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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에 의한, 야동을 위한

버블건 2008. 6. 19. 23:41
야동에 의한, 야동을 위한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오양 비디오의 사회적 의미를 논하시오.’

대학교 1학년 때 받아든 근엄한 시험지 위에 이 문제가 요염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신문방송학 전공 수업의 정규 시험에서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포르노는커녕 에로 비디오 하나 보지 않았던 ‘범생이’에겐 큰 충격이었다. ‘오양 비디오’라니, 그럼 교수님도 그걸 봤단 말인가. 쓱싹쓱싹 답을 쓰고 있는 주변의 동기들도?

물론 ‘출제자의 의도’는 ‘오양 비디오’의 전파를 통해 매체발전사적 의미를 설명하란 것이었다. 더 쉽게 말하면 홈비디오의 보급이 오양 비디오의 무서운 전파력을 형성했다는 소리였다. 비디오가 없던 시절엔 꿈도 꾸지 못할. 하지만 그 문제는 대학 새내기인 내 가치관에 큰 혼란을 줬다.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백양 풀 버전’ 사건이 터졌을 때, 비로소 한 남자 동기가 내게 말해줬다. “너 이렇게 아무것도 안 보면 신문방송학도로서 매체의 확장을 경험하지 못하는 거야.” 근엄한 꾸짖음에 그가 이메일로 쏘아준 링크를 클릭했다. 하지만 동영상은 이미 링크를 떠난 뒤였다. 또 다른 친구는 ‘풀 버전’이라며 ‘진짜 풀’ 사진을 보내줬다. 결국 친구에게 CD를 받아왔다는 언니와 모니터 앞에 앉아 영상을 봤다. 인터넷의 보급은 1년 만에 비디오를 비웃으며 훨씬 빠르게 동영상을 퍼뜨렸다.

‘모든 매체의 발전은 포르노의 전파를 위해 이뤄졌다’는 소리에 기겁했다. 군용으로 만들어졌던 인터넷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데는 ‘포르노’의 공이 컸다 했다. 비디오 플레이어가 집집마다 있었던 것도, 인터넷 속도가 꾸준히 빨라진 것도 그 때문이라고? 예전엔 야동(야한 동영상) 하나 보려면 컴퓨터가 버벅대서 힘들었는데 요즘은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말에 ‘정보기술(IT) 강국’의 깔끔 떠는 이미지가 겹쳐진다. 설마 그것을 위해 광케이블을 깔았으랴, 무시하고 싶다.

한데 알면 알수록 잘 모르겠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문’의 권유에 따라 인터넷 자키(IJ)가 진행하는 유료 인터넷 방송을 분석하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한 영화의 무삭제판을 감상한 뒤 영상물 심의 규정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그런 쪽의 정보에 밝은 친구는 꼭 컴퓨터도 잘 다루기 마련이어서 주변에 ‘공급’을 해댔다. 그것은 ‘유능’으로 통했다.

이제 ‘진관위 스캔들’의 시대엔 거칠 것이 없다. 넘쳐나는 디지털 기기에 찍는 사람도 수준급이다.(진관위가 디지털카메라 광고 모델이었다니!) 돌리는 사람은 더하다. 일본 친구는 메신저로 링크를 보내주며 홍콩의 작품을 감상하라 한다. 미국에서도 독일에서도 모두 함께 즐기고 있단다. 사진이 수백 장이고 동영상이 있는데도 압축하고 나면 파일 하나라 주고받기도 손쉽다. 진정한 지구촌이다.

인터넷은 터질 듯이 팽창했다. 매체발전사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간에도 어떤 교수는 이 문제를 시험문제로 내고 누군가는 그 앞에서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그들도 몇 년 뒤엔 나처럼 ‘매체’에 익숙해져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지 모른다.

일사불란하게 매체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우리’에게 묻고 싶다. 무섭지 않은가, 이 시대가. 지금은 ‘네 것’이 돌지만 언젠가 ‘내 것’이 돌지도 모르는 세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