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휴지 Small Talk

신의 왼손, 악마의 오른손 - 우리는 왜 B급을 보는가(펌)

버블건 2008. 5. 5. 19:54

신의 왼손, 악마의 오른손 - 우리는 왜 B급을 보는가(펌)

그리스나 로마시대 시학론(그러니까 오늘날로 치면 시나리오나 소설 작법)을
다룬 책을 보면 놀라운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물경 이천년에서 이천 오백년전에 쓰여진 책들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서점에 꽂혀있는 작법 책들과 열에 여덟에 가깝게 내용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이야기의 본질은 이야기가 처음으로 생겨난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지엽적이고 테크닉적인 면에 치우친 미국의 시나리오 작법 책들보다도, 세세한 요소에서는 부족하나마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더 정확하고 가치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주기 충분합니다.
호라티우스 시학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이 있습니다. "흠없는 범용보다 흠있는 천재가 났다."
 
이 영화야 다들 아시다시피 음산한 그림체로 유명한 우메즈 카즈오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당연히(?) 저예산입니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과장되고 어설픕니다. 특수효과도 돈 안들인 (또는 들일 돈이 없는) 티가 아주 많이 납니다. (척봐도 마네킹인 시체. 유치한 CG) 거기다 삼합 세트를 완성짓는 결말부분의 비논리성까지. 그런데도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재미있습니다. 살인과정을 동화책으로 만들어 반신불수의 딸에게 읽어주는 기괴한 설정. 현실과 꿈의 교차를 통한 신비로운 분위기 조성.  극의 흐름을 끊지 않는 과감한 생략. 이 영화의 단점은 누가 보아도 확연하지만, 거기에 집착해서 수많은 장점까지도 무시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바로 수천년 전부터 경고되어 왔던 "흠없는 범용"을 택하는 것입니다. 돈만 많으면 뛰어난 연기자에 뛰어난 특효같은거 누구나 갖다 쓸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는 해결할수 없는 요소들에서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영화입니다.
오늘처럼 흐리고 음산한 겨울날, 한시간 반을 보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선택입니다. 추천!
-freud13-



이즈미(イズミ, 시부야 아스카)는 어느 날 밤, 동생 소우(ソウ, 고바야시 츠바사)의 가위 눌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악몽을 꾸며 괴로워하는 소우의 코 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갑자기 목에서 엄청난 피가 뿜어져 나온다. "누나, 나 곧 죽어." 소우는 전부터 이즈미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살기를 꿈으로 예지"하는 불가사의한 능력이 있었다. 소우가 꾸는 악몽은 현실세계 어디선가 정말로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어른들은 꿈 이야기를 황당무계한 말로 치부했지만 누나인 이즈미만은 동생의 말을 믿었다. 병원으로 실려와 응급처치를 받는 소우를 바라보던 이즈미는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누나라면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거야. 잘은 모르지만 빨간 휴대폰이 중요해..."

 수풀이 우거진 산 속의 낡아빠진 서양식 건물에 쿠보타 코이치로(久保田光一郞, 다구치 토모로오)는 딸 모모(モモ, 시미즈 모모코)와 둘이 살고 있다. 다리에 장애가 있어서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모모는 코이치로가 그려준 그림책만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코이치로가 일에서 돌아오면 빨리 새 그림책을 그려 달라고 조른다. 기뻐하며 그림책을 바라보는 모모. 그러나 검은 색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 그림책은 버려진 인형을 주운 마음 따뜻한 여자아이가 누군가에게 갑자기 참혹한 죽음을 당하는 잔혹한 이야기였다.

이즈미는 소우의 병실에서 빨간 휴대폰을 줍는 꿈을 꾼다. "빨간 휴대폰이 중요해..." 꿈에서 깬 이즈미는 소우의 말을 떠올리고 병원에서 부서진 빨간 휴대폰을 발견한다. 귀를 대보니 전화에서는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소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부서진 휴대폰은 소우의 악몽 속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누나! 서둘러. 노란색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가. 그곳에 나쁜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어. 잡혀 있는 여자아이를 도와줘!" 이즈미는 소우를 돕기로 결심하고 동생이 말한 마을을 찾으러 떠난다.

 "누나는 파란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여자아이를 만나 하얀 집으로 가." 이즈미는 소우가 전에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코이치로가 사는 마을을 걷고 있다. 그리고 축제로 들뜬 사람 속에서 행방불명된 소녀 아유(アユ, 사아야)를 찾고 있는 푸른 옷을 입은 요시코(ヨシコ, 마에다 아이)를 만난다. 요시코는 파란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이즈미가 요시코에게 그동안의 경위를 설명하자 요시코도 매일 밤 아유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꿈을 꾼다고 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그 하얀 집을 찾기 시작한다. 한편 키에(キエ, 카데나 레온)와 요우코(ヨウコ, 이마이 하루나)가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마침 지나가던 곳에 있던 산장에 들어가는데 거기에는 수많은 케잌이 진열되어 있었다. 산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침 배가 고팠던 두 사람은 허겁지겁 케잌을 먹어 치우는데 안쪽 방문이 열리면서 나타난 남자는 갑자기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한다.

 밤을 새워 새로운 그림책을 그리던 코이치로는 마지막 그림이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자 책상에 있던 그림의 견본, 키에와 요우코의 머리를 냉장고에 넣고 일하러 나간다. 코이치로가 집을 비운 사이 새로운 그림책을 보고 싶은 욕심에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1층으로 내려온 모모는 그 냉장고를 열고 만다. 그 무렵, 소우의 말에 따라 코이치로의 집까지 오게 된 이즈미와 요시코는 모모의 비명소리를 듣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오는데 안으로 들어온 둘은 그곳이 바로 자신들이 찾던 '하얀 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무렵 그림책을 끝내지 못한 것이 못내 불안했던 코이치로가 일찍 집에 돌아온다. 모모는 침대로 돌아와 냉장고의 머리나 집에 온 두 소녀의 존재를 모른 채 하지만 코이치로는 집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 때 이즈미와 요시코는 다락방에 숨어 있었는데 찾고 있던 아유가 무참하게 살해된 시체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는 공포를 참지 못해 결국 소리를 내고 만다. 코이치로에게 발각되어 결국 지하실에 갇히게 된 두 사람. 코이치로의 눈은 이미 상식을 벗어난 번뜩이는 광기의 눈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바닥에 눕히고 둘의 몸에 못을 박기 시작한다. 그리고 임금님이 두 마녀를 못으로 박아 죽이는 새로운 그림책 내용을 들은 모모는 불안과 공포에 떨며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빠가... 죽였어? 이제까지의 이야기도 전부 정말 있었던 일이야?"

 그 이야기를 들은 코이치로의 표정은 그 때까지 모모를 바라보던 다정한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었다. 불안과 노여움과 슬픔이 뒤범벅 된 복잡한 감정의 미치광이로 변모한 코이치로가 절규한다. "그림책에 나오는 여자아이는 전부 너였어!" 분노에 가득찬 코이치로가 식칼을 들고 모모에게 다가오고 있을 때 빈사 상태에 있던 이즈미가 나타나 모모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운다. 그러나 사력을 다한 이즈미의 몸에 코이치로의 칼이 꽂힌다. 이즈미가 바닥에 쓰러진 바로 그 순간 어디에선가 소우의 목소리가 울리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내 왼손은 올바른 자를 살리는 신의 왼손. 내 오른손은 악한 자를 멸하는 악마의 오른손!"
 
- 아이팝 호공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