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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다큐 영상, 시민들과 호흡 (2008. 1. 15)

버블건 2008. 3. 14. 14:44
[현장]비정규직 다큐 영상, 시민들과 호흡
호남인권영상공모전 대상작 ‘지금 보고 계신거죠?’ 거리 첫 상영
2008년 01월 15일 (화) 16:52:03 이국언 기자 road819@siminsori.com

(딸) “엄마 전에는 흰머리 하나도 없었는데….”
(해고자 윤옥주씨) “해고된 훈장이 흰머리지 뭐….”

딸은 어느새 하얗게 내려앉은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잇지 못한다. 겸연쩍기는 어머니 윤옥주씨도 마찬가지다. 남편을 대신해 가장의 역할을 떠맡다 해고된 처지에 딸 얼굴 보기도 한편 미안한 노릇이다.

광주시청에서 청소 용역원으로 일해 온 윤씨는 지난해 3월 8월 광주시에 고용 승계를 주장하며 박광태 광주시장 집무실 앞 복도에서 시위를 벌이다 광주시청 직원들에 의해 강제로 쫓겨났다. 광주시는 속옷만 입고 발버둥 치는 이들을 강압적으로 몰아낸 뒤 바로 다음날 해고됐다. 공교롭게 광주시청에서 쫓겨난 3월 8일은 여성의 인권을 되새겨 보자는 의미에서 UN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 9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난해 6월 26일 광주세계여성평화포럼 행사가 벌어지는 김대중 컨벤션센터 안과 밖의 풍경은 더 대조적이다. 50대 아주머니들이 20대 아들과 다름없는 젊은 전투경찰에 가로막혀 몸부림을 치고 있는 그 시각 박광태 광주시장은 광주세계여성평화포럼에 참석한 국내외 여성인권지도자들 앞에서 “광주세계여성평화포럼의 이번 의의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여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모인 점”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광주시청 청소 용역 비정규직 투쟁이 이번에는 영상을 통해 거리에서 시민들과 만나게 됐다. 광주시청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다큐 영상 ‘지금보고 계신거죠?’가 지난 10일 광주시 금남로 삼복서점 앞 거리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첫 거리 상영을 펼친 것.

영상은 신규노동자의 80%가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오늘날 비정규직이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고발한다. 어제까지 자신들의 궂은 일을 대신한 비정규직을 하루아침에 귀찮은 존재로 내모는 비정한 현실을 담고 영상은 비극적이다 못해 코믹하다. 해고의 논리가 너무나 빈약한데다 전 행정력을 동원해 우리 사회에 가장 낮은 존재로 살아가는 여성 비정규직들과 1년여 가까이 씨름하고 있는 인권도시 광주의 현실이 영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큐영상은 시청에서 쫓겨나 300여일이 넘도록 투쟁해온 광주시청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태도와 수준을 들여다보게 한다.

김영순, 백종록, 이정훈씨 등 노동자로 일하는 광주지역 미디어 활동가들이 제작한 이 작품은 지난해 12월 호남인권영상공모전에서 대상인 인권상을 받았고, 제12회 광주인권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상영되면서 광주시청 비정규직투쟁을 확산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광주인권영화제 조직위원회와 광주전남미디어행동연대, 공공서비스노조 등은 영상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기 위해 상영위원회를 구성했고, 지난 10일 광주시 금남로 삼복서점 앞 거리에서 시민들을 통해 첫 거리상영을 펼쳤다. 상영위원회는 주류 미디어에 의지하지 않고 이번 상영을 시발로 다양한 시민들을 찾아 거리에서, 공장에서, 공동체 모임에서 영화 상영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민중언론 참세상, 민중의 소리 등을 통해 전국에 광주시청의 태도를 고발하는 한편, 국제영화제를 포함한 다양한 국내영화제에도 상영을 추진할 계획이다.

영상위원회 관계자는 “지역의 비정규직 문제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내고, 영상제작의 공동작업 시스템도 갖춰 가는데 의의를 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첫 거리 상영 현장에서는 제작자들을 대신해 백종록씨가 공모전 시상금 전액을 광주시청 비정규직 투쟁기금으로 전달해 주위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 광주시청 비정규직 문제를 소재로 한 다큐영상이 지난 10일 광주시 금남로 삼복서점 앞 거리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상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