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소리 Soliloquy

[뻘글] 미몽(密夢)

버블건 2023. 2. 3. 16:31

 

 

 

죽은 친구의 삼우제에 갔다 이상한 경험을 했다.

사실 누군가에 삼우제에 참석하는 게 처음이었고, 이번에 삼우제가 치러진 곳이 돌아오고 나서 알았지만 평범한 곳이 아니었다.

 

이 친구와는 참 악연이라면 악연이었는데... 걔네 엄마가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았는지 일부러 연락을 해 오셨더라고. 그게 아니면 사실 걔가 죽었다는 걸 알았더라도 안 갔을 거거든. 내가 걔하고 만날 때 걔네 엄마를 몇 번 뵌 적이 있었거든. 그때마다 날 좋게 봐 주기도 했고, '미안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자기 자식이니까 대충 나와 걔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거 같아.

 

사실 그 애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싶어 했던 거 같아.

 

그 방법이 경험으로 터득한 가스라이팅이었던 거고.

그 친구의 가스라이팅은 처음엔 자신의 불행을 끊임없이 늘어놔..'이런 예기까지 한다고' 그렇게 느낄 만큼. 그럼 상대는 이 친구가 자신을 신뢰한다고 느끼고 그의 불행에 감정이입하게 되는데.. 다 그렇진 않겠지만 나처럼 감정이 앞서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 친구에 불행에 같이 아파하고 내가 돕고, 보호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럼 딱 미끼를 무는 꼴이 되는 거야. 그다음부터는 낚싯대를 리프트인 풀로 당겼다 늦췄다를 반복하면서 반항할 수 없는 심리적 그로기 상태로 만들고 그 사람을 쥐고 흔드는 거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그럼 꼼짝없이 도마 위에 올라가서 썰면 써는 대로 썰리는 거야.

 

사족이 길었는데, 삼우제가 열렸던 그 절이 평범치가 않다. 보통의 절들과는 다른데, 죽은 그 애도 이 절에 다녀가고 돈을 많이 벌었단다. 그 절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많단다.

 

허지만, 그 댓가인건가?.. 성공은 했다지만, 누려보기도 전에...

 

법당 앞에 머뭇거리던 나를 그 애 어머니 손에 이끌려 위패를 보관하는 봉안당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물론 그런 곳이 처음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분위기가 묘한 거야. 불교라던가 우리 전통 뭐 그런 거 하고도... 묘하게 이질적인 것이 언젠가 다큐에서 봤던 티벳 밀교? 그와 유사한 어쨌든 낯설고 묘하고 끊임없이 뭔가가 몸을 스치는 불쾌하면서도 자극적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설명하기 쉽지 않은 그런 곳이었어. 

 

그런데 거기서 구석 바닥에 사람 같은 게 있는 거야. 

사람이 그렇게 작은 수는 없는 건데. 

근데 분명 사람이었어.

날 보면서 뭔가 말을 하려는 거 같더라고.

순간 주위를 둘러봤지만, 나 말고는 아무도 보지 못한 거 같았어.

 

망설이다 신발 끈을 고쳐 묶는 척하면서 몸을 숙이는데, 갑자기 추락하는 듯이 내 몸이 착 달라붙는데 그렇게 작아져서 그 작은 사람 손에 이끌려 위패들이 모셔있는 장들 뒤로 돌아 들어가니 벽에 뚫린 통로가 있었고 통로를 지나 계단을.. 작아진 내가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있었고 그곳을 그 사람에 이끌러 올라갔는데, 계단 끝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또 길고 긴 통로를 달리고 달리며 어디로 가는지 묻는 걸 잊고 그냥 따라갔어.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러다 끝에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문에 조그만 창이 있었고 그 밖에 사람들이 보였어. 각진 턱이 인상적인 여자가 중앙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 흰 수염이 인상적인 스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어. 그 앞에 네다섯 명의 남자들이 꿇어앉아 있었고.. 스님이 그 여자를 바라보며

 

"자네는 사내로 태어났으면 군주가 될 운명이었어, 허나 계집으로 태어나 천한 일을 하는 동안 하늘의 기운을 많이 까먹었네. 그러니 이들을 통해 양기를 충분히 보충하고 이 껍데기들을 부릴 수 있도록 조종수를 먹이도록 하게."

 

그러자 여자는 귀찮다는 얼굴로 일어나서 남자들의 입을 통해 입에서 뭔가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키스 비스름한 그런 이상한 동작을 하면서 남자들 무리를 한 바퀴 돈 다음 자리로 돌아와서 치마를 들어 올리자 남자들이 그 치마 속으로 들어가서 고양이가 물먹는 거 같은 소리 '할짝할짝 철벅철벅' 뭐 그런 소리가 들리는 거야. 내가 너무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는데 그만 소리를 내고 말았어. 

 

그랬더니 모두 내 쪽을 돌아보는 거 아니겠어. 물에 젖어 기괴하게 번들거리던 얼굴의 남자들과 묘하게 달아올라있는 그 각진 턱 여자의 얼굴이 동시에...

 

너무 놀라서 왔던 길로 정신없이 돌아 뛰는데, 아까 날 끌고 온 사람... 그 사람 생각이 그때 나는 거야. 그 사람을 찾기 위해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어. 

 

그리고 그때 뭔가에 밀려 넘어지면서 잠깐 충격에 멍했다.. 바로 정신없이 일어나는데 크레인으로 끌어 올려지는 느낌으로다. 

 

쭈욱 위로 끌어 올려지는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더라고.

 

'이거 뭐지! 내가 꿈을 꾼 건가?'

 

걔네 엄마가 뭔가를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가는 거야.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도대체 그건 뭐였을까?

 

버릇처럼 무심코 TV를 틀었는데, 대선이 코앞이라 대선후보들의 이모저모가 나오는데, 아까 거기서 봤던 물에 젖어 멍한 눈을 한 그 남자와 각진 턱을 한 그 여자가 나오는 거야. 그 뒤로 흰 수염의 그 스님까지... 그러더니 그 스님이 날 보면서 슬쩍 입꼬리를 올린달까. 

 

정말 날 보는 거 같았어.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