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로만 Narrative

[시나리오] 백색인 - 봉준호

버블건 2007. 11. 17. 10:20
백색인

s#1.아파트 베란다/아침
깔끔해 보이는 아파트 거실. 말끔한 출근복장의 학락. 블루벨벳 포스터도 보인다. 시간이 여유가 있는지 담배를 피워물고 베란다로 나간다. 어항쪽으로 다가간다. 먹이를 주며 금붕어 하나를 주시한다. 한쪽눈을 손으로 가리고 실눈으로 쳐다본다. 새하얀 티슈를 톡,톡 꺼내 반듯하게 어항 옆에 깐다. 금붕어 하나를 꺼내어 티슈위에 놓는다. 팔딱거리는 금붕어. 학락, 피우던 담배연기를 후욱 금붕어에게 내뿜는다. 담배로 지느러미 끝을 살짝 살짝 지져본다. 이윽고 붕어눈을 향해 담배불이 다가간다. 눈에 거의 닿을까 말까한 순간 커트.

s#2.
크레디트. 배경음악. 카메라가 아파트 1 층에서부터 수직상승한다. 수직으로 지나쳐가는 아파트 베란다들. 15층 학락의 베란다에 도착하면서 정지. 학락,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다.

s#3.아파트 밖/수위실 근처
엘 리베이터를 나오는 학락. 경비실 입구, 현대아파트 '107동'이란 숫자 보인다. 자신의 자가용을 향해 걸어간다. 사장처럼 보이는 배나온 사내가 뒷 배경에 보인다. 그 사내의 운전수로 보이는 이가 골프채를 싣고 있다. 학락, 가벼워 보이는 발걸음으로 자신의 검정색 스쿠프를 향한다. 차 앞에서 열쇠를 꺼내다가 실수로 떨어뜨린다. 줏으려 몸을 숙인 순간, 인도 턱 바로 밑에 뭔가 이상한 것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유심히 들여다 보는 학락. 사람의 검지손가락이다. 놀라는 학락. 주위를 둘러본다. 무표정하게 먼 산 바라보는 아파트 경비원. 이미 차속에 타 있는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 학락, 쪼그려 앉아 잘린 손가락을 이 리저리 쳐다본다. 한쪽 눈을 가리고 실눈으로 쳐다본다. 이윽고 새하얀 티슈를 톡,톡 뽑아 손가락 옆에 깐다. 학락의 손가락이 잘린 손가락을 향해 다가간다. 손가락을 집어 들려는 순간 커트.

s#4.검정 스쿠프 속
운전석에 앉아 휴지에 싸인 잘린 손가락을 들여다 보는 학락. 호기심에 가득찬 듯한 표정. 어찌할까 망설이다 자신의 삐삐 주머니에서 삐삐를 빼내어 옷 주머니에 넣고 대신 잘린 손가락을 집어넣는다. 삐삐 주머니 를 귓가에 대고 흔들어 보는 학락. 달각 달각 소리가 난다. 출발하는 스쿠프가 프레임 아웃되고 카메라가 잠시 빈 공간(손가락이 떨어져 있던 곳)을 잡아주다가 커트. 아파트 바로 밑의 달동네와 그 옆 도로를 질 주하는 학락의 스쿠프를 롱쇼트로 보여준다.

s#5.학락의 사무실 낮
크고 깨끗한 사무실. 큰 통유리로 햇살이 쏟아진다. 삐삐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창가 책상에 앉아있는 학락. 널려진 서류들과 컴퓨터 모니터를 번갈아 쳐다보며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잠시 쉬려는듯 허리를 펴는 학락. 삐삐 주머니를 책상위에 반듯이 올려놓아 본다. 자기 손가락이 살아 있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검지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해본다. 컴퓨 터를 치는, 볼펜을 잡은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쳐다보다가 이윽고 한 여사원에게 눈길이 고정된다. 약간 짙은 화장에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자. 학락, 한 쪽눈을 가리고 실눈으로 여자를 훑어본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학락. 여자의 뒷쪽으로 가서 귓가에 대고 삐삐 주머니를 달각달각 흔들어 대는 모습이 롱쇼트로 보여진다. 여자, 뭐하는 거냐는 듯 낄낄대며 학락과 장난친다.

s#6.퇴근길 늦은 오후
차를 몰고 퇴근하는 학락. 손가락이 든 삐삐 주머니가 차 앞유리 밑에 세워져 있다. 우뚝솟은 학락의 아파트가 저멀리 보이는 6차선 도로. 갑자기 털털거리다 시동이 꺼져버리는 학락의 차. 보네트가 열려있는 고장난 차 뒷편으로 공중전화를 하고 있는 학락의 모습이 보인다. 견인되는 학의 스쿠프가 프레임 아웃되면 학락을 축으로 카메라가 역동적으로 트래킹, 거대한 달동네와 그 너머로 우뚝 솟아있는 학락의 아파트를 어깨 너머로 보여준다. 바로 주변에 버스정거장도 없는지 잠시 두리번 거리다 가 자신의 아파트 쪽을 향해 무작정 걸어가는 학락. 달동네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학락, 점점 길이 좁아지고 경사가 급해진다. 말끔하고 세련된 옷차림의 학락, 너저분한 달동네 배경과 완전히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인. 학락, 방향에 약간 혼동이 생겼는지 좁은 달동네 골목을 이리 저리 걸어 헤멘다. 달동네에서도 가장 높은 듯 보이는 곳에 지친듯 서있는 학락, 그 너머로 길게 늘어진 누런 햇살속에 서있는 학락의 아파트가 아른하게 보인다. 땀에 젖어 돌위에 걸터 앉아있는 학락. 갑자기 삐삐 호출 소리가 울려나온다. 급하게 삐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삐삐가 아니라 잘린 손가락을 만지게 되는 학락. 삐삐는 자기 웃옷 주머니에 넣음을 그제야 떠올리고 삐삐를 꺼낸다. 맞은편의 개 한마리가 이 광경을 무뚝뚝하게 보고있다. 개의 얼굴에서부터 카메라가 이동, 학락에게서 벗어나버린 카메라가 달동네의 모습을 계속적으로 보여준다. 배경음악 고조된다.

s#7.학락의 아파트 밤
화장실의 문틈사이로 보이는 학락. 잘린 손가락을 씻고 있다. 주의 깊게 칫솔로 손톱 밑도 닦는다. 스탠드만이 켜져있는 어두운 방. 손가락을 가지고 장난을 시작한다.(편집의 리듬이 생겨난다.)

구부린 자신의 손가락에 대본다.
자신의 귀에 걸쳐본다.
컴퓨터를 잘린 손가락으로 친다.
기타를 잘린 손가락으로 친다.
잘린 손가락에 반지를 끼운다.
자신의 마지막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후 잘린 손가락의 손톱에도 칠한다. TV를 잘린 손가락으로 켜는 학락.
탁자에 손가락을 놓으며 소파에 파묻힌다.
TV를 보는 학락.
쇼프로가 요란하다.
졸리운 듯한 학락.
TV에서는 토크쇼가 한창이다.
이제 완전히 잠든 학락의 얼굴.
TV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잠든 얼굴에서부터 카메라 서서히 트렉아웃하며 패닝.
미끄러지는 학락의 손.
세워 놓은 손가락이 쓰러져 조금 구른다.
계속 이동하는 카메라는 TV 브라운관을 향해 빨려들 듯 접근해간다. TV에서는 계속 뉴스가 나오고있다.

(TV 뉴스, 남자 앵커 목소리)

오늘 열린 신경제 점검 소식을 최영범 기자가 보도합니다.

신경주 부총리는 오늘 경제 5개년 계획의 추진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를 주재하고, 정부가 경기 회복의 장애요인 제거에 적극 앞장서야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신 부총리는, 경제 상황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소비 수준의 둔화와 기업의 설비투자 기피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경제 장관들은 기업인을 직접 만나 정부정책을 잘 설명하고 투자를 독려해야한다고 당부하였습니다.

또 한 신 부총리는, 경제 활성화에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므로 지속적인 정비,점검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지난 6 개월간의 성과를 정리하는 과정 속에 문제점이 드러난 부분은 과감히 보완해 나가되 전체 경제 계획의 골격은 그대로 지속,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산재 근로자가 귀가길의 사업주를 폭행, 구속되었습니다 어제 저녁 8시경 봉천동 현대 아파트 107동 앞 주차장에서 (주)동성금속 근로자 윤재혁씨가 귀가하던 같은회사 사장 이동성씨를 폭행, 전치 6주의 상처를 입히고 체포되었습니다.

범행 전날, 작업중 일어난 사고로 손가락을 잃은 윤씨는, 술에 몹시 취한 상태로 / 자신의 손가락을 몸에 지닌채 범행장소인 현대아파트 쪽으로 갔으나 그 다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습니다.

한편, 범인 윤씨는 범행장소에서 불과 10 여분 거리에 있는 봉천 8동 셋방에서 노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 근 주암댐이 관할 행정당국의 무관심속에 수질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저수지 곳곳에 검은 기름덩어리와 떼죽음한 물고기들이 떠다니는 가운데 환경처는 뒤늦게 현지조사에 나섰습니다. 일단 정부측은, 지난해 건립된 인근 정유공장과 건축 공사장들이 각종 폐유 찌꺼기와 폐기물들을 무차별적으로 배출, 급격한 오염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관할 경찰서에 전담반을 설치, 폐기물 불법 유출여부를 집중 수사할 것을 지시하였습.......


(화면과 함께 뉴스 소리도 페이드 아웃 )



s#8.아파트의 거실 새벽
소파에 파묻혀 자고 있는 학락, 그 너머로 TV가 지직거리며 켜져있다.


s#9.아파트 밖 아침
수 위실을 지나 출구를 나오는 학락, 샌드위치를 먹으며 출근길을 서두른다. 이 때 개한마리가 꼬리를 치며 학락쪽으로 다가온다. 학락, 샌드 위치를 조금씩 떼어주다가 문득 삐삐통에서 손가락을 꺼내어 준다. 받아 먹는 개. 학락, 택시 타는곳을 향해 걸어간다. 학락에게서 벗어난 카메라, 총총 걸어가는 개를 쫓아간다. 달 동네 쪽으로 걸어가는 개.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