전에 이미 하루의 일을 마감지으리라 작정한 바 있는 젊은이의 말씨는 흡사 귀찮은 말참견이라도 나무라는 투였다.


  젊은이의 그런 말투가 사내의 그 모처럼 만의 결심을 금세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아니요, 그저… 난 그냥…"


  부질없는 말 실수를 저지르고 난 사람처럼 사내의 어조가 더듬더듬 다시 움츠러들고 있었 다.


  아까부터 당꼬바지 아랫주머니 깊숙이에서 뭔가를  자꾸 혼자 만지작거리고 있던  사내의 손길마저 이젠 동작이 완전히 멈춰 버리고 있었다.


  가겟집 젊은이는 더 이상 사내를 관심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남은 새장들을 하나하나 가 게 안으로 떼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작업이 모두 끝났을 때 그는 마지막으로 가게 문을 닫고 자신도 그 가게 안으로 모습을 거둬들어가 버렸다.


  사내는 아직도 할 일없이 그런 젊은이의 일들을 곰곰이 지켜보고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젊은이마저 가게 안으로 모습을 감춰들어가 버리자 자신이 몹시 쓸쓸해지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그 닫힌 가게 문을 한동안이나 쓸쓸히 바라보고 서 있다가는 이윽고 뭔가 결심 이 선 듯 그 닫힌 문 쪽을 향해 혼자서 두어 번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냈다. 그리고는 마치 하품이라도 한듯한 모양으로 지금 막 저녁 어둠이  내려 깔리기 시작한 공원 숲 쪽을 높이 한번 우르고 나서는 자신도 이제 그 공원 쪽 숲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모습을 섞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튿날 아침.


  공원 숲에 다시 해맑은 아침 햇살이 비춰들기 시작했다. 차가운 가을 냉기가 일렁이는 공 원 숲속 여기저기서 아침 새 울음소리가 낭자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햇살과 새 울음소리 사이로 전날의 사내가 여전히 그 작은 사물 보퉁이를 겨드랑이 밑 에 끼어 안은 채 숲속을 서성대고 있었다.


  아침 산책을 나온 동네 노인처럼 구부정한 걸음걸이로 한가하게,  또는 공원 청소를 나온 늙은 관리인처럼 주위 깊게, 사내는 숲속의 산책길과 길가의 벤치들 근처를, 그리고  어린이 놀이터의 모래판 일대를 구석구석 빠짐없이 살피고 돌아갔다.


  사내는 물론 아침 공원길을 산책하고 있거나 오물 청소를 나온 게 아니었다.


  그는 담배꽁초를 줍고 있었다.


  그리고 길바닥이나 걸상 밑 흙바닥 같은 곳에서, 때로는 어린이 놀이터의 모래판 같은 곳 에서 심심찮게 흘려진 동전닢을 주웠다.


  작업중의 그의 눈길은 더없이 예민했고 동작은 그와 반대로 더없이 유연했다.


  그는 발길에 밟혀 뭉개어지지 않은 꽁초는 한 개도 무심히 스치고 지나가는 일이 없었다.


  뿐더러 벤치 아래나 모래터에 흘려진 동전닢들은 그것이 아무리 깊이 은폐되어지고 있는 것 이라 하더라고 그의 영민한 눈길이 그것을 놓치고 지나가는 실수가 없었다.


  그는 그렇게 담배꽁초와 동전닢들을 주우면서 사람들의 내왕이 잦은 공원 저녁을  빠짐없 이 모두 훑어 내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가 얻은 담배꽁초들은 그의 염색한 야전잠바 의 오른쪽 주머니에, 그리고 동그라미 쇠붙이들은 왼쪽 주머니  쪽에다 따로따로 소중히 간 직해 나갔다.


  한번은 뭇사람의 발길이 흙을 굳히고 지나간 벤치  밑에서 그가 그 굳은 흙 한 덩어리를 조심스럽게 파내어 들었는데, 그는 용케도 그 흙덩이 속에서마저  그의 오른편 주머니 쪽에 간직해 넣을 작은 쇠붙이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사내의 공원길 순례는 그런 식으로 차츰차츰 공원 입구께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내가 마침내 공원 입구에 이르러 그의 순례를 끝냈을 때는 이미 반나절이 다 되 어간 아침 햇덩이가 동편 하늘을 하얗게 치솟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때쯤 해서는 그 작은 쇠붙이만을 골라 담은 왼쪽 주머니 형편도 치렁치렁 제법은 듬직스런 무게가 느껴지고 있었 다.


  사내는 아예 그 왼쪽 주머니 속에다 한 손을 숨겨 넣은 채 이젠 어디가서 시장기나 좀 챙 길 양으로 천천히 공원 입구를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원을 나서려던 사내는 이내 그의 발길이 다시 가로막히고 말았다.


  새 가게가 이미 문을 열고 있었다.


  가겟문이 열렸을 뿐 아니라 젊은이는 벌써 오전 장사가 한창인 듯 보였다. 나뭇가지에 걸 린 새장들 앞에 손님들이 꽤나 붐비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엔 금세 짙은 호기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부터 웬 손님들이 저렇게?


  사내는 이미 뱃속의 시장기도 잊은 채 가게 쪽으로 슬금슬금 발길을 다가가고 있었다. 그 리고는 신기한 듯이 그 가게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객간의 흥정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새장사는 과연 아침부터 성업이었다.


  가게 앞에 몰려 있는 사람들은 그저 구경꾼들이 아니었다. 정말로 새를 사고 방생을 즐기 는 사람들이었다.


  새를 사는 사람들의 표정에 그닥 심각한 대목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가벼 운 기분으로 새를 사고 잠깐의 장난거리로 새들을 날려보냈다.  임금 2백 원의 새값이 그런 놀이의 뜻을 따지기엔 너무도 헐값에 불과하기도 하였다. 새를 사고 날려 보내는 일의 즐거 움은 오히려 곁에서 그것을 조심스럽게 구경하고 있는 사내 쪽이 훨씬 더한 거 같았다.


  손님들이 새장을 열어 새를 날려 보낼 때마다 사내는 마치 철부지 어린애처럼 그 부러움 때문에 넋이 빠져나간 눈길로 날아간 새를 오래오래 뒤쫓곤 하였다.


  젊은이의 새장사는 갈수록 성업이었다.


  때가 아직 아침나절에 불과한데도 손님이 거의 끊일 줄을 몰랐다.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가게로 들어와선  또 아무렇지 않게 새들을 사고  갔 다.


  새들이 자주 찰리고 있으니 사내도 좀처럼 가게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아예 아침 요기를 단념해 버린 채 가게 건너편 나무 그늘 아래로 자리를  잡고 주저앉아 있었다.


  "날개 장사가 썩 잘되누만요, 젊은이…"


  한동안 줄을 잇던 손님들이 한 고비를 넘긴 듯 가게 앞이 잠시 조용해지자 사내는 자신의 야전잠바 주머니에서 꽁초 하나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는 가겟집 젊은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관이 빠른 백동테 안경의 젊은이는 아직도 사내 쪽에 대해선 별반 관심이 없는 태도였다.


  그는 사내의 말에 대꾸를 해오지 않았다. 말대꾸는커녕 전날의 사내가 다시 그의 가게 앞 에 나타나 있었던 사실조차도 미처 알아보질 못한 거동새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내 쪽도 그 젊은이의 반응 따위엔 짐짓 아랑곳을 않으려는 투였다.


  "하지만 예전엔 저런 사람들이 이 가게의 손님은  아니었지. 날개를 사는 사람들이 지금하 곤 전혀 달랐어."


  젊은이가 귀를 기울이거나 말거나 사내는 마치 독백을 하듯이 추근추근 혼자말을  이어가 고 있었다.


  하니까 젊은이는 그제야 뭔가 좀 수상쩍은 낌새가 느껴져오는 모양이었다.


  그가 문득 사내 쫄을 힐끗  돌아다보았다. 그리고는 비로소 그 전날  저녁의 사내가 거기 나타나 있음을 알아차린 듯 표정이 잠깐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젊은이는 그걸 알아차리게 된 게 오히려 귀찮아진 모양이었다.


  "그랬지요, 예전엔 주로 교도소 면회객들이나 새를 샀지요, 하지만 요즘은 수감자  면회 오 는 사람이 있기나 해야지요."


  그는 마치 가게 앞에서 사내를 내쫓아 버리고 싶기라도 한 듯 퉁명스럽게 내뱉고 있었다.


  그게 어쨌든 너 따위가 다 무슨 상관이냐는 투였다.


  하지만 사내는 이제 그만만한 젊은이의 반응에도 얼굴빛이 활짝 밝아지고 있었다.


  "그야 고객이 어느 쪽인들  젊은이한테야 상관이 있는 일이겠소.  젊은이한테 그저 그렇게 날개나 많이 팔려 주면 그만이지. 하지만 그 날개 장사  손님이 예전엔 가막소 수감자 면회 객들이었다는 걸 아는 걸 보니 젊은이도 벌써 그 장사 시작한 지가 꽤나 되는가 보구랴. 가 막소에 면회객 발길이 끊어진 게 아마 7,8년 저쪽의 일쯤  될테니 젊은이도 그러니까 이 장 사 일엔 그만한 이력을 지녔을 테지..."


  젊은이가 새삼 사내의 행색을 내리 훑었다. 그의 말투가 아무래도 좀심상치 않게 들린 모 양이었다.


  "십 년 쯤 되었지요. 한데 노인장께선 어떻게 그런 걸 알고 계십니까?"


  그가 다시 사내에게 물었다. 젊은이가 한차례 사내의 행색을 훑고 있는 동안 그에게선 이 미 이 늙고 초라한 사내의 정체에 대하여 재빠른 판단이 내려지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젊은이의 목소리엔 갑자기 어떤 공손하고도 신중한 경계의 빛이 어리고 있었다.


  "그야 난 젊은이가 이 가게를 맡아 오기 훨씬 전부터 이곳을 자주 지나다닌 사람이니까. 젊은인 기껏 가막소 면회객들이 여길 드나들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보다도 먼저 이 가게를 드나들던 사람들은 실상 저 가막소를 막 풀려나온 가난한 죄수들이었다오. 그야 그 시절에도 가막소를 풀려나온 죄수들은 그리 많은 수가 못 되었으니까 날개를 사는 사람도 많지가 못했지요. 이틀에 한 사람 사흘에 한 사람, 일주일을 통틀어도 이 길을  지나 가막소를 풀려나간 사람이 잘해야 열 명쯤 되었을까 말까… 그러니 그 출감자들이나 날개를 사주는 그 시절일로 해서는 장사가 그리 잘 되어갈 린  없었지. 하지만 날개를 사주는 사람 이 많니 않은 대신 그 시절엔  그 날개값이 무척이나 비쌌다오. 날개 한번  사는 데에 아마 그 시절 가막소 노역으로 반년 일값은 좋이 되었을게요."


  가겟집 젊은이는 이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사내의 이야길 듣고 있었다.


  그러자 사내는 표정이나 목소리가 갈수록 의기양양 신명이 솟고 있었다.


  그는 자랑스러운 듯이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하지만 그 시절 어떻게 그 가막소를 빠져나오게 된 사람들은 누구나 한 마리씩 이 가게에 서 새를 샀지요. 가막소 안에선  뼈골이 빠지게 고역에 시달리면서도 맘놓고  사식 차입 한 번 제대로 못 들여다 먹고 모은 돈으로 말이오. 더러는  출감을 맞으러 온 가족들 주머니를 털어대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지만, 가막소를 나온 대개의 출감자들은 가막소 안에서 힘들게 견뎌낸 몇 달씩의 세월값을 그런 식으로 훌쩍 날려 보내곤 했어요. 그래도 그걸 후회하거나 아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
  "하지만 그렇게 옥살이를 풀려나오는 사람 수가 많지 않다 보니 그 시절엔  어쨌든 손님이 적었어요. 가게의 규모도 이렇게 크질 못했구요. 그래 처음 한동안은 바로 저 가막소를 풀려 나온 늙은이 하나가 여기 나뭇가지들에 조롱 몇 개를 걸어놓고 몇 년을 지냈지요. 그러다 얼마 뒤에 다시 열너댓 살씩 된 그 노인의 손주아이들이 여기서 스물이 넘도록 조롱을 지켰 고요. 그때까지도 물론 지금과 같이 이런 가겟집이나 광고막 같은 것은 있을 리가 없었지요. 그럴 만큼 세월이 좋질 못했으니까. 그저 여기 이렇게 나뭇가지들에다 조롱을 몇 개 걸어놓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오. 가막소의 문이 열리고 몸이 풀려 이 길목을 걸어나 을 사람들을 말이오. 그러다 언제부턴가 이 길목에 가막소를 나오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 어들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그 때문에 이 가게에서 날개를  사주는 사람도 가막소를 풀려나오는 출감자에서 수감자 면회를 찾아온 면회객들 쪽으로 옮겨 갔어요."
  "…"
  "지금은 가막소로 면회를 오는 사람조차 끊어지고 말았으니 할말이 없지만, 젊은이가 그 면회객들이 날개를 사주던 시절이라도 기억을 하고 있다면, 그러니까 젊은인 아마 그 무렵 언젠가 여기로 왔을 게요. 그야 내가 이 가게를 마지막 보았을 무렵까지만 해도 아직 그 수 므 살이 넘도록 장성한 늙은이의 손주녀석들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 때부터 젊은이가 이 가게를 지켜 왔다면  그게 아마 십 년쯤 되었다는 게  맞는 말일 게요. 그런데…"


  한동안 신이 나서 지껄여대던 사내의 목소리가  문득 기가 꺾여 목구멍 안으로  기어들고 말았다. 가겟집 젊은이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고 있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내의 이야기에 짐짓 시들한 표정으로 호기심을  숨기고 있던 젊은이가 그새 새  손님을 한 사람 맞아들이고 있었다.


  사내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그걸로 금세 실망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내 다시 젊은이와 손님 간의 흥정에 새로운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손님은 이내 새 한 마리를 사서 숲으로 날려 보내고 나선 가게를 떠나갔다.


  하지만 젊은이는 아제 다시 사내를 상대해 올 눈치가 안 보였다.


  사내는 젊은이의 관심이 그에게로 되돌아와 주기를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젠 아침 장사가 한 고비를 지나간 탓일까.


  마지막 손님이 새를 사고 간 다음에는 한동안 다시 가게를 들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가겟집 젊은이보다도 사내 쪽이 오히려 시간을 견딜 수 없는 것 같았다.


  사내는 몇 차례 자신의 왼쪽 주머니 속에서 동전 개수를  되풀이 헤아려 보고 있었다. 그 리고 몇 차례의 망설임과 새로운 다짐 끝에 마침내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진 듯 가겟집 젊은이 앞으로 몸을 불쑥 내밀고 나섰다.


  "자, 내게도 한 마릴 내주오."


  젊은이 앞으로 내뻗어 디민 사내의 손아귀 속에  흙 묻은 동전이 한줌 가득 쥐어져 있었 다.


  가겟집 젊은이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멀거니 사내를 건너다보고만 있었다.


  "아마 이것도 한 마리 날개 값이 다 되진 못할게요. 하지만 20원쯤 깎아서 한 마릴 주구려."


  사내는 젊은이 앞에서 동전을 한 닢 한 닢 다른 쪽 손으로 옮겨 세고 있었다.


  사내의 말대로 동전은 10원짜리 꼭 열여덟 닢이었다.


  사내는 그 동전 웅큼을 가게의 돈궤 위로 쏟아놓으며 애원이라도 하듯이 젊은이를 졸라댔 다.


  "자, 어서… 난 실상 어제부터 기다린 사람이오."


  젊은이는 역시 대꾸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사내의 심중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가 말없이 새장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내가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얼굴로 제풀에 그 젊은이가  가리킨 새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가 날려 보내줄 녀석과 눈익힘이라도 해 놓으려는 듯, 또는 그가 녀석을 놓아준 즐거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아껴 갖고 싶은 듯 한동안 망설망설 장 속을 살피고 있었다.


  하더니 사내는 이윽고 결심이 선 듯 새장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장속의 새는 귀엽고 작은 눈알을 몇 차례 민첩하게 굴려대고 나서는 장문을 홀짝 벗어져 나갔다.


  포르륵…


  가벼운 날갯소리를 남기며 공원 숲 쪽으로 조그맣게 사라져가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의 얼굴에 주름투성이의 웃음이 가득 번졌다.


  새의 모습이 아주 시야에서 사라져간 다음에도 사내는 그 누런 이를 드러낸 놓은 채 웃음기로 굳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제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노인장께선 아마…"


  그런 사내의 행색이 젊은이에겐 아무래도 뭔가 마음에 씌어오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이번에는 가겟집 젊은이 쪽에서 먼저 사내의 주의를 건드리고 나섰다.


  "노인장께선 아마 이제 바로 저 교도소를 나오신 게 아니었습니까?"


  젊은이가 갑자기 그렇게 말을 걸어오자 사내는 거의 자신이 송구스러워진 태도였다. 사내 는 이번에도 그 젊은이의 관심을 놓치게 되지나 않을까 싶은 듯 허겁지겁 대꾸를 서두르고 나섰다.


  "그렇습지요. 난 어제, 어제 바로 저 가막소를 나온 몸이오. 가막소를 나와 이리로 곧장 건 너온 셈이지요."


  그는 뭔가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사내의 조급스런 어조에 비하여 가겟집 젊은이의 그것은 아직도 지극히  방관적이 고 사무적일 뿐이었다.


  "어제 출감을 하셨다… 저 교도소에선 근래에 없던 일이로군요… 하니까 노인장께서도 저기 엔 꽤 계셨던 모양이지요? 한 십 년 아니면 십오 년…?"


  "그야 내가 저곳에서 보낸 세월은 햇수론 쉽게 셈할  수가 없을 게요. 이번엔 지내고 나온 것만도 12년은 좋이 되고 남으니까…"


  "그럼 노인장께선 전에도 몇 차례나?"


  "몇 사례 정도가 아니라 평생을 보내다시피 한 거요. 나오면 들어가고 나오면 다시 들어가 고, 이젠 아예 그 쪽이 내 집 같이 되어 있었다오."


  젊은이가 꼬박꼬박 말대꾸를 해오니까 사내는  이제 제법 자신이 자랑스러워지기까지  한 어조였다.


  "대체 무슨 일로 거긴 그렇게 자주 드나드셨나요?"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는 일이지요. 어찌어찌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다시 되 돌아가 있곤 했으니까. 무슨 그런 버릇이 생겼다고나 할까… 아까도 말했지만, 한동안 그런 세월을 보내다 보니 그 쪽이 외려  내 집이나 된 것처럼 편한 생각도 들고 해서… 하긴 첫 번때부터 일이 그렇지 못하게 꼬여들 기미는  있었지요. 그 첫 번 땐 아 글쎄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험한 뱃길을 나갔다 돌아와 보니, 여편네라는 계집년이 그샐 못 참아서 집안에다 샛서방 놈을 들여다 재우고 있질 않겠소. 단매에 년놈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 했지요.  세상 천지에 계집 서방질을 눈감아줄 놈도 없겠지만, 그 샛서방놈이 하필 일정  때 형사 앞잡이 노릇으로 위세께나 부려오던 놈이라… 한데 결과는 년놈의 숨통을 끊어놓지도 못하고 나만 어떻게 가막소 신세가 되어 빌고 말았지요. 그야 이제 와서 지나간 일을 다시 들춰내 뭐하겠 소만, 어쨌거나 그렇게 시작된 가막소살이가 그새 무슨 이력이  붙었던지 나중엔 웬 덮에라 도 걸린 사람같이 가막소만 나오면 한동안 부근을 뱅뱅 맴돌다가 결국은 다시 그렇게 되어 버리곤 했구려…"


  사내는 한동안 신이 나서 지껄여대고 있었다.


  가겟집 젊은인 비로소 뭔가 조금 납득이 가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 아, 그랬었군요. 그래서 노인장께서는 어제 교도소를 나오셔도 아직 이렇게?"


  그가 자신의 추리를 확인하고 싶은 듯, 그러나 조금은 경계의 빛을 머금은 표정으로 사내 에게 물었다.


  하지만 사내는 젊은이의 말뜻을 얼핏 알아치리질 못하고 있었다.


  "아직 이렇게? 아직 이렇게라면 무얼 말이오?"


  사내가 조급하게 젊은이에게 되물었다.


  "노인장께서 어제 교도소를 나오셔 가지고도 아직까지 이렇게 부근을 서성거리고만 계신 이유 말씀입니다. 모처럼 만에 바깥 세상을 나오긴 분이라면  으레 마음이 무척 조급해지실 게 당연한 노릇 아니겠습니까. 집도 찾고 싶고 가족도 보고 싶고… 하지만 노인장게선 아마 기다리는 가족이나 찾아가실 집이 없으신 게 아닙니까?"


  젊은이는 거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냉랭한 어조로 단정해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의 대답은 뜻밖에 완강했다.


  "아니오. 찾아갈 곳이 없다니."


  사내는 거이 대들기라도 하듯 젊은이의 단정을 부인하고 나섰다.


  "난 찾아갈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는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오. 집도 가족도 남부러울 게 없어요. 난 그저 내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게요."


  "아드님요? 아드님을 기다리신다구요?"


  "그렇소. 내개도 고향동네엔 아들이 잇소. 젊은이  못지않게 어엿한 아들놈이오. 그리고 그 놈에게 집이 있어요. 주위엔 탱자나무 울타리가 높게 둘러쳐지고 뒤꼍으론 대밭이 무성하게 우거진 규모 있는 기와집이라오, 시골집이라 울안 땅도 이만저만 넓은 게 아니오. 그게  비록 아들놈의 집이긴 하지만, 아들놈 집이니 내 집이기도 한 게요."


  사내의 어조는 어딘지 필사적인 것이 있었다.


  하지만 가겟집 사내는 여전히 냉랭했다.


  "그럼 노인장께선 어째서 당장 그 좋은 아드님 집을 찾아가시지 않고 여기서 아드님을 기다리신다는 겁니까?"


  젊은이의 입가엔 엷은 웃음기마저 스치고 있었다.


  사내는 그럴수록 표정이나 목소리가 점점 더 엄숙해지고 있었다.


  "녀석과 내가 길을 엇갈리지 않으려는 거라오. 녀석에겐 내가 편지로 출감 날짜를 미리 알려 놨으니까."


  "출감 날짜를 알려 준 아드님은 그럼 왜 날짜를 맞춰 노인장을 모시러 오지 않은 겁니까?"


  "편지가 아마 늦게 들어간 걸게요. 하지만 내  편지만 받으면 녀석은 즉시 이리로 달려올 게요. 그래 내가 길을 엇갈리지 않기 위해서 이러고 여기서 녀석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 오. 녀석이 쫓아왔다가 내가 먼저 길을 엇갈려 집으로 내려가 버린 것을 알면 얼마나 서운 하고 실망이 되겠소. 녀석이 없었으면 난 아직도 저 가막솔 나올 생각도 않았을지 모른다오."


  사내는 자신 잇게 아들의 효심을 단언했다. 하지만 젊은이는  아무래도 사내의 장담이 곧이 듣기지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 생각엔 아마 세월이 썩 오래 걸릴 것 같군요. 하지만 뭐 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아드님이 언젠가 노인장을 모시러 오기만 한다면… 그걸 믿으신다면 기다리셔야겠지요."


  젊은이는 이제 웃음을 참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사내는 아랑곳을 안했다.


  "암, 기다려야 하구 말구. 난 며칠이라도 기다렸다가 아들놈과 함께 고향으로 갈 테니까. 그리고 난 어차피 그 동안 여기서 해야 할 일도 남아있는 처지구."


  "아드님을 기다리는 일 말고 여기서 또 해야 하실 일이 남아있나요?"


  젊은이가 이번엔 거의 장난기 비슷이 묻고 있었다.


  "암 해야 할 일이 있구 말구. 실상은 지금 당장 아들놈이 나타난대도 그 일을 끝내기 전엔 난 이곳을 그냥 떠나버릴 수도  없는 몸이라오. 그일 때문에라도 어차피  여기서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할 형편인 바엔, 그러니까 아들 녀석이 지금 당장 나타나지 않는 게 외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말이오."


  "도대체 노인장께서 그 아드님을 마다하면서까지 여기서 해야 할 일이란 무언데요?"


  "말해도 젊은인 알아듣질 못할 게요. 알아듣질 못할 일은 안 듣느니만도 못할 테니 그 얘 긴 아예 그만두기로 합시다. 젊은인 그저 아들 녀석 때문에 내가 며칠 더 여기서 기다리고 있느니라 여겨 두면 마음이 편할게요…"


  "…."


  "하지만 난 그렇게 기다릴 아들 녀석이라도 하나 두었으니 팔잔 어쨌든 괜찮은 편 아니오.


  그래 저 가막소 안엔 아닌게 아니라 찾아갈 집이나 기다려 주는 일가친척 한 사람 없어  아 예 차라리 가막소 귀신으로 죽어갈 작정을 하고 주저앉아 있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 오. 그 딱한 위인들에 비하면 이 늙은인 그래도 팔자가 무척은 틘 편이지요. 아암 팔자가 틘 편이고 말고…"


  사내는 거듭 자신의 처지를 다행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가겟집 젊은이는 그 사내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가게에 다시 손님 한 사람이 들어서고 있었다. 젊은이는 이미 사내를 버리고 손님을 맞으 러 그 쪽으로 주의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사내도 그러자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이내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머리 속에서 깡 그리 망각을 해버린 듯 가게 쪽 흥정에만 정신이 홀딱 팔려들기 시작했다.


  사내는 아닌게 아니라 자신의 출감을 마중하러 올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게 사실인 것처 럼 보였다.


  그는 정말로 무슨 올가미 같은 것에 발목을 매인 날짐승처럼 공원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발목을 매고 있는 올가미가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그를 공원 근처에서 기다리게 하 고 있는 아들 녀석이 분명할 터이었다.


  다음날 아침도 그는 전날과 같이 공원 숲의 차가운 아침공기 속에서 잠자리를 털고 나왔 다. 그리고 역시 전날과 똑같이 숲속의 산책길과 나무걸상  아래를 하나하나 샅샅이 살피며 꽁초를 모으고 동전닢을 주웠다.


  사내가 그 숲길을 돌아 어린이 놀이터의 모래밭으로해서 공원 입구까지 도착한 것 역시 전날과 다름없이 아침해가 동편 하늘을 하얗게 치솟아 오른 다음이었다.


  이제 그는 새가게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데에도 전날과 같이 주저하는 빛이 별로 없었다.


  그는 공원 입구를 벗어져 나오자 곧바로 새가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갔다.


  가게는 물론 일찍부터 문이  열려 있었고, 젊은이는 이날도 아침나절부터 때없이 밀려든 손님들로 일손이 한찬 바빠 있었다.  가게 앞에 다시 나타난 사내에  대해선 눈길조차 보내 올 틈이 없는 거 같았다.


  사내도 별로 서두를 일이란 없었다.


  그는 차분히 가게 한쪽 나무 곁으로 자리를 잡고 주저앉아 손님들의 흥정을 구경하기 시 작했다. 그는 그 손님들의 흥정이 한 건씩 끝날 때마다 새를 산 사람보다도 더 감동스런 눈길로 오래오래 새를 뒤쫓곤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오정 때가 가까워지면서 한동안 손님의 발길이 뜸해질 기미가 보이자 그는 그 모든 손님들의 즐거움 대신 진짜 자신의 즐거움을 만들고 싶어진 듯, 그리고 그 즐거움 을 아끼고 싶은 시간을 더 이상 참고 기다릴 수가 없어진 듯 이번에도 그 공원 흙바닥에서 주워 모은 동전닢으로 자신의 새를 사러 나섰다.


  "예. 있소. 내게도 한 마리 내어 주시오. 오늘도 날개값은 좀 모자란 것같소마는…"


  동전 웅큼을 내밀고 나서는 사내의 표정은 이제 흡사 약값이 모자란 아편중독자의 그것처럼 뻔뻔스럽고도 간절한 애원기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가겟집 젊은이는 아무래도 좀 어이가 없어진 듯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그 젊은이 앞에 16개의 동전을 또박또박 정확히 세어 건네주고나서 일방적으로 혼 자 흥정을 끝내 버렸다. 그리고 젊은이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새장을 끌어내려 신중하고도 알뜰한 동작으로 안엣 녀석을 내보냈다.


  한데 사내가 새를 내보내 놓고 나서도 뭔가 아직 아쉬움 같은 것이 남은 눈길로 새가  사라져간 공원 숲 쪽을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노인장은 도대체…"


  사내의 모습을 못내 딱해 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던 젊은이가 갑자기 새장수답지 않은 소리를 해오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부질없는 짓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사내는 그러자 비로소 젊은이 쪽으로 몸을  돌이키며 무슨 변변치 못한 짓이라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쑥스럽게 웃어 보였다.


  "그야, 내가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난 가막소 나올 땐 언제나 그랬다오…"


  "하지만 노인장은 어제도 새를 한 마리 사 보내 주지 않았습니까."


  공손한 말투와는 다르게 젊은이는 분명 어떤  경멸 기를 숨기고 있음에 틀림없는 소리로 사내를 계속 추궁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젊은이가 그런 식으로나마 그를 상대해 주고 있는 것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점점 더 말씨가 의기양양해지고 있었다.


  "그야 어저께도 물론 한 마릴 내보내 주긴 했지요. 하지만 그건 내 몫이었으니까.  오늘 사 준 건 내 몫이 아니라오. 오늘은 내 새가 아니라 송 면장 대신 그의 새를 한 마리 사준 거라오."


  "송 면장이라뇨?"


  "아 한 방에 있던 내 친구 말이오. 예전에 저곳을 들어오기 전에  자기 고을 면장을 지낸 작자로 지금도 그 시절 얘길  자주 자랑하곤 하는 위인이죠. 가막소만  나가면 지금도 누구 부럽지 않게 살아갈 집과 재산이 있노라…"


  "그런데 노인장이 어째서 그 분의 새를 대신 삽니까?"


  "그야 그치가 누구보다 몹시  날개를 사고 싶어했으니까. 가막소에 있는 위인들은 누구나 그렇게 한 번씩 날개를 사고 싶어한다오. 그러면서는 위인들은 누구나 그렇게 한 번씩 날개를 사고 싶어한다오. 그러면서 그 날개를 사게 될  날만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꼴들이지요. 그 중에도 그 송면장이란 영감태긴 유난히 더 그걸 기다렸어요. 하지만 처 지가 어디 그렇게 됩니까. 그래 내가 영감태기 대신 새를 한 마리 사주는 거라요."


  "안에선 아직들 새 이야길 하십니까?"


  "하다마다요. 우린 대개 날개를 한 번씩 사본 경험들이 잇는 위인들이니까. 누구나 새 이야 길 하면서 새를 사게 될 날들을 기다리고 있지요. 안에선 바로 새를 산다고 하지 않고 언제부터선가 그저 날개를 산다고들 하지만 말이오…"


  "새를 사고 싶은 사람은 그토록  많은데, 그렇다 교도솔 나오는 사람들은 어째서 전혀 볼 수가 없지요? 왜 그분들은 노인장처럼 이렇게 교도솔 나오지 못하고 있지요?"


  젊은이는 문득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사내에게 묻고  있었다. 수감자들이 감옥을 나오지 못하는 것이 마치 그 수감자들의 책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또는 그 수감자들이 원하기만 한 다면, 감옥이란 언제나 문을 열고 나올 수가 있는 그런 곳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사내는 경우가 뒤바뀐 젊은이의 물음에 조금도 기분을 상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사내는 마치 자신이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것처럼 진지한 표정이 되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연락들이 잘 닿질 않아서 그리 된  걸 거외다. 편지들이 영 집까지 들어가질 못한 모양들이에요. 우린 누구나 자기 형기의 반 이상을 넘긴 사람들이라오. 그리고 그 형기 의 반을 넘길 무렵이 되면서부터 우리는 누구나 열심히 편지들을 쓰기 시작하지요. 알다시피 우리는 모두 고향이 있고 가족이 있는 몸들이니까. 글쎄, 젊은인 우리가 저 안에서 자기 고향과 가족들을 얼마나 서로 자랑들을 하고  지내는지 알기나 하겠소. 날 맞아가다우… 난 이제 형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으니 날 맞아갈 준비를 서둘러다구…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그런 편지를 쓰게 되면 우리는 참으로 얼마나 그를 부러워했으며, 당사자는 또 얼마나 그걸 자랑스러워했는지…"


  "그럼, 집에서들도 곧 연락이 오나요?"


  모처럼 한 마디를 던져오는 젊은이의 물음에 사내는 비로소 뭔가 기가 좀 꺾이면서 천천히 가로젓고 있었다.


  "그건 모르지요."


  "모른다니요?"


  "결과에 대해선 별로 생각들을 안하니까. 결과에 관심을 가지고 그걸 알아보려는 위인도 없구요."


  "가족 중에 누가 서둘러 주어서 가석방 같은 걸 얻어 나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나요?"


  "없었소."


  "하지만 면회를 와준다거나 편지 연락 같은 거라도 닿은 일은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런 일도 없었어요. 가족이 누가 면회를 와준 일도, 편지 답장이 있었던 일도… 하지만 우리는 말을 않는다오. 우리가 저 안에서 생각하고 행하는 일들이란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그걸 거짓말이라고 여기여 드는 사람은 없어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걸 말할 필요도 없는 거요."


  "…"


  "하지만 우리도 한 가지는 알고 있다오. 우리가 보낸 편지가 번번이 고향에 잇는 가족들의 손에까지 들어갈 수가 없다는 걸 말이오. 젊은인 잘 이해가  안 가겠지만 우리가 쓴 편지는 한 번도 고향의 가족에게 제대로 닿아본 일이  없었다오. 그래 일이 그리 된 겝니다…  편지 연락이 안 닿으니 가족들도 우릴 잊어버리고들 있는 거지요."


  "그래 노인장께서도 아드님에게 편지를 쓰셨나요? 그리고 노인장께선 용케도 그 아드님과 연락이 닿아서 이렇게 출옥을 해 나오신 건가요?"


  젊은이는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처럼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갈수록 점점 기가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그야 나도 아들놈에게 편지를 자주 쓰기는 했지만… 내 소식도 역시 아들놈에게까진 아직 닿질 못하고 있는 것 같구려."


  "그럼 아드님하고 연락이 닿기도 전에 노인장은 형기가 끝나 버린 겁니까?"


  "아니, 형기가 다 끝난 건 아니오. 아들놈의 소식만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어 내 힘으로 어떻게 가석방 특사를 얻어 나온 거라오.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다 아들 녀석 덕분인 게지요. 아들놈과 그 아들놈의 고향집이 없었더라면 난 이렇게 나올 수가 없었을 게요. 아들놈과 손주놈들이 보고 싶고, 집이 그리워지고… 난 한동안 아들놈과 아들놈의 집에 대한 꿈만 꾸었다오. 탱자나무 울타리가 우거지고 집터가 시원하게 트이고 게다가 햇볕도 깊고… 그래 난 아들놈과 소식이 안 닿더라도 내가 먼저 녀석을 찾아 나서기로 작정을 한 거라오…"


  아들과 고향집 이야기가 시작되자 사내의 목소리엔 점차 다시 생기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사내는 마음속으로 잠시 그 고향집과 아들 생각에 젖어드는 듯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결국은 그 아들놈에 대한 믿음이 내게 저 가막소를 나오게 한 것이지요. 다른 녀석들은 아마 나처럼 아들놈에 대한 믿음이나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들이 작았을 게요. 그리고는 감 히 가막소를 나올 엄두들이 날 수가 없지요. 하지만 난 어쨌거나 이제 아들놈을 보게 됐어 요. 녀석은 아마 이런 식으로 아비가 가막소를 나오게 만든 걸 몹시도 가슴이 아파하겠지만 서두…"


  "그럼 아드님은 아직 노인장의 출옥 소식도 모르고 있는데 노인장께선 여기 이렇게 무작정 그 아드님만을 기다리고 계실 참인신가요?"


  젊은이의 얼굴엔 서서히 다시 전날과 같은 차가운 조롱기 같은 것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야 나도 언제까지나 여기 이러고 녀석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앴지요. 아들 녀석이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 발로 녀석을 찾아  나서야지… 하지만 아직은 좀더 기다려  봐야지요. 여태까지 소식이 닿지 못했더라도 금명간에 편지가 닿을 수도 있겠구. 녀석이 혹 소식을 맏  달려왔다가 길이라도 엇갈리는 날이면 녀석의 낭패가 얼마나 하겠소."


  "그래 노인장께선 그럼 가막소 친구분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새를 사실 참이신가요?"


  젊은이는 이제 거의 사내를 놀려대고 있는 듯한 어조였다. 그의 그 매끈한 얼굴에 노골적 인 비웃음기가 번지고 있었다.


  사내 쪽도 이젠 대꾸가 몹시  궁색스런 처지로 몰리고 있었다. 그는  젊은이의 말에 얼핏 대꾸를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하다간 이윽고 기가 휠씬  꺾여든 목소리로 어물어물 말끝 을 흐리고 있었다.


  "그야 살 수 있는 형편만 된다면… 녀석들은 그토록 날개를 사고들 싶어했으니까…"


  가겟집 젊은이는 이제 그런 사내의 횡설수설 따윈 귀담이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잔인스 럽게 비웃고 있었다.


  "그러시겠지요, 아마… 노인장의  그 효성스런 아드님이 노인장을 모시러 나타날 때까지 는…"


  사내는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무슨 일로 해선 진 모르지만, 젊은이가 아무래도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그 젊은이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 마치 자기 탓이기라고 한 것처럼 민망스런 눈길 로 한동안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아무래도 자신의 힘으로는 젊은이의 기분을 돌려놓을 방도가 떠오르질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침내 시간을 마련해 주는 도리밖에 없다고 여긴 듯 맥없이 혼자 가게를 떠나갔다.


  사내가 다시 근처로 젊은이를 찾아 나타난 것은 이날도 또 하루 해가 설핏이 기울어든 저 녁 참이었다.


  사내의 얼굴은 아깟번에 맥이 빠져서 가게를 떠나갈 때와는 달리 생기가 훨씬 돌고 있었 다.


  그는 이날 따라 공원 숲 일대를 한차례 더 훑고 온 참이었다. 그의 왼쪽 주머니엔 다음날 아침 수입거리를 미리 거둬 온 동전닢들로 무게가 제법 얹히고 있었다. 사내는 그것으로 젊 은이의 기분을 되돌려줄 사진이 생긴 듯 한쪽  손을 넌지시 주머니 속으로 숨겨 쥐고 있었 다.


  새를 살 작정인 것이다.


  그야 그는 그의 감방 동료들을 위해서 계속해서 새를 사겠노라 젊은이에게 몇번씩 다짐을 했으니까. 그리고 사내로선 또 새를  사 주는 일 이상으로 새장수인  젊은이를 기쁘게 해줄 일도 있을 리가 없으니까.


  사내는 바로 그 젊은이가 맘에 들어 할 일을 눈치로 미리 마련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사내가 젊은이를 찾아 가게로 온 것은  하필이면 사정이 그리 좋은 때가 못 되었다.


  사내가 가게로 돌아왔을 때 마침 가게 안으로 새를 사러 들어온 신사한 사람과 가겟집 젊은이 사이에 심심찮은 시비가 오가고 있었다.


  "전 선생님께 이 새의 소유권을 통째로 판 게  아닙니다. 그 점을 선생님은 분명히 알아두셔야 합니다. 전 선생님께 이 새를 숲으로 날려 보낼 방생의 권리를 팔았을 뿐이란 말입니다. 선생님께서 이 새를 댁을 가져가실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젊은이가 신사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젊은이의 주장엔 상대 쪽 손님도 그에 못지 않게 만만찮은 어조로 맞서고 있었다.


  "나도 물론 새를 통째로 샀다고는 말하지 않았소. 그리고 나 역시 이런 참새 나부랑이를 기를 생각은 없어요. 난 그저 이 새를 집까지 가져가서 아이들과 함께 날려보내고 싶은 것 뿐이란 말요. 그런데 그게 대한테 무슨 상관이 되는 일이오. 여기서 놓아주든 집에 가서  놓아주든 새가 일단 장문을 나가게 되면 댁하곤 이미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 아니오."


  시비의 사연인즉, 새를 산 손님은 굳이 새를 집으로 가지고 가서 놓아주겠다는 것이었고, 젊은이는 또 젊은이대로 집으로는 절대 새를 가져가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젊은이와 손님 사이의 시비는 그런 식으로 아직 한동안이나 더 계속 되어 나가고 있었다.


  "선생님이 새를 사신 이상 그걸 어디서 날려 보내시든 그렇게만 해주시면 전  물론 상관이 없지요. 하지만 전 믿을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 이 새를 댁으로 가져가셔서 그걸 정말로  날려보내 주실지 어떻지 그걸 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선생님께서 이 새를 날려보내시지 않고 기를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젊은이가 얄밉도록 자신 있게 단정하고 나서자 신사 쪽은 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진 것 같았다.


  "젊은 친구가 말이 너무 심하구만.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그래 이 따위 참새 나부랑일 집 에서 기를 사람으로 보여? 그리고 내가 일단  새를 산 이상에야 이 새를 내가 날려보내  주 든, 집에서 기를 작정을 하든 당신이 나서야 할 이유가 무어요."


  그는 함부로 반말짓거릴 섞어대고 있을 만큼 자신의 흥분기를  감추지 못했다. 가겟집 젊 은이는 오히려 그걸 기다리고 있었기라고 하듯 그럴수록 어조가 차분해지며 정중하고  여유 있게 말의 조리를 세워나가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 않아유."


  "그렇지가 않다니?"


  "전 손님들에게 새의 방생권을 파는 것이지 구속을 팔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전 그만큼은 제 새의 자유를 지켜 줄 줄 알고 있습니다."


  "새의 자유라… 그거 참 새장수치고는 기특한 말이군 그래 당신은 그 새의 자유를 지켜주 기 위해서 이렇게 장 속에 새들을 가둬 두고 있구려."


  "그러나 그것은 새들로 인하여 우리 인간들이 보다 크고 보람스런 자유를 누릴 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 우리 인간들의 자유를 위하여 끝끝내 새들을 구속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새는 여기서 놓아 보내야 합니다."


  "그거 참 감동한 만한 얘기로군."


  신사는 차라리 감탄스럽다는 표정으로 젊은이를 향해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물론 젊은이의 이야기에 설복이 되었거나 감동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젊은이를 요량껏 비웃고 있는 중이었다.


  사내는 마침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엉뚱한 시비로 인하여  사내는 이제 젊은이에 대 한 자신의 호감과 우의를 증명해 보일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맞습니다."


  사내는 그냥 참고 볼 수가 없다는 듯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고 나섰다.


  "이 젊은이 말이 맞아요. 아마 난 상관하고 나설  일이 아닐는지 모르지만 사리는 결국 옳게 판가름이 나야 할 듯싶어 얘기요."


  손님과 젊은이는 사내의 갑작스런 참견에 잠시 입을 다문 채 사내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조급히 말을 이어 나갔다.


  "세상엔 아닌게 아니라 새를 제 갈곳으로 놓아 보내 주기보담은 장 속에  가두고 기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아니, 이건 뭐 선생님이 반드시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보아 하니 아마 선생님께는 그 점 믿어도 좋겠어요. 하지만 이  젊은이로 말하면 자기 일을 좀더 분명히 해둬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이 젊은인 자기 새들에게  날개를 얻어 주는 일을 하니 까요. 젊은이가 자기 눈앞에서 새들이 날개를 얻어 하늘을 날아가는 것을 지켜주고 싶은 것 은 열번 백번 당연한 노릇일 겝니다. 그리고 젊은이가 그  일을 분명히 하자면 새를 사가는 사람을 믿고 안 믿고보다도 처음부터 새를 내주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지요."


  사내는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신사를 은근히 나무라고 있었다.


  손님은 차라리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가겟집 젊은이도 이제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더 이상 할말이 없는 듯 멍청스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쳇! 공연한 장난거리에 끌려들어 별 해괴한 연설을 다 듣게 되는구만… 좋고, 그럼!"


  당신은 도대체 뭐길래 그러고 나서냐는 듯 곱잖은 눈초리로 사내를 훑고 있던 손님이 끝내는 간단히 후퇴를 하고 말 낌새였다.


  "내 새를 안 사면 그만일 게 아니오. 안 그렇소, 젊은이? 내 새는 안 가져갈 테니 새값이나 그냥 돌려 주구려."


  손님은 이제 차라리 장난기가 완연한 몸짓으로 젊은이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하니까 젊은이 쪽도 이제 손님과는 쉽사리 의기가 투합해 버린 듯 허물없는 웃음으로 손님을 응대했다.


  "그럼 차라리 그렇게 하시죠. 선생님께서 그걸 섭섭히 여기지만 않으신다면…"


  그는 선선히 새값 2백 원을 되돌려 주었고, 신사는 오히려 그것으로 그의 놀이를 즐긴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게를 떠나갔다.


  둘이서 아웅다웅 다투고 있을 대의 형세에 비해서는 뜻밖에 결말이 싱거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어쨌든 그것으로 만족이였다. 한두 번 개운찮은  눈총을 쏘이긴 했어도 싸움이 그렇게 쉽게 끝난 것은 분명히 그의 참견의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젊은이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아마 그걸로 충분히 기분을 돌리게 될 것이었다.
  사내는 속으로 그렇게 기대했다. 그리고 젊은인 이제부터 그걸로  사람을 대해 오는 태도도 조금은 달라지게 될 수 있으리라.


  사내는 그러자 공연히 자기 기분까지 들뜨기 시작했다.


  미진한 일이 있다면 다만 손님이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새값을 되찾아 돌아간 일뿐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것도 그리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손님을 대신하여 자신이 새를 사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사내는 젊은이에 대한 자신의 우의를 결정적으로 증명 해 보일 생각이었다.


  그는 곧 그렇게 했다.


  그는 새값도 미처 치르기 전에 손님이 방금 되돌려 주고 간 새장문을 열어젖치고 바란 듯 이 녀석을 숲으로 내보냈다.


  "이건 삐줄이 네놈 몫이다. 삐줄이  네놈한테도 내 오늘 이렇게 네놈  몫의 새를 사줬으니 더 이상 삐질 생각일랑 말아라."


  그리고 그 새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그는 그 오후의 소득으로 당당히 새값을 치러보이고 있었다.


  한데 바로 다음이 또 잘못이었다.


  기분이 너무 들뜬 탓이었을까.


  의기양양 새값은 치르고 난 김에 사내가 그만 실수를 한  가지 저지르고 말았다. 그건 별 로 큰 실수는 아니었다. 사내도 미처 그게 자신의 실수가 될 줄은 생각을 못했으니까.  그리 고 그것이 자신의 실수가 되어 버린 걸 알고도 어째서 잘못이 되고 있는지가 얼핏 머리  속 에 헤아려지질 않았으니까.


  "그런데 젊은인 도무지 이 많은 새들을 다 어디서 구해들이고 있는 겐가?"


  사내의 실수는 다만 그 한마디뿐이었다. 한데 다소간 거침이 없는 듯한 사내의 소리에 가겟집 젊은이가 모처럼 만에 천천히 그를 돌아다보았다.


  사내는 무심코 그 젊은이의 눈길을 받다가 표정이 갑자기 움츠러들었다.


  젊은이가 왠지 그의 백동테 안경알 뒤에서 사내를 이윽히 쏘아보고 있었다. 사내가 그에 게 눈길을 비키고 난 다음에도 젊은이의 시선은 좀처럼 사내를 떠날 줄 모르고 있었다.


  그의 시선 속엔 차갑고 무거운 위협기가 숨어 있었다. 그는 화를 내고있는 게 분명했다.


  사내는 비로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자신의 말 가운데에 젊은이의 맘에 들지 않는 대 목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는 자신의 경솔히 새삼 후회스러워지도 있었다.


  "아, 그야 이런 일을 하자면 어디선가 자꾸 새를 새로 구해 들여야 하는 게 당연한 노릇이긴 하겠지요. 난 그저 그 새들을 어떻게 구해 오는 지 그게 좀 궁금해서… 그야 뭐 굳이  내가 알아야 할 일도 아니겠지만서두…"


  사내는 자신의 실수를 변명하듯 젊은이의 눈치를 살펴가며 제풀에 횡설수설 더듬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내는 진심으로 새를 구해 들이는 방법을 자기가 굳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걸 알고 싶어한 것이 젊은이의 비위를 건드리게 된 것인지 어떤지는 아직 도 분명치가 않았지만, 어쨌거나 소용 닿을 데가 없는 일로  해서 그를 화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쉽게 화가 풀리질 않는 얼굴이었다. 그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당황해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사내에게  시선을 계속 못박고있었다. 사내가 마침내는  더 이상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없을 만큼 까 죽어버릴 때까지. 그리고 끝내는  그 젊은이에게 더 이상 화를 내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제풀에 슬금슬금 가게 앞을 떠나가 버릴 때까지.


  젊은이의 기분을 돌려 놓으려던 사내의 노력이 오히려 너무  지나친 탓이었다. 그리고 그 때 사내의 기분이 분별없이 너무 들뜬 탓이었다.


  사내로선 그만 다 된 밥에다 재를 뿌리고 만 기분이었다.


  갈수록 태산으로 사내는 이날 밤 또 한 가지 실수를 거듭 저지르고 말았다.


  이날밤 공원 숲 속에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내는 이날 밤도 공원 숲 속의 한 나무걸상 위에다 옹색한 잠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한데 자정이 지난 지도 한식경이 지난 새벽 두 세 시쯤 되어서였을까. 숲 속의 어디쯤에 선가 심상찮는 인기척 같은 것이 들려오고 있었다.


  사내는 그 소리에 어슴푸레 잠결에서 깨어나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 있던 야전잠바 자락을 밀어냈다.


  한밤중에 웬 전깃불의 환한 빛줄기가 어두운 숲 속을 장대처럼 이리저리 훑고 있었다. 빛줄기는 때로 나뭇가지들의 한 곳에서 곧게 고정되고 한 사내의 그림자가 그때마다 나무 위 로 올라가 빛줄기의 끝에서 열매를 따듯 잠든 새들을 집어내렸다. 잠결에 빛을 받은 새들은 눈먼 장님처럼 옴짝달싹을 못했다. 날개를 처들여 날아 보는 새들도 방향을 못잡고 좌충우 돌하였다. 나뭇가지에 부딪쳐 떨어지는 놈도 있었고 제물에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쳐 내리는 놈도 있었다.


  그림자는 끊임없이 빛줄기를 들이대며 잠든 새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기이하게 손쉬운 새의 사냥법이었다.


  녀석들이 그렇게 다시들 돌아오게 하였군.


  사내는 저절로 탄성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손쉬운 사냥법에 대한 사내의 감탄은 그리 긴 시간 계속될 수가 없었다.


  조용한 어둠 속에 빛줄기가 너무 세찼지 때문이었을까. 한동안 숨을 죽인 채 어둠 속으로 그런 광경을 숨어 보고 있던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문득 가슴이  몹시 떨려오기 시작했다.


  빛줄기가 까닭없이 두렵고, 빛줄기를 조종하고 있는  사내의 그림자가 무턱대고 무서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 볼 것을 엿보고 있는 듯 사지마저 조그맣게 움츠러들고 있었다. 게다가 그 빗줄기는 이제 사내 쪽으로 자꾸만 가까이 거리를 조금씩 좁혀들고 있었다.


  이유 같은 건 알 수 없었지만, 사내는 아무래도 그 빛의 임자에게 그의 사냥이 들키고 있 다는 걸 알게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는 갈수록 두렵고 초조해졌다. 불빛이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들수록 사내의 머리는 자꾸 만 야전잠바 옷깃 속으로 깊이 움츠려 숨어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전깃불의 눈길은 실수가 없었다. 빛줄기가 끝내는 사내의 머리통을 맞혀잡고 말았 다. 동시에 사내의 머리통도 이젠 완전히 야전잠바 깃속으로 모습을 숨겨들고 말았다.


  하지만 한번 사내를 붙잡은 전깃불의 빛줄기는 그를 쉽사리 떠나려 하질 않았다. 그릴 쏘아 맞춘 빛줄기는 사내가 둘러쓴 잠바자락을 뚫고 점점 세차게 젖어들고 있었다.


  사내는 숫제 잠바자락 속에서 눈을 감아 버리고 있었으나,  감은 눈꺼풀위로도 빛은 충분 히 스며들고 있었다.


  이윽고 굵다란 발자국 소리가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는 몇 걸 음 저쪽에서 문득 소리를 죽인 채 한동안 밝은 빛줄기만 조용히 쏘아붙이고 있었다.


  사내는 잠바자락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무서운 빛줄기의 세례를 견디고 있었 다.


  빛줄기는 잠바자락 속의 사내를 거의 질식 상태로 짓눌러 놓은 다음에야 간신히 그에게서 걷혀져 나갔다. 그리고 곧 발자국 소리가 방향을 바꾸며  그에게서 천천히 멀어져가고 있었 다.


  하지만 사내는 이미 뱀의 눈빛에 쐬어 버린 개구리 한가지였다.


  사내는 이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사냥꾼의 뒷 모습 나마 한번 더 몰래 엿보아 두고 싶어졌지만, 실제론 그렇게  몸은 움직여 나설 엄두가 생겨 나질 않았다.


  그는 그냥 그대로 야전잠바 옷자락 속에 눈을 감은 채 발자국 소리가 그의 귓가에서 멀리 사라져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잠을 깨고 일어났을 때 사내는 그 간밤의 일이 꿈이 아니었나 싶어졌다.  하지만 그건 분명 꿈이 아니었다. 그게 꿈이 아니라면 그는 가겟집 젊은이를 화나게 만들 또 하나의 허물을 지녀 버린 것이었다. 사내에겐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물론 고의는 아니었다. 그리고  간밤에는 그의 주위가 제법  용의주도하였기 때문에 사내가 그를 엿보고 있었다는 확증을 붙잡힌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것으로 젊은이를 안심해 버릴 수는 없었다.


  사내는 이날 따라 아침 일을  서둘렀다. 그리고 일을 훨씬 서두른  바람에 여느 날보다는 거의 한 시간 가량이나 일찍 가게로 내려갔다.


  가겟집 젊은이는 짐작대로 간밤의 일에 대해선 아무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가게에는 이날도 아침부터 손님이 붐벼댔기 때문에 젊은이는 미처 그를 괘념할 여가가 전 혀 없었을 수도 있었다.


  젊은이는 오전 장사가 한 고비를 넘기고 나서도 좀처럼 별다른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내는 차라리 그게 더욱 수상하고 불안스러웠다. 사내는 그럴수록  자기 쪽에서 먼저 젊은이의 심사를 다스려 놓는 게 좋으리라 생각했다.


  "내 감방 친구 가운데에 꼼장어란 별명을 가진 늙은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군 사실 나 보다도 훨씬 이 가겔 잊지 못해 했었다오."


  사내는 우선 젊은이가 맘에 들어할 소리로 그의 새장사 일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그 작잔 허구한 날 언제나 이 가게에서 새를  사게 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날을 위해 끊임없이 편지를 쓰고 자식놈의 면회를 기다렸지요. 가막소 안 사람들이 누구 나 다 그렇긴 하지만 그 늙은이야말로 정말로 이 가게에서 날개를 한 번 사보는 것이  누구 보다도 큰 소망이었으니까. 그런 가엾은 늙은이들에겐 젊은이의 가게가 바로 가장 소중스런 꿈이요 희망이지 뭐겠소."


  사내의 칭송에도 젊은이는 아직 대꾸를 보내 올 기미가 안 보였다.


  사내는 젊은이의 대꾸가 있거나 말거나 참을성 좋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아마 난 언젠가는 그 늙은이 몫으로도 새를 한 마리 사줘야 할 게라요. 늙은인 그렇게 새를 사고 싶어했는데도 그 소망을 끝내 이뤄볼 수가 없게 되고 말았지 않았겠소. 염감쟁이가 글쎄 운도 없이 2년 전에 벌써 저 가막솔 죽어 나가고 말았지 뭐겠소. 죽은 넋이나마 늙은 일 위해서 내가 대신 새를 한 마리 사줘야 도리일 것 같아요… 하니까 죽은 사람 남은 사람 해서 아직도 좋이 열 마리는 더 사줘야 할 겐가… 하지만 이제 뭐  가막솔 풀려 나온 몸이 그만 수고쯤은 대신해 줘야지. 암, 그만 수고쯤 대신해 줄 수가 있어야구 말구…"


  새를 사준다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젊은이에겐 가장 맘에 들 소리임이 분명했다.


  사내는 그 젊은이 앞에서 지혜를 다해 그를 꼬드겼다.


  젊은이는 아직도 역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사내의 지껄임은 도대체 들은 체도 않고 이는 얼굴이었다.


  가끔 가다 히뜩히뜩 사내 쪽을 흘겨보고 있는 눈길엔 그리 보아 그런지 아무래도 어떤 심상찮은 경계심 같은 것이 숨겨져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런 낌새나 어림짐작만으로 젊은이가 간밤의 일을 되새기고 있다곤 할 수 없었지만, 사 내는 전날의 허물도 있고 해서 이날따라 젊은이가 끝끝내 입을 다물어 버리고 있는 것이 못 내 불안하고 꺼림칙스러웠다.


  사내는 다시 기가 꺾여 한동안 궁리에 부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다 사내는 마침내 한 가지 자신의 불찰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오늘은 어째서 여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질 못했을꼬…
사내는 여태까지 새를 사지 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난 것이었다. 사내는 그 사실뿐만 아니 라 그의 가막소 친구들을 위해서까지 새를 사겠노라 몇 번씩 맹세를 해 보였으면서도 이날 따라 정작 젊은이에게서 새를 사준 것은 한 마리도 없었다.


  사내는 그런 자신이 조금은 이상했다.


  그는 이날따라 새를 한 마리도 사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런 자신을 깨닫고 나서도 여 느 날처럼 그 새를 사는 일에 도무지 신명이 나질 않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이제 자신의 기분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그 말이 없는 젊은이 앞에 스스로 자신을 위압당하고 있었다. 자신의 기분이야 어찌 되었든 그는 이제 젊은일 위해서라도 새를 사줘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내는 그럴수록 더욱 기분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이건 녀석들을 휘하는 노릇이기도 하니까. 아암, 내가 언제 젊은일 위해서 새를 샀던가. 이건 모두가 녀석들을 위하고 새를 위해서 하는 일이지.


  사내는 마침내 결심을 하고 주머니  속에서 동전닢을 세었다. 그리고는 곧  가게 안 금고 위에다 그것을 쏟아놓았다. 이날은 사정이 새값을 깎을 형편도  못 되었지만 용케도 동전닢 이 스무 개를 넘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 지독한 왕릉지기 염감이 되겠군."


  사내는 머리 속에 차례를 정해 둔대로 잠시동안 그 왕릉도굴을 일삼다 들어왔다는 남도 사투리의 늙은이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심경으로 조롱문을 열어 새를 내보냈다.


  그래도 젊은이는 도무지 아무런 참견이 없었다. 사내가 새를 사겠노라 동전을 건넬 때도 젊은이는 그저 남의 일을 대신하듯 냉랭한 눈길뿐 표정이 조금도 달라지질 않고 있었다.


  사내는 새를 사고 나서도 기분이 조금도 나이지질 못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가게에서 버텨내고 있을 기력이 없었다. 가게에 할 일이 남아있는 것 도 아니었고, 더 이상 무슨 소릴 지꺼려댈 마음도 없었다.


  그는 이윽고 그 얼음장 같은 젊은이의 침묵을 뒤로 한 채 가게를 떠갔다.


  가게를 떠나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지치고 무겁게 느껴졌다.


  사내는 이날 밤도 그 공원 숯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불빛에 쫓기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장대처럼 빛줄기가 곧게 뻗히고, 그 빛줄기를 얻어맞은 새들이 나뭇가지들 위에서 낙엽처럼 우수수 땅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빛줄기는 사내의 잠자리를 찾아 밤새도록 이리저리 숯 속을 헤매었다.


  사내는 안타깝고 초조했다. 그리고 두렵고 조급했다. 빛줄기는 때로 그의 야전 잠바 옷자락 위로 사정없이 그를 찌르고 드는가 하면, 때로는 또 엉뚱스럽게 그를 놓치고 부근 숲 속 을 미친 듯이 헤쳐다니곤 하였다.


  그는 쫓지다가 붙잡히고 붙잡혔다간 다시 쫓기고 하는 악몽 속에서 날을 훤히 밝히고 말 았다.


  사내는 그러니까 실제로 그 전기불의 불빛을 본 건 아니었다.  그는 그 빛줄기의 꿈을 꾼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잠자리를 일어났을 때  사내는 머리 속이 온통 남의 것처럼 멍멍했다. 그는 자리를 일어나고 나서도 날마다 계속해 온 아픔 일은 생각조차 해보질 않았다. 아침 일 생각이 났다 하더라도 그럴 만한 기력이 남아 있질 못했다.


  그는 그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우연히 한동안 아침 숲 속만 지키고 앉아있었다. 이 날사 말고 그 흔한 새소리조차 귀에 들려오지가 않은 것 같았다.


  사내는 아침 햇덩이가 동편 하늘을 하얗게 치솟아오른 다음에야 간신히 몸을 움직이기 시 작했다. 그러나 그는 이날 아픔 끝끝내  그 동정 줍기를 단념해 버린 채  그 길로 허정허정 가게 쪽으로 내려갔다.


  가게는 이미 문이 열려 있었고, 여느 때 못지않게 손님도 붐볐다.


  하지만 사내는 이제 새를 사지 않았다. 동전을 줍지 않았으니 새를 살수도 없었지만, 그는 그걸 별로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제 젊은이의 눈치를  살펴가며 그에게 굳이 말수작 을 건네 보려는 기미도 안 보였다.


  그는 그저 그렇게 가게 맞은 편에 우연히 주저앉아 붐비는 손님들만 구경하고 있었다. 그 리고 한 낮이 가까워 오면서부터 손님들의 왕래가 한 고비를 넘기자 사내는 자신도 가게 앞 을 떠나갔다. 그가 그 가게 앞을 찾아올 때와 똑같이 지치고 무거운 걸음걸이로. 그리고  그 것으로 사내는 이날 저녁 어스름이 공원  일대를 뒤덮어올 때까지도 그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사내가 다시 젊은이의 새 가게 앞에 지치고  남루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튿날 아침 그 맘 때쯤 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이날도 새를 사지 않았다. 젊은이의 눈치를  살펴가며 말수작을 건네오는 일 도 없었다. 그는 이날도 그저 전날처럼 그렇게 할 일없이 손님들의 거래를 구경하고 있다가 오정이 지나고 가게가 좀 한가해지는 기미가 보이자 그 길로 그만 다시 자리를 일어서버렸 다.


  사내의 거동은 며칠 동안이나 계속 그런 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그 가게를 찾아올 때와 똑같이 지치고 피곤한 모습으로 말없이 가게를 떠나가곤 하였다.


  하니까 이번에는 오히려 가겟집 젊은이 쪽에서 뜻밖의 태도로 나오기 시작했다.


  "노인장을 모시러 올 아드님은 아마 찻길이 막혔거나 길을 거꾸로 돌아서 버렸거나  한 모 양이지요."


  어느 날 아침 가게가 잠깐 조용해진 틈을 타서 가겟집 젊은이가 문득 사내에게 말했다.


  "제 기억으론 노인장이 가막소를 나온 지도 벌써 한  주일은 넘은 줄 아는데, 아드님은 어 째서 여태도 소식이 감감하지요?"


  할일없이 날마다 가게 부근을 서성대며 장사 거래만 지켜보고 잇는 사내의 거동이 젊은이 에겐 그렇게 신경이 쓰이고 있었을까. 아니면 젊은이는 이제 새도 사주지 않는 사내의 존재 로 하여 자기의 상사에 실제로 어떤 곤란을 겪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젊은이는 이날부터 갑자기 작전을 바꾸어  사내를 비웃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보나마나 그의 가게 근처에서 사내를 멀리 쫓아버리기 위한 음흉스런 계교가 분명했다.


  "뭣하면 다시 편지를 한 장 써볼 수도 잇지  않겠어요. 아마 노인장의 편지가 아직도 아드님께 닿질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아드님의 시골집  주소가…"


  젊은이는 사내가 새를 사주지 않는 데 대한 원망의 기색은 손톱만큼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될수록 사내가 난처해질 수리들만을 골라서 그를 괴롭게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결국은 사내 스스로가 견디질 못하고 가게를 떠나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아드님을 기다리신답니다. 아드님이 시골에 궁전을 지어놓고  염감님을 모시러 오시는 중 이랍니다.


  그는 때론 새를 사러 들어온 손님을  상대로 해서까지 그렇게 무참스럽게 사내는  비웃고 무안을 주었다.


  어디 만큼 왔나, 고개만큼 왔지… 영감님은 날마다 효자 꿈에 행복하시지요.


  사내는 그러나 그런 젊은이의 비웃음을 아랑곳하려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젊은이 의 공박에 할말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주위를 짐짓 외면해 버리곤 하였다. 젊은이가 정 그를 못견디게 매도하고 들 때면 차라리 그 젊은이의 얕은 소갈머리가 가엾어 죽겠다는 듯 슬픈 눈길로 그를 한참씩 건너다보고 있다가는 조용히 혼자 한숨을 짓고 말 뿐이었다.


  하면서도 사내는 좀처럼 젊은이의 새 가게를 떠날 생각을 않고 있었다. 아니 그는 젊은이 의 그런 버릇 없는 공박 따위로 가게를 아주 떠나 버릴 처지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겐 아직도 할 일이 남아있었다.


  '녀석들에게 모두 새를 사야… 그래도 녀석들에게 빠짐없이 모두 한 마리씩은 새를 살 수 가 있어야…'


사내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곤 하였다. 그는 아직도 가막소안에 남아 있는 친구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가엾은 친구들을 위해 새를 사지 않고 혼자 서 이곳을 떠날 수는 없다고 몇 번씩 자신의 결심이 다짐했다. 그는 그저 지금 당장은 새를 사는 일이 달갑게 여겨지지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새를  사더라도 전날처럼 즐겁거나 기분이 가벼워지질 못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것도 그저 그 빌어먹을 잠자리의 악몽 때문일 거라 자신을 변명했다. 밤마다 그를 괴롭혀대고 잇는 빛줄기의 꿈만 꾸지 않게 되면 그는 다시 기분이 회복되어 새를 즐겁게 살 수 있으리라 자신을 기다렸다. 도대체가 새들이 낙엽처럼 빛을 맞고 떨어져내리 는 악몽이 계속되는 동안은, 그리고 그 빌어먹을 새들이 어째서  이 공원 숲을 떠나지 못하고 자꾸만 다시 조롱 속으로 붙잡혀 돌아오는지, 그런 사연을 석연히 이해하지 못하고는 새를 다시 사고 싶은 생각이 일어오질 않았다. 그건 마치 어린애들 숨바꼭질과도 같은 어리석은 장난일 뿐이었다.


  한데 그러던 어느 날, 사내에겐 또 한 가지 이상스런 일이 일어났다.


  사내는 이날 밤도 그 고원 숲 벤치 위에서 추운 새우잠을 견디고 있었는데, 자정을 한 시 간쯤이나 지난 무렵이었을까, 예의 전기불?이 다시 공원 숲 속을 훑어대기 시작했다.


  이번엔 물론 꿈이 아니었다. 실제로 빛줄기를 앞세운 밤새 사냥이 시작된 것이었다.


  사내는 벌써부터 까닭을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사지가 움츠러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행스럽게도 전번날 밤과는 사정이 훨씬 달랐다.


  빛줄기가 아직 사내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이날 밤은 그 밤새 사냥꾼이 제 편 에서 미리 사내의 잠자리를 피해 주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불빛은 좀처럼 사내 쪽으로 다가들 기미를 안 보이고 있었다. 사내와는 한참 거리가 떨어 진 숲들만 이리저리 분주하게 휘저어대고 있었다. 불빛을 맞은  밤새들이 낙엽처럼 어둠 속 을 휘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불빛은 거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거 같았다.


  하지만 이미 졸음기가 말끔 달아나 버린 사내는 모른 체하고 다시 잠을 청할 수도 없었다.


  그는 이윽고 야전잠바 옷깃을 들추고 천천히 벤치 위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는 차분한 손짓으로 야전잠바 주머니 속을 뒤져 꽁초 한 대를 찾아 물었다.


  사내가 그 야전잠바 옷깃으로 불빛을 기라며 입에 문 꽁초에다 막 성냥불을 그어 붙이려 던 순간이었다.


  후루루!


  어둠 속 어느 방향으론가부터 느닷없이 사내의 잠바깃 속으로 날아와 박혀드는 것이 있었다. 답뱃불을 붙이려다 말고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  손에 든 성냥불부터 날To게 꺼 없앴다. 그리고는 그의 가슴께 잠바 깃 속으로 박혀든 물체를 재빨리 더듬어냈다.


  사내는 이내 물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다름아니라 그것은 방금  숲속의 불빛에 쫓겨 온 한 마리의 새었다.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이 손에 닿을 때부터 사내는 벌써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옷깃 밖으로 끌려나온 새는 두려움 때문이지 가슴이 몹시 팔딱거리고 있었다. 사내가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 옷자락에 성냥불을 켰을 때 녀석은 그 불빛을 보고 달려든 게 분명했다.


  "빛에 쫓긴 녀석이 외려 또 불빛을 보고 덤벼들다니… 역시 새 짐승이란…"


  사내는 분별없는 행동이 희한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내의 그런 생각이 오히려 오해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사내는 잠시 녀석을 어떻게 해주어야 좋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녀석을 금세 그냥 그대로 놓아 보낼 수는 없었다. 녀석은 몹시  겁을 먹고 있었다. 빛줄기에 쫓긴 녀석이  사내에게서 또 한번 놀라고 있었다. 놀란 녀석을 무작정 다시 어둠 속으로 달아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녀석에게 좀 안심을 시켜서 놓아 주기로 작정했다.


  그는 조심조심 녀석을 한쪽 손바닥 위로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가볍게 녀석의 등덜미를 누르고 있었다. 사내는 그렇게 한동안 숨소리마저 죽인 채 녀석의 동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은 별반 사내의 손아귀로부터 몸을 빼내려는 움직임이 없었다. 사내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한동안 그 손아귀 속에서 가슴을 조용히 팔딱거리고 있었다.


  하더니 녀석은 이윽고 그 움직임이 전혀 없는 사내라 안심이 되어 버리기라도 한 듯 작은 부리로 손바닥을 콕콕 쪼아대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두 손바닥 사이로 조 그만 머리를 내밀고는 갸웃갸웃 조심스럽게 어둠 속을 살피기 시작했다.


  사내는 이제 안심이 되었다. 이젠 녀석을 보내 주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녀석이 놀라지 않도록 위쪽을 누르고 잇던 손바닥을 가만히 떼어내렸다.


  한데 이 때도 한번 희한스런 일이 일어났다.


  녀석이 사내의 손바닥 위에서 달아날 생각을 않고 있는 것이었다. 녀석은 마치 등뒤를 누르고 있던 손이 걷혀져 간 것도 알지 못한 듯 고갯짓만 계속 갸웃거리고 있었다.


  사내는 갈수록 기이한 생각이 더해갔다. 사정이 그쯤 되고 보니 사내는 더욱 거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좀더 녀석을 보는 수밖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는 무작정 녀석을 기다렸다. 녀석이 좀더 안심이 될 때까지 사내는 끈질기게 자신을 견디었다. 조마조마하면서도 기이한 생각이 그를 그렇게 견딜 수 잇게 하였다.


  녀석은 마침내 완전히 안심이었다. 사내의 손바닥을  녀석은 마치 나뭇잎쯤으로나 여기는 모양이었다. 손바닥을 콕콕 쪼아대기도 하고 사내를 갸웃갸웃 건너다보기도 하면서,  손바닥 을 떠날 생각은 조금도 없는 놈 같았다.


  안되겠다 싶었다. 사내는 한번 더 녀석을 시험해 보기로 작정했다. 사내는 녀석이 너무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런 잔기침 소리로 주위를 잠깐 건드려 보았다.


  하지만 녀석의 반응은 사내를 더욱더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사내의 그  잔기침 소리에 녀석은 아닌게 아니라 잠깐 동안 주의가 쓰이는 듯 꽁지를 간들간득 깐닥거리고 잇더니, 이 번에는 숫제 사내의 무릎께로 자리를 홀짝 내려앉아 버리는 게 아닌가.


  사내는 차라리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사내는 이제 그것으로 그간에  일어난 모든 일들의 사연을 알  것 같았다. 녀석도 필시 사내와 미리부터 낯이 익어  있었던 놈이 분명한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녀석은 처음부터 사내를 알아보고 그를 찾아든 게 분명한 것이었다.


  "그래, 이 녀석아, 이제 알겠다…  네놈은 필시 나한테서 날갤  얻어 숲으로 돌아온 녀석이 분명하였다…"


  사내는 다시 두 손으로 천천히 녀석을 곱게 싸안아 들었다. 그리고는 마치 녀석 쪽에서도 그의 말뜻을 아이들을 수 있는 듯 중얼중얼 혼자서 속삭이고 있었다.


  "나 네놈의 믿음을 안다. 그래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믿으며 한 가족이 되는 게지. 넌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저 아래 가겟집 젊은이 그 사람도 그렇겠구. 글쎄, 너 같은 야생의 날짐승도 이렇게 숲을 떠나지 못하는 간단한 이치조차 깨우치질 못했구나…"


  숲 속을 휘저어 대고 있던 빛줄기는 어느새 산을 내려가고 말았는지 주위가 온통 잠잠해 져 있었다.


  사내는 이윽고 다시 벤치 위로 천천히 몸을  뻗어 누우면서 녀석을 싸안은 그의 두 손을 소중스럽게 가슴위로 얹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손바닥 안에서 따뜻한 깃털을 부드럽게 꼼지락거리고 있는 녀석에게 귓속말을 하듯 낮게 속삭였다.


  "넌 오늘 밤 나하고 여기서 이렇게 함께 지내는  게 좋겠구나. 숨길이 좀 답답하긴 하겠지만, 그 대신 내가 춥게는 안할 테다. 그야 내가 잠이 든 담에는 너 좋은 대로 하겠지만 말이다…"


  이튿날 아침 사내가 잠이 깨였을 때 새는 물론 자취가 없었다.


  하지만 사내는 이날 아침 어느 날보다도 기분이 가벼웠다. 꿈을 꾸지 않은 밤잠이 어느 날보다도 편했던 것 같았다. 숲속을 쏟아져내리는 낭자한 새소리들도 새삼 유쾌하게 들리고 있었다.


  그는 마치 간밤의 새소리를 찾아 가려내고 있기라도 하듯 아침 한기도 잊어버린 채 한동 안 그 새 울음소리에만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뒤늦게 기동을 서두르며 자리를 벌떡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모처럼 만에 동전 줍기를 다시 시작한 사내는 공원 앞의 그 새가 가게 젊은이에 대해서도 종래의 호감을 완전히 회복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여기서 이렇게 한 하늘을 머리 위에 이고 사는 우리는 어차피 모두가  한 가 족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구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전 장사에 한창 정신을 빼앗기고 있던 젊은이가 잠시 숨을 돌릴 만 한 짬이 나는 듯하자 사내는 이때라 싶은  듯 젊은이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호감을 넌지시 다짐하고 나섰다.


  "아, 글쎄 새를 다루는 젊은이의 일에 사람의 정분이  깃들지 않을 수 없는 바에야 젊은이 에게 그 날개를 얻어 날아가는 새짐승들 또한 젊은이의 인정이 안 통할 리 없겠지. 그래 그 게 사람과 새짐승들 사이의 일이라 하더라도 그런 정분이 오가다 보면 서로가 어느새 한 가 족이 되어갈게 당연한 이칠 게요. 젊은이나 새들은, 그래 결국 그런 정분의 끈으로 이어져서 이 공원 안에 함께 살고 있는 한 가족들이란 말이 될 게요…"


  가겟집 젊은이는 그러나 사내의 돌변한 태도가 오히려 수상쩍게 느껴진 듯 이날도 좀처럼 그를 응대해 올 기미가 없었다.


  사내는 좀더 노골적으로 젊은이에게 매달리고 들었다.


  "아, 그러니까 이건 다른 얘기가 아니오. 생각하기에 따라선 때가 좀 너무 늦은  감도 있지 만, 이 늙은이도 이젠 댁들과 같이 이 공원 가족이 되자는 거외다.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이 늙은이도 이젠 실상 젊은이나 새들과는 한 가족이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를 일이라오. 난 다 만 젊은이도 이제 좀 아량을 가지고 그걸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그런 얘기요. 일테면 젊은이 나 젊은이의 새들에 대한 나의 정분이랄까 이해랄까 그런 내 마음을 말이오."


  가겟집 젊은이는 그러나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사내는 그 젊은이 앞에 자신의 의사를 좀 더 분명하게 증명해 보이고 싶은 어조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 난 오늘부터 다시 새를 살 요량을 세웠다오. 그야 그런 일은 아직도 저 가막소 안에 남아있는 위인들에 대한 내 마음의 빚값으로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게 다 뉘 좋고 매부 좋고 한다는 일 아니겠소. 젊은인 새를 팔아 좋고 난 위인들의 소망을 풀어주어 좋고,  새들 은 날개를 얻어 좋고. 거기다 그렇게 서로가 진심을 익히다 보면 우린 모두가 함께 너나없는 한 가족이 될 수 있게 되어 좋고…"


  그러고 나서 사내는 다시 젊은이를 안심시키듯 혼자서 계속 지껄여대었다.


  "하지만 뭐 한 가족이다 뭐다 하니까 내게 무슨 딴 궁리가 있어서 그러나 의심을 한 건덕 진 없어요. 그야 솔직하게 말하면 난  그 동안 내 아들 녀석이 날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는 거나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었다오. 녀석이 정말 제 애빌  잊고 언제까지나 이런 곳을 헤 매게 버려둘 참인가 싶어 은근히 혼자 낙담스런 생각이 솟기도 했었단 말이외다…"


  "…"


  "하기야 어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진 그 편이  오히려 다행이었는지도 모르지요. 내 언젠가 이곳을 쉬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녀석을 기다리는  일밖에 다른 일 한 가지가 있노라 말한 적이 있지만, 그 일이 아직도 끝나질 않았거든. 젊은이도 이젠 대략 짐작이 가리라 믿어  하 는 말이지만, 그게 바로 내가 가막소 위인들의 새를 사주는 일 아니었겠소. 녀석들에게 새를 다 사주기 전에는 아들놈을 만나도 난 이곳을 떠날 수가  없어요. 그 아들놈이 나타나지 않는 건 그런대로 다행이라 말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거야 물론 내 쪽 사정인 게구, 녀석이 아직 날 찾으러 와주지 않은 건 제일을 제가 외면하는 격 아니겠소. 난 그게 섭섭했던 게요. 은근히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었구… "


  "…"


  "하지만 이 늙은이의 주책없는 생각도 사실은 모두가 어제까지 뿐이었다오. 오늘은 생각이 달라지고 말았어요. 젊은인 아마 이해하기가 어렵겠지만 오늘 생각이 달라지고 말았어요. 젊 은인 아마 이해하기가 어렵겠지만 오늘 아침부턴 모든 게 안심이 되는구료. 녀석이 머지않아 날 찾아 나타날 것 같아요. 그것도 물론 이 늙은이의 막연한 기대나 느낌에 불과한 것인 진 모르지만 난 그런 내 바램을 믿고 살아온 늙은이었으니까. 제 바램을 믿고 사는 수밖엔 다른 도리가 없었던 위인이었으니까. 그게 내가 가막소에서 늦도록 깨달아 얻은 마지막 지혜거든. 내 아들놈은 필시 날 찾아 나타날 거외다. 그리고 제 애빌 고향 집으로 데려갈 것이외다…"


  "…"


  "내 젊은이에게 바램이 있다면 다만 젊은이도 아까 말대로 내 한 가족이 되어서 그 한 가 족이 된 사람의 정분으로 그걸 조그만 믿어 줬으면 하는 것뿐이라오. 내게도 그럴 아들 녀석이 있고, 그 아들 녀석이 미구에 제 애빌 찾아 나타날 일을 말이오…"


  젊은이는 끝끝내 대꾸가 없었다.


  가게에 다시 손님들이 밀려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젊은이는 그러자 사내를 버려 둔 채 가 게 일로 냉큼 돌아가 버렸다.


  사내는 다시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어차피 새를 사겠노라 보기 좋게 다짐을  하고 난 처지였다.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당당하게 새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다른 손님들 사이에 섞여 자신의 새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내의 그런 거동은 대체로 금세 새를 골라 사려는 쪽은 아니었다.


  그는 신중하고 차분한 눈길로 새장을 하나하나 ?어나가고 있었다.  때로는 금세 새를 사 버릴 것처럼 조롱 속으로 유독히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조롱 속으로 손가락까지 뻗어 넣으면서 녀석들의 주위를 끌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내는 그때마다 녀석들에 대 한 자신의 충동을 잘 견뎌내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충동을 참아가면서 단 한 마리의 새를 사 날려보낼 자 신의 기회를 오래오래 아끼고 즐기는 것이었다. 아니. 사내는 그렇게 자신을 즐기면서  끈질기게 무언가를 찾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다만 손님들이  그 방생의 집을 모두 떠 나가고 가게 안에 젊은이와 자신만이 남게 될 시간일 수도  있었고, 혹은 그가 날개를 사줄 녀석을 위한 어떤 특별한 인연에의 기다림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그렇게 좀처럼 새를 살 기미를 안 보였다.


  이윽고 가게 안을 붐벼대던 손님들이 거의  다 놀이를 끝내고 빠져나간 다음에도  사내는 여전히 그렇게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이는 다시 가게 안쪽에 숨겨 놓은 비밀 집합사에서 새 새들을 꺼내다가 비워진 장들 을 채워 넣고 있었다. 사내로선 물론 가게 안에 차려진 집합사에 새들이 몇 마리쯤 숨겨져 있는 질 들여다볼 기회가 한 번두 없었지만, 젊은이는 아마도 그 비밀 집합사에 새가 바닥 이 나게 버려 두는 일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 특히나 오전 동아네 젊은이가 그 바깥 새 장을 비워 두는 일이란 절대로 없었다. 가게 안 비밀  집합사엔 언제나 여분의 새들이 얼마 든지 비워진 장을 채우게 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젊은이가 비밀 잡합사를 들 어갔다 나오면 두 마리고 세 마리고 그의 손아귀엔 언제나 그가 필요한 수만큼의 새들이 움 켜져 나왔다.


  이날도 젊은이는 벌써 스무 개 이상의 빈 새장을 채워넣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한 새장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내가 무슨 버릇처럼 한 새장문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건드리자 장속의 새가 포르륵 날개를 퍼득여 그의 손가락 쪽으로 날아와 붙은 것이었다.


  사내가 손가락을 좀더 깊숙이 장 속으로 디밀었다. 그러자 다시  장 속의 새는 녀석의 조 그만 부리로 사내의 손가락 끝을 조심스럽게  한두 번 콕콕 쪼아대는 시늉이더니  나중에는 겁도 없이 홀짝 그 손가락 위로 몸을 날려 내려앉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녀석은 꽁지를 가볍게 간들거리면서 조그만 눈망울로 말똥말똥 앞에 선 사내의 표정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사내는 한동안 거의 넋을 잃은 듯한  얼굴로 장 속의 새 앞에 못박혀 서 있었다. 사내의 초라한 입가에 이윽고 누런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 사내의 오랜 기다림이 끝났다.


  "그래, 나도 이젠 네 놈을 알아볼 수가 있구 말구…"


  사내는 혼자말처럼 낮게 중얼거리고 나서, 다시 가겟집 젊은이를 향해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 오늘은 이 녀석을 사주겠소."


  그는 곧 야전잠바 주머니를 뒤져 동전 스무 닢을 세어  내놓고 나서, 이젠 젊은이의 응낙 을 기다릴 것도 없이 스스로 새장 문을 따기 시작했다. 그는 열려진 장문 사이로 손을 디밀어 녀석을 조심스럽게 손바닥에 싸안았다. 그리고 무슨 소중스런 물건이라도 다루듯 자신의 코앞까지 녀석을 높이 쳐올려 들고는 사람에게 하듯이 중얼중얼 말했다.


  "하지만 이젠 알아 두거라. 여긴 네 놈들에게 그리 즐겨할 곳이 못 된다는 걸 말이다. 그래 나도 이게 네 놈한테 마지막일  테니, 이번엔 좀 날개가 저리도록 멀찌감치 하늘을 날아가 보거라…"


  손안에 든 새가 사내의 재촉하듯 날개를 두어 번 퍼득대고 있었다. 그러자 사내도 이젠 그만 녀석을 놓아줄 자세를 취했다. 퍼득여대는 녀석의 양날개  밑으로 손끝을 집어넣어 녀 석을 높이 받쳐 올렸다. 그리고 그는 뭔가 혼자말 같은 것을 입속으로 중얼대며 녀석을 막 놓아주려던 참이었다.


  사내는 금세 뭐가 이상해졌는지 숲으로 놓아 주려던 녀석을 다시 가슴 팍 밑으로 끌어내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녀석의 날개를 들추고 벌려진 날갯죽지 밑을 유심히 살폈다.


  사내가 들춰낸 녀석의 양 쪽 날개 밑에는 무슨 가위 같은 물건으로 속깃이 잘라낸 자국이 역력했다.


  사내는 일순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며 어째서 그런 일이 생기게 됐는지가 짐작이 안 가는 듯 멍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동안 조용히 잘려나간 녀석의 속날개깃 자국을 들여다보고 있던 사내의 눈길에 이윽고 어떤 세찬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그는 새를 거머쥔 손에 으스러지도록 힘을 주며 말없이 그의 거동만 훔쳐보고 있는 젊은이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그 세찬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는 사내의 눈길은 사람까지가 온통 달라 보이게 하였다. 그는 자신의 분노 때문에  손과 입술까지 마구 떨리고 있었 다.


  하지만 사내는 자신을 참는 데 너무도 깊이 길이 들여진 인간이었다. 그는 끝끝내 한 마 디 말도 없이 자신의 분노를 견뎌 버리고 있었다. 분노와 증오심에 불타던 사내의 눈길에서 이윽고 그 세찬 열기가 서서히 다시 가라앉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노와 증오의 빛 대 신 사내의 눈길엔 어느새 조용한 슬픔의 응어리 같은 것이 맺혀들고 있었다.


  그는 문득 가겟집 젊은이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그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간절한 모습으로 우러르고 있었다.


  가겟집 젊은이는 그러나 여전히 남의 일을 구경하듯 거동이 태연스러웠다.


  처음 한동안은 그도 역시 사내의 심상찮은 기세에 눌려 여느 때처럼은 거동을 못했다. 사 내의 행동을 함부로 간섭하고 들지도 못했고, 거꾸로 사내를 깡그리  무시해 버린 채 그 앞 에서 금세 등을 돌리고 돌아서지도  못했다. 그리고 사내가 마침내 새의  날개 밑을 들춰내 버리자 그는 무슨 몹쓸 비밀을 들키고 난 사람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러나 될수록 자신 을 잃지 않으려는 듯이 조금은 뻔뻔스럽고 무관심한 표정으로 끝끝내 그 사내의 눈길만 맞 받고 있었다. 그게 사내의 눈길에 붙잡힌 젊은이의 거동 새였다.


  하지만 사내는 마침내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자신을 다스려  주었다. 젊은이는 이제 그걸 로 그만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다시 자신을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하늘을 우러러  얼굴을 쳐들고 서 있는 사내를 향해 까닭 모를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윽고 사내가 그 하늘로부터 조용히 눈길을 끌어내려 그를 다시 돌아다보았을 때도 그는 계속 그 비웃음과 연민기 같은 것이 한데 뒤섞인 기묘한 웃음기 속에서 유유히 사내를 구경하고 있었다.


  도시를 빠져나온 신작로길이 가을날 저녁 햇살 속을 남쪽으로 하얗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가을 해는 중천을 비켜서면 풀기가 꺾이게 마련이었다. 사내는  야전잠바 목깃을 꼭꼭 여 며 잠그며 그 신작로 길을 따라 지친 발길을 끈질기게 남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바람막이 삼아 앞단추를 열고 가슴께로 숨겨진 사내의 오른쪽 손아귀 속에서 아직도 방생의 집 새 한 마리가 발톱과 부리를 쉴새없이 꼼지락대고 있었다.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참거라."


  사내는 마치 길동무에게라도 말하듯 옷깃 속에서 몸을 꼼지락대고 있는 녀석에게 낮게 중 얼댔다.


  "나도 몹시 다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아직 해가 있을 때 마을을 만나야하니까 말이다. 앞으로도 며칠을 더 이렇게 걸어야  할지 모르는 길인데. 첫날서부터 아무데서나 한데 잠을 잘 수는 없지 않겠냐."


  그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그의 등뒤로 멀어져  가고 있는 도시의 하늘에서 자신의 지친 발걸음을 재촉할 구실을 구하듯 때때로 고개를 뒤로 돌아보곤 하였다.


  그는 그때마다 가슴속 녀석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 어쨌거나 우리가 녀석을 떠나온 건 백번 천번 잘한 일이었을 게다. 게다가 이제부터 도시엔 겨울 추위가 몰아닥치게 되거든. 너 같은 건 절대로 그 도시의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작자도 아마 그걸 알았을 게다. 글쎄, 네놈도 그 작자가 암말 못하고 멍하게 날 바라보고만 있는 꼴을 봐뒀겠지. 내가 네놈을 데리고 떠나려 할 때… 아, 그야 나도 물론 작자한테 그만한 값을 치르긴 했지만 말이다."


  맞은 편 산굽이께로부터 도시를 향해 길을 거꾸로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한패가 사내의 곁을 시끌적하게 떠들고 지나갔다.


  사내는 잠시 말을 끊고 그 도시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일행을 스쳐보냈다. 그리고 그들의 말소리가 등뒤로 멀리 사라져간 다음 사내는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반해 분만이라도 내 그 노역의 품삯을 한사코 주머니속에 깊이 아껴뒀던  게 천만 다행이었지. 널 데려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 돈 덕분인 줄이나 알아라. 하기야 그건 내가 정말로 집엔 닿는 날까지 기어코 안 쓰고 지나려던 거였지만… 하지만 난 후횐 않는다. 암 후횐하지 않구 말구. 그까짓 돈이야 몇푼이나 된다구… 이런 몰골을 하고 빈손으로 고향길을 찾기는 좀 뭣할지 모르지만, 그런다고 어디 사람까지 변했나… 아니. 아니  내 아들 녀석도 물론 그런 놈은 아니구."


  사내는 제풀에 고개를 한번 세차게 흔들었다.


  가슴속 녀석이 응답을 해오듯 발가락을  몇 차례 꼼지락 거렸다. 그  바람에 잠시 발길을 멈추고 녀석의 발짓을 느끼고 있던 사내의 얼굴엔 만족스런 웃음기가 번지고 있었다.


  "그래 어쨌든 잘했지. 떠나온 건 잘했어."


  사내는 다시 발길을 떼 옮기며 말하기 시작했다.


  "녀석도 아마 잘했다고 할 게야. 글쎄, 이렇게 내가 제발로 녀석을  찾아나섰기가 망정이지 하마터면 우리도 거기서 겨울을 지낼 뻔했질 않았나 말이다."


  그리고 사내는 뭔가 더욱 은밀하고 소중스런 자신만의 비밀을 즐기듯 몽롱스런 눈길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너도 곧 알게 될 게다. 우리가 함께 남쪽으로 길을 나서길 얼마나 잘 했는가를 말이다. 남쪽은 훨씬 북쪽하곤 다르다. 겨울에도 대숲이  푸른 곳이니까. 넌 아마 대숲이 잇는  곳이면 겨울도 그만일 테지. 내 너를 그런 대숲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테다. 녀석의 집 뒤꼍에도 그런 대숲은 얼마든지 많을 테니까. 암 대숲이야 많구 말구…  넌 그럼 그 대숲으로 가거라. 그리고 거기서 겨울 나려무나…"


  사내의 얼굴은 이제 황홀한 꿈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의 그것처럼 밝고 행복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걸으며 중얼대고 있었다.


  "넌 아마 그래야 할 게다. 가엾게도 작은 것이 날개를 너무 상했으니까. 이 겨울은 그 대숲 에서 날개가 다시 길어나기를 기다려야 할 게야. 내년에 다시  날이 풀리면 네 하늘을 맘껏 날을 수가 있을 때 까진 말이다. 그야 너만 좋다면 녀석의 집에서  이 겨울을 너와 함께 지 내 줄 수도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네 맘은 아닐 테니까…"


  석양의 햇발이 점점 더 풀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구불구불 남쪽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하얀 신작로길도 먼 곳에서부터 차츰 윤곽이  아득히 흐려져 오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에겐 아직도 한 줄기 햇볕이 등줄기에 그토록 따스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한줄기 햇살이 꺼지지 않는 한 그의 눈앞에서 남쪽으로 남?으로 뻗어나가고 잇는 좁은 신 작로길이 그토록 따뜻하고 맑게 빛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건 차라리 사내의 가습속을 끝없이 비춰주는 영혼의 빛줄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사내는 아직도 지침이 없이 그 따스하고 행복스런 빛줄기를 쫓으며 품속에서 가끔 발짓을 꿈지락거리고 잇는 녀석에게 쉴새없이 혼자 중얼대고 있었다.


  "하지만 네놈도 조금은 명념해 봐야  한다. 탱자나무 울타리와 붉은 색  벽돌 굴뚝이 높은 기와집, 게다가 텃밭이 넓고 뒤쪽 언덕에 푸른 대숲이 우거져 내린 집… 그런 집이 있는 동네 가 나서는 걸 말이다. 그야 언젠간 너도 알겠지만, 그게 바로 우리가 찾아가는 남쪽  동네란 다.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찾기는 어려운 속이지. 하지만… 글쎄, 그 남쪽 동네가 얼마나  따뜻한 곳인지 네가 어떻게 알기나 할는지…"


출처 - 좋은 글의 美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