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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입', 주인을 물어뜯다..前대변인 회고록 파문>

버블건 2008. 5. 29. 11:22
(워싱턴=연합뉴스) 이기창 특파원 = '이라크 전쟁은 중대한 전략적 실수였다', '부시는 정치적 편의에 따라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라이스는 부시의 오판을 부추겼고 미국 언론도 제 역할을 못했다', '체니는 막후에서 만사를 요리하는 요술쟁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밑에서 3년 가까이 백악관 대변인으로 일했던 '부시의 입' 스콧 매클렐런 전 백악관 대변인이 다음달 2일 발간되는 회고록에서 부시 대통령과 측근들을 신랄하게 비판해 워싱턴 정가에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 부시 백악관의 내막과 워싱턴의 기만 문화(What Happened : the Bush White House and Washington's Culture of Deception)'라는 제목의 이 회고록은 이라크전쟁에서부터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응 등에 이르기까지 부시 행정부의 오점들을 적나라하게 공개해 파문이 일고 있다.

미국 주요 언론이 미리 입수해 보도한 매클렐런 전 대변인의 회고록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공격한 진정한 동기는 중동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과장함으로써 진실을 호도했다고 주장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측근들도 이라크 침공이 낳을 엄청난 결과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부시의 전쟁 결심을 부추겼으며, 부시는 4천여명의 미군이 죽고 수 만 명의 사상자가 날 것을 알았다면 결코 전쟁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매클렐런은 지적했다.

매클렐런은 특히 라이스 장관이 이라크 침공과 WMD 정보 왜곡 등 자신의 책임 하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교묘하게 책임을 면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인물이라며 "지성적인 반론은 대체로 무시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딕 체니 부통령은 이라크 전쟁에서부터 테러용의자 구금 문제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모든 정책을 막후에서 요리하는 '요술쟁이'라고 표현했다.

역사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의 판단대로 이라크 침공이 '중대한 전략적 실수'였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전쟁은 필요할 때 벌여야 하는 것이지만, 이라크 전쟁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고 그는 평가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벌이기 위해 여론을 호도하는 동안 미국 언론도 본연의 비판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그는 비판했다.

그는 부시가 이라크전에서 중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채 월터 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 부상병을 찾아 신의 가호를 빌며 입을 맞춘 뒤, 7살짜리 아들에게 아버지는 용감한 분이라고 말하고 눈물을 훔치며 병원을 나서던 순간 "그의 눈에서 의심과, 자신의 결정으로 초래된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대한 생생한 깨달음을 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 결정은 그의 지능에 문제가 있거나 멍청하지 않느냐는 의문을 일으키고 있지만 "부시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충분히 스마트하다"고 그는 평가했다. 하지만 부시의 지도력 스타일은 심도있는 지적 토론이 아니라 본능이나 확신에 의존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

또 2004년 대선 운동 기간에 부시의 마약복용 의혹이 불거지자 부시는 "이런 웃기는 소문들이 언론에 나서는 안된다. 솔직히 나도 코카인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다. 그 날 늦게까지 흥청망청 파티를 한 건 사실이지만 코카인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는걸 보고 부시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편의에 따라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는걸 처음 느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 부시 행정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비판했으며,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신분 노출사건인 '리크 게이트' 당시엔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 때문에 대변인으로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됐다고 폭로했다.

매클렐런의 회고록은 부시를 충실히 따랐던 이른바 '텍사스 사단'의 일원이 부시와 그 행정부의 실정들을 정면으로 까발렸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매클렐런은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 시절인 1999년 공보 참모로 발탁된 뒤, 대통령 선거캠프 대변인과 백악관 부대변인을 거쳐 2003년 7월부터 2006년 4월까지 3년 가까이 백악관 대변인으로서 '부시의 입' 역할을 했다.

또 백악관 대변인이 회고록을 낸 적은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으나 대통령이 현직에 있는 동안 기자보다도 더 신랄하게 대통령을 비판하는 백악관 대변인의 책이 나왔다는 자체도 논란거리다.

매클렐런은 지금도 부시를 존경하지만 자신의 독자적인 견해와 시각을 공유하고 싶었다며 "우리는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있었지만 불행히도 과오가 좋은 일들을 덮어버렸다"고 자탄했다.

매클렐런이 사임하던 날 부시는 기자들 앞에 나와 훗날 텍사스로 돌아가서도 매클렐런과 나란히 앉아 백악관 시절을 회고할 것이라며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느낌이리라 확신한다. 스콧! 정말 훌륭했어"라고 치하했으나 이제 두 사람이 이 같은 정다운 시간을 갖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매클렐런의 회고록에 대한 논평을 피했으나 로브 전 고문은 매클렐런이 '좌파 블로거' 같다며 뒤늦게 부시와 측근들을 비판하고 나선 데 대해 노골적인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