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애정 Affection/Film

얼굴없는 눈 (Les Yeux sans visage 1959)

버블건 2008. 1. 14. 15:30
 



감독
조르주 프랑주 Georges Franju

주연
피에르 브라쇠....제네시에 박사
Pierre Brasseur....Doctor Génessier
에디트 스코브....크리스티안느
Edith Scob....Christiane
알리다 발리....루이즈
Alida Valli....Louise
프랑스와 게랑....자크 베르농
François Guérin....Jacques Vernon
베아트리스 알타리바....폴레트
Béatrice Altariba.... Paulette
쥘리엣 마니엘....에드나
Juliette Mayniel.... Edna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크리스티안느
 호러 영화에서 가장 두려운 건 죽음과 고통이 아닙니다. 이야기꾼들의 세계에서 이들은 일상의 일부에 불과하죠. 진짜로 두려운 건 복구될 수 없는 손상과 그에 따른 혐오입니다. 고통과 죽음은 서로에 얽혀 찰나의 폭발과 함께 사라져 버리지만 상처와 혐오는 그대로 남습니다.

조르주 프랑주의 [얼굴없는 눈]은 그걸 알고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죽음은 가장 나쁜 일이 아닙니다. 아니, 반대라면 반대지요. 아마 영화를 보는 동안 여러분은 이 끔찍한 사건에 말려든 불운한 사람들의 죽음을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장 르동의 소설을 브왈로-나르스자크가 각색한 이 이야기는 '안면이식수술'이라는 단 한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자동차 사고로 얼굴이 완전히 망가진 딸 크리스티안느에게 이전의 얼굴을 돌려주려는 천재적인 과학자 제네시에 박사입니다. 그는 조수인 루이즈를 시켜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끌어온 뒤 그들의 얼굴 피부를 뜯어 딸에게 이식합니다. 하지만 이식 수술은 계속 실패하고 그러는 동안 실종자들은 늘어만 가죠.

1959년에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얼굴없는 눈]은 마음 약한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엄청나게 끔찍한 특수 효과가 나오거나 피투성이 학살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상의 일을 했습니다. 프랑주는 그의 걸작 [짐승의 피]에서 도살장의 살육을 차분한 일상으로 묘사했던 것처럼, 안면 이식 수술의 거의 모든 장면을 메디컬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냅니다. 메스로 피부를 자르고 피를 닦아내고 피부를 얼굴에서 뜯어내고... 에든버러 국제 영화제에서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일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 말 그대로 기절해 실려나갔다고 합니다. 지금의 호러 팬들은 당시 사람들보다 단련되어 있지만 그래도 이 차가운 불쾌함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지요.

그러나 [얼굴없는 눈]이 자극만을 추구하는 영화였다면 지금까지 이처럼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 영화에는 자극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얼굴없는 눈]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자극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감싸는 시적인 아름다움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흉물스러운 존재인 크리스티안느는 아마 호러 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괴물일 것입니다. 영화는 이 사람의 화상으로 망가진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얼굴을 덮는 정교한 하얀 가면과 소름끼칠 정도로 표정이 풍부한 아름다운 두 눈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크리스티안느는 자기 혐오와 죄책감으로 인해 서서히 인간의 형태를 벗어나 유령과도 같은 비현실적인 존재로 탈바꿈해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크리스티안느의 뒤에는 보다 현실적이고 끔찍하지만 결코 가치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드라마가 놓여 있습니다. 영화는 제네시에 박사를 단순한 괴물들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 자신의 손아귀 안에 들어있는 과학의 힘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딸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딸을 위해 모든 걸 할 수 있는 아버지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가 저지르는 일은 여전히 용서할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린 그가 왜 그런 짓을 하는 지 이해하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와 위태로운 공범자적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물론 당시의 많은 관객들에겐 이런 접근법 역시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파괴적인 결말에도 불구하고 권선징악에 대한 상식적인 욕구를 거의 만족시켜주지 못했으니 말이죠.

그러나 권선징악적 죽음은 마침표를 찍는 것 같은 의무 수행 이상은 아닙니다. 프랑주가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건 탈출한 제네시에 박사의 실험동물들과 크리스티안느가 어두운 숲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적 해방의 과정을 통해 그는 너무나도 초라한 인간조건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를 간접적으로나마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05/01/21)

DJUNA

제가 만든 두번째 허접 자막 같이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