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로만 Narrative

[시나리오] 끈 - 김지운

버블건 2007. 11. 17. 09:49
"끈"

1. 해면의 일렁거림 - 아주 천천히 아주 미세하게 물의 유동성을 이미지화 한다.
해초가 물의 흐름에 따라 아주 천천히 아주 미세하게 유동한다.

페이드 아웃

2. 해안선을 따라 몇 개의 울타리가 있고 그 사이로 길게 끈이 늘어져있다.
텅빈 바닷가, 길게 늘어선 끈이 약한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갈매기들이 낮게
날아다닌다.
어디선가 바람에 날아온 신문지조각이 끈에 걸려 바르르 떤다.

페이드 아웃

3. 초여름, 대낮,
인적도, 차량도 없는 한적한 해안가에 빨간색 차 한 대가 시동을 꺼지 않은채
미세한 엔진소리를 내며 덩그러니 서 있다.
차 안엔 20대 중반의 여인 하나가 시트에 기댄채, 마치 숨이 멎은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정적을 깨는 핸드폰 소리에 잠을 깬 여자, 급하게 핸드폰을 찾는다.
서둘러 찾아보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잠시, 소리의 진원지를 찾듯이 주의를 기울이다가 엉덩이 밑에 깔린 핸드폰을
집는다.
잠긴 목소릴 지우듯 헛기침.
"여보세요"
전화가 끊긴다.

페이드 아웃

타이틀 - "끈"

4. 불빛 하나 없는 칠흙같은 밤.
차 한대가 해안도로를 따라 어둠을 가르며 질주하고 있다.
카메라, 차 라이트에 비친 도로바닥을 잡으며 속도감을 낸다.
중앙선을 넘었다가 다시 들어오고 넘었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카메라, 차안으로 들어오면 여자의 눈꺼풀이 졸음을 못이기고 떳다 감았다
반복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차 앞으로 시커먼 물체 하나가 시야에 나타났는가 싶더니 차
뒷편에 쿵하며 무엇인가 부딪치는 소리, 여자 놀래 황급히 핸들을 꺽으며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에스자를 그리며 요란한 소릴 내며 선다.
정적...
여자 눈을 감고 있다.
겨우 눈을 뜨고 뒤를 바라보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게 생각한 여자, 조심히 차문을 열고 나가본다.
역시 눈에 띄는건 아무것도 없다.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몇발자국 앞으로 걸어가본다.
확인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최소한의 상식적인 행위로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인
것처럼.
걸음을 멈춰선 여자 이상한 느낌이 드는지 얼어붙듯 서고 만다.
다시 뒷걸음질을 하는 여자, 그때 등뒤에 누군가 서있다.
여자의 어깨 위로 남자의 손 하나가 툭하고 떨어진다.
단발의 비명을 지르는 여자, 동시에 그녀의 비명소리 때문인지 남자도 놀란다.
순간적으로 서로 물러서는 두 남녀.
그 상태로 서로를 바라본다.
서로의 공격의사가 없음을 그런 상태로 -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자세이지만 -
알아차린다.

5. 두 남녀, 나란히 차에 앉아 있고 차는 아까보다는 속력을 줄인채 가고 있다.
여자, 아직은 불안한지 옆눈으로 남자를 힐끔 힐끔 쳐다본다.

여자 : 아까 쾅소리가 나던데 어디 다치신데 없으세요.
남자 : 아, 그거 가방이 부딪친건데 괜찮습니다.

남자, 말을 하면서 가방을 꼭 껴안는다.
여자가 가방을 쳐다보자,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발밑으로 가방을 내려 놓는다.
서로 말이 없고.
적막을 지우려는 듯 라디오를 켠다.
라디오에서 시보 알람이 들리고 뉴스 시그널이 들리더니 아나운서의 긴박한 멘트가
들린다.
대충 요약하면, 정신병원을 탈출한 한 사람이 연쇄살인을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동해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도다.
여자 고개 들어 지나가는 표지판을 보자 동해 1km라고 씌여 있다.

여자 : 어... 어디... 어디에 내려 드릴까요?
남자 : ...(아무말 없다)
여자 : 저, 어디 내려 드릴까요?
남자 : 네? 아... 네.

그리고는 또다시 아무 말 없다. 그게 여잔 더 무섭다.
정적...

6. 술집처럼 보이는 식당 하나만 겨우 불빛이 켜져 있다.
그 앞에 미끄러지듯 차 한대가 선다.
남자, 내린다.
내리고선 여자에게 묻는다.

남자 : 식사 안하시겠어요?
여자 : 아뇨, 저 배고프지 않아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자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

여자 : 그럼...

여자가 안에서 문을 쾅하고 세차게 닫으며 내빼듯 차를 출발시킨다.

7. 그러나 한참을 가도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 지나자 군인과 경찰들이 검문을 한다.
군인 하나가 운전석 옆으로 온다.
안을 무표정하게 들여다 본다.

군인 : 가방 좀 볼수 있을까요?

여자가 조금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핸드백을 연다.

군인 : 아니 그 가방 말고요.
여자 : 네? 무슨 가방요?
군인 : 저기 조수석 옆에 있는 가방이요.

군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여자.
거기엔 좀전의 남자가 두고 내린 가방이 그대로 놓여 있다.
군인이 가방을 열자 거기엔 끈만 가득 들어 있다.

8.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여자.

9. 식당문이 열리고 여자가 가방을 들고 서 있다.
식당 안에는 그 남자는 보이지 않고 주인인 듯한 여자 하나와 이곳 사람같지 않는
남자가 식사를 하고 있다.

여자 : 저 말씀 좀 묻겠는데요. 혹시 30분전 쯤 검정색 점퍼 차림의 남자분 하나
오지 않았었나요?
주인 : 식사 끝내고 가셨는데요.
여자 : 어디로 간다는 말, 있었어요?
주인 : 글쎄... 여기 묵을만한데가 어디 있냐고 묻길래 알려 줬는데 글루 갔을려나?
여자 : ... 어디죠?

10. 모텔문이 열리고 가방을 들고 들어오는 여자.
프론트실 작은 창문이 열리고 이상하게 생긴 청년의 머리가 쑥 나온다.

여자 : 저 혹시 조금전에 검정색 점퍼 차림의 남자분, 여기 묵었나요?
청년 : 예, 근데 내일 아침까지 깨우지 말라고 했는데... 연락 할까요?
여자 : ... 아니, 됐어요. 여기 말고 다른 숙박할 때가 있습니까?
청년 : 여기선 여가 제일 크고 좋은데인데... 시내로 나갈려면 두세시간 더 가야
하는데 길이 험해서 남자분들도 밤엔 잘 안가거든요.
여자 :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음-- 그럼, 조용하고 깨끗한 방 하나
주실래요?

여자, 혼자라는게 이상한 생각을 줄까봐 망설이다가.

여자 : 그 손님이랑 동행인데요. 그냥 깨우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아서요.

11. 객실은 시골 모텔 치고 비교적 깨끗한 편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악하다.
여자는,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침대에 걸터 앉아 핸드폰을 꺼낸다.
신호가 가는 사이에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선 불을 붙인다.

여자 : 여보세요? 엄마? 어 나야. 알았어.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냥 바람 좀 쐬러
나온거야. 낼 일찍 올라갈꺼야. 알았어. 겁은 무슨? 내가 어린내야? 혼자 나오니까
좋은데 뭘. 아유-- 알았다니까. 올라가서 다시 연락할께. 끊어.

핸드폰을 끄고선 피곤한지 픽하고 침대 위로 아무렇게나 쓰러진다.

잠깐 잠이 들었을까? 엘리베이터 열리는 소리.
복도를 지나는 쿵쿵거리는 발소리에 눈이 떠진다.
그 소리는 여자의 객실문 앞에서 멈춘다.
잠시후, 도어 손잡이가 조금씩 돌아간다.
재빨리 담배를 비벼끈다.
문이 삐이걱 소리를 내며 열린다.
눈을 질끈 감는다.
숨이 콱하고 막히면서 움직일수도 소리를 지를수도 없다.
마치, 가위에라도 눌린듯 하다.
객실 안으로 들어오는 검은 그림자.
그러나 끄지 않은 담배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라 당황한다.
검은 그림자가 그녀 앞으로 다가온다.
손 하나가 그녀의 배 위에 닿는다. 숨이 막힌다.
크고 축축한 손은 그녀의 옷자락을 헤치고 브라우스의 단추를 하나하나 푼다.
손가락이 그녀의 배꼽에서 천천히 올라가 브래지어 밖으로 나온 가슴선을
쓰다듬는다.
브래지어 안으로 손이 들어가 그녀의 가슴을 천천히 부드럽게 만진다.
그녀의 호흡이 조금씩 가빠온다.
가슴을 애무하던 손이 갑자기 멈춘다.
브래지어 안에서 손을 빼더니 다시 가슴 위로 올라가 그녀의 입술과 귀볼을 타더니
옆에 있는 재떨이에 꺼지지 않은 담배를 비벼 끈다.
잠시후, 그녀를 내려다보던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돌아서 나간다.
나간걸 확인한 여자는 벌떡 일어나 문을 조금 열어 밖을 본다.
복도엔 아무도 없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소리같은게 반복적으로 들린다.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소리가 나는 곳을 천천히 걸어가본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여자는 문이 뭔가에 닫히지 못하고 계속 반쯤 닫혔다 열리는
엘리베이터 아래를 쳐다 보다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른다.
바닥에 온몸이 끈으로 묶인채 피범벅이 되어 죽어 있는 남자의 끔찍한 사체가
누워있다.
그 사체엔 머리가 없다.
(참고 : 남자-검음색 점퍼 차림의...)

12.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여자.
악몽을 꾼것 같다.
온몸에 식을 땀이 베어 있다.
그러나 이상한건 그녀의 브라우스가 풀어져 있다.
방안을 살핀다. 아무것도 이상한 흔적이라곤 발견할 수 없었다.
자기 물건들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다.
테이블 위에 가방도 그대로다.
한숨을 길게 내쉬던 여자는 상체를 무겁게 일으켜, 잠시 침대 위에 걸터 앉아
머리를 쓸어올린다.
화장대 거울 앞으로 다가가 밤사이 수척해진 자기 얼굴을 바라보다가 흠짓 놀란다.
어제 남자가 놓고 내린 가방과 똑같은 가방이 두개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다.
여자는 얼어붙듯 그 자리에 꼼작 못하고 서 있다.
가방 밑으로 뭔가 끈적끈적한 액체가 흐르는 것 같다.
조심히 가방 하나를 열어본다.
가방 안엔 끈만 한가득 들어있다.
또 하나를 열어본다.
마찬가지로 끈이 한가득 들어있다.
하지만 끈에 피가 여기저기 묻어 있다.
끈을 꺼내본다.
끈이 끊임없이 나온다. 끈 한 뭉텅이를 꺼내자 그 아래, 어제 만났던 남자의 머리가
피범벅이 되어 크고 하얀 눈자위를 치켜뜬 상태로 들어있다.

13. 모텔 밖으로 도망치듯 뛰어나오는 여자.
대낮이지만 마을에 인적이 없다.
더욱 놀란 것은 그녀의 차도 보이지 않는다.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둘러보며 차를 찾는 여자.

14. 바닷가 한쪽에 그녀의 차가 덩그러니 서있다.

15. 허겁지겁 차 있는 곳으로 달려온 여자는 핸드백을 열어 키를 찾는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차는 열리지 않는다.
여자는 갑자기 광기를 부리듯 차문을 흔들며 울음을 터뜨린다.
얼굴은 땀과 눈물 범벅이 되어 일그러져 있다.
천천히 차 밑으로 쓰러지듯 주저 앉으며 울음은 그치지 않는다.
카메라, 점점 멀어져 가고 빈 바닷가에 차와 그녀만이 멀이 보인다.

16. 한적한 바닷가, 말뚝 사이로 끈이 느슨하게 늘어져 있고 약한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17. 남자의 경쾌한 발걸음, 하지만 모래사장이라 그렇게 빠르지는 않다.
한 남자가 손에 끈을 감으면서 가벼운 콧노래를 부르면서 모래사장 한가운데를
질러간다.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던 그 남자다.
콧노래는 더욱 흥에 겨워 휘바람으로 바뀐다.
그의 발걸음도 더욱 가벼워진다.

18. 카메라는 천천히 수심으로 내려온다.
바닷속 해초들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천천히 부드럽게 유영하듯 보인다.
그 밑으로 여자의 머리칼이 해초처럼 부드럽게 움직인다.
온몸이 끈으로 꽁꽁 묶인채 끈의 끝쪽은 바위 틈에 단단히 메어져 있고 여자의 몸이
수심의 물 흐름에 따라 천천히 부유한다.
카메라, 그녀의 그런 얼굴로 다가간다.
그녀의 표저은 어딘지 평화롭고 은은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카메라, 더욱 그녀의 얼굴로 천천히 들어가면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카메라를
노려보는 여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