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소리 Soliloquy

[뻘글] 쥐며느리

버블건 2023. 2. 3. 04:21

 

몸이 아프다면서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의 집이 어딘지도 모른다. 그냥 신경 쓰지 않으면 되는데... 자꾸 신경 쓰인다. 걱정된다. 뭘까 몇 번 본 것도 아닌데... 설마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어쩌지... 이대로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거 같다. 그래 아무 일 없다는 것만 확인하자. 전화는 꺼져 있으니...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다. 그를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자. 그날 서울에 괴수가 처음으로 등장한 날이다. 시청광장이 밑으로 꺼지면서 그 안에서 쥐며느리처럼 생긴 몸길이 50미터는 되어 보이는 녀석이 나와서는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있던 그때 난 헤드폰을 끼고 빌딩 앞을 걷고 있었다. 누군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고 난 깜짝 놀라 그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내 손을 잡았고 나는 수치심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벗어나려 달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50미터 밖에서 이쪽으로 기어 오는 거대한 그놈을 보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내 손을 잡아 끄는 그에게 이끌려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다 주위가 빠르게 어두워졌고 위를 올려보고 거대한 녀석의 눈과 마주쳤다. 아니 그렇게 느꼈다. 녀석을 피해 옆 건물로 들어갔고 우릴 향해 엎드리자 우린 안쪽으로 지하로 내려갔고 우릴 따라 들어오려는 녀석이 건물에 부딪혔고 그 진동으로 건물이 흔들렸고 한동안 진동이 이어지며 건물이 파손되고 잔해들이 떨어지며 우릴 그 지하 통로 계단 밑 공간에 가두고 말았다. 잔해가 떨어지는 동안 그는 나를 덮쳐 보호해 줬고, 그의 거친 호흡을 느끼며 그렇게 몸을 밀착하고 있자니 그 와중에도 그의 바지 앞부분이 부풀어 오르는 걸 보고 말았다. 이런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전혀 나쁘게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살았다, 살아있다, 살아남았다는 그 순간을 위한 세리머니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 아수라장이 된 1평 남짓한 공간엔 갑자기 긴장이 흘렀다. 그의 신음성이 들렸고, 모든 소음이 사라진 다음 그는 몸을 일으키며 나를 가리느라 짚고 있던 손을 뒤로 돌려 엉덩이 쪽에 꽂힌 걸레 봉을 빼서 옆으로 던지고 몸을 일으킨다. 난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그를 부풀어 오르게 한 것은 나와의 신체 밀착이었는지 엉덩이에 꽂힌 걸레 자루 때문인지... 그리고 어색함을 깨려는지 그는 잔해를 비집고 나갈 틈을 만들어 날 그곳에서 꺼내 주었다. 인사도 없이 떠나려는 그에게 전화번호를 받았다. 뉴스에 의하면 괴수는 보광동에서 용산공원 일대를 초토화 시키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그가 사라졌던 방향이 그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벌써 24시간은 더 지난 듯하다. 그를 다시 꼭 만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