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애정 Affection/Film

소사이어티 - 브라이언 유즈나 [펌]

버블건 2007. 11. 21. 17:39


세 계 어디서나 청소년들은 기성 세대에 대한 반항과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방황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브라이언 유즈나가 85년에 만든 <소사이어티 Society>의 주인공 빌 휘트니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에겐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조건이 붙는다. 식구들은 모두 금발머리를 한 전형적인 백인의 모습이지만, 얼핏 보기에도 그는 검은 머리를 한 히스패닉 계열이다. 그에게 동조하는 사람들도 만만치는 않아서, 예컨대 늘상 그의 곁을 어슬렁거리는 한 여자는 검은 머리에 흑인의 골격을 가진 이상한 잡종 인간이다.

비버리 힐즈에 사는 빌은 좋은 학교와 가족들, 그리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요즘 이상한 환상에 사로잡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다 누이를 따라 다니던 친구에게서 건네받은 카세트 테잎에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무엇'이 담겨있다. 점점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빌. 자신의 정신과 의사에게 그 테잎을 들려주지만 이런, 그 테잎은 벌써 친구와 듣던 그 내용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테잎을 준 친구마저 교통사고로 급사한다.

그 와중에 새로 여자를 사귀게 된 빌은 잠깐 동안 그녀에게서 안정을 찾는 듯 하지만, 이내 밀교 집단 '소사이어티'에 접근하게 되면서 다시 생활은 엉망진창이다. 여기에 죽은 줄 알았던 친구가 되살아나더니만 빌은 결국 소사이어티의 구성원들이 벌이는 난장 파티의 제물로 잡히게 된다.

이 영화는 시작한 지 70여분이 지나도록 '고어'영화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드라마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도 그렇게 빠르거나 자극적으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그저 관객들에게 차분히 앉아 기다리라고 강요할 뿐이다.

무엇을 위해서?

그것은 엔딩 시퀀스의 구토애호적 10분을 위해서다.

기 성 세대에 대한 반발 심리와 입양아로서의 피해의식에 젖은 빌은 가족과 이웃, 정신과 의사, 심지어 경찰까지 불신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쯤 되면 빌이 무슨 일을 저지를 지 가히 짐작이 된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고 해서 전부 빌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패컬티>처럼 조금은 온건한 방법으로 사회를 증오할 수도 있다. 그러나 (89), (90), (93) 에서 익히 증명했던 것처럼, 흥건한 선혈과 내장파열의 애호가로 알려진 브라이언 유즈나는 사회를 완전히 찢어놓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필자도 감독이 '빌'의 강박관념을 어떤 식을 표출할지 앞서 기대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공포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

하나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듀얼>이나 <죠스>에서 사용했던 관객과의 '기 싸움'이다. 영화가 발산하는 구조적인 기에 압도당하면 관객은 정체를 알 수 있는 기묘한 공포에 휩싸인다.
또, 하나는 이 영화의 감독 브라이언 유즈나처럼 만화적인 상상력과 엽기적인 스타일을 결합시켜 관객의 허를 찌르는 방법이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브라이언 유즈나는 특수효과를 맡은 스크리밍 매드 죠지(그는 <폴터가이스트 2>와 <어비스>에서도 특수효과를 담당했다)에게 생전 처음 만들어보는 인간의 형상을 주문했다. 엉덩이에 얼굴이 붙어있는 남자, 엄마의 몸 안에 물구나무를 서있는 여자아이, 여러 사람이 한 몸안에 뒤엉켜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등은 85년 당시까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마지막 10분의 난장 파티에서 사용되었고, 이 엽기적인 시퀀스야말로 브라이언 유즈나 특유의 파괴 심리를 가장 적절히 증명하는 장면이라 하겠다. 이 뿐이랴, 제물로 잡혀 온 남자의 살을 녹여 그의 몸둥아리를 다른 사람들의 육신과 한 덩어리로 만들고, 항문을 통해 온 몸을 관장하는 역겨운 장면이 보란 듯이 연출한다. 주인공인 '빌'도 이에 질세라, 자신을 괴롭히는 소사이어티 단원의 내장을 훑어낸다.

그럼,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소사이어티>일까?

말 할 것도 없이 '상류사회'를 지칭하는 이 제목은 자본주의 사회의 신귀족층인 부르조아지들의 폐쇄집단을 전복시켜 버리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 빌을 곤경에 빠트리는 밀교집단 '소사이어티'는 상징적인 설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브라이언 유즈나가 선택한 '고어'적인 화법은 그 본류적인 의미와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고어'영화의 태동은 기성 사회의 불균등한 구조와 상식적인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어디 한번 갈 데까지 가보자는 태도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사이어티 단원들의 신체훼손 파티. 그리고 이보다 더한 방법으로 사지를 절단하는 빌의 유쾌한 살인 파티. 어떻게 이보다 더한 사회적 저항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 찌 보면 이 영화는 B급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쓰레기 같은 영화일 지 모른다. 하지만 신체 절단과 엽기적인 비주얼, 노골적인 누드가 결합되는 가운데 <소사이어티>는 B급 영화가 가져야될 사회비판적인 모습을 충실히 따른다.

ps. 영화 중반에 나오는 주인공의 양부모의 괴기한 모습. 즉, '힙페이스'의 유래는 중세인들이 믿었던 악마의 형상에서 착안한 듯하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악마는 사람처럼 불룩한 엉덩이가 없는 대신 그 자리에 얼굴이 박혀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나온 영어 욕설이 바로 "kiss my ass(내 엉덩이에 입을 맞춰라)"인 것이다.


-닥터뱀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