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로만 Narrative

[단편소설] 포스트잇 - 김영하

버블건 2007. 11. 17. 10:58

포스트잇

김영하


 처음으로 산 수동 카메라. 36~72mm 렌즈가 장착되어 있고 모터 드라이브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수동이다. 이 카메라는 빛이 들어오는 구멍, 그것을 조절하는 조리개, 그리고 셔터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필요하거나 과장된 기능은 하나도 없다. 간혹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기가 막힐 정도로 멋진 사진을 뽑아낸다. 나와 함께 유럽과 터키, 캄보디아, 태국, 인도네시아를 여행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카메라를 통해 본 것만을 기억하게 되었다. 내 눈의 기계적 확장태라 할 수 있겠다.

  중학교 3학년 때 이 책을 처음 읽었다. 소풍 전날이어서 오후가 되자 학교는 묘지처럼 텅 비어버렸다. 나는 혼자 도서실에 가서 소설을 읽었다. 그러자 뿔테안경을 쓴 국어선생이 다가와 나를 귀순용사 보듯 들여다보았다. ꡒ소설 좋아하니?ꡓ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내게 한 권의 소설을 건네주었다. 『달과 6펜스』. 증권거래인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직장을 버리고 홀연히 떠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 고갱을 모델로 한 이 소설에 나는 매료되었다. 그리고 계시처럼 어떤 예감에 휩싸였다. 그건 내 삶의 행로가 스트릭랜드의 그것처럼 드라마틱하게 바뀌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경영학과의 학부와 대학원을 멀쩡히 졸업하고 갑자기 소설가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그 전환의 1퍼센트쯤은 서머셋 몸, 혹은 그 국어선생의 탓이다.



  대금



  1986년 3월 2일. 신입생 수강신청 날이었다. 나는 학생회관 1층에서 신입생을 상대로 열린 국악기 전시회를 보러 갔다. 난생 처음 보는 희한한 악기들 중에서 대금을 발견했다. 대나무에 구멍을 몇 개 뚫은 지극히 단순한 그 악기를 불어보고 싶어서 국악연구회라는 동아리 가입원서에 이름을 적었다. 가입번호 2번이었다.

  대금불기는 쉽지 않았다. 손가락은 구멍을 막지 못하고 아무리 거센 숨을 불어도 소리가 나질 않았다. 5월이 돼서야 내 대금에선 소리가 났다. 공강시간마다 달려가 그 대나무 막대기를 어깨에 얹었지만 모든 음을 낼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한 달이 더 지나서였다. 그로부터 삼 년간을 대금과 함께 살았다.

  2학년 때 어느 젊은 장인으로부터 산 내 대금은 동아리에선 명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맵짠 소리를 내질렀다. 청의 떨림도 경쾌했고 음의 파장도 깊고 길었다. 그 대금이 지금은 방구석에서 먼지 쌓인 채 말라가고 있다. 입김을 받지 못하는 대금은 버림받은 후궁과 같다.

  갈대의 단면을 잘라보면 얇은 막 한 겹이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잘 발라내어 말리면 대금의 청공을 막는 청이 된다. 청을 청공에 붙여 대금을 불면 저음과 고음에서 음이 떨린다. 풀피리의 원리와 비슷하다. 입김의 수증기가 청에 젖어들어 평상시의 소리에 파동을 얹어준다. 그 청은 너무도 약해서 오로지 입김만을 견딘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조금만 힘을 주어 누르면 힘없이 파열되고 만다. 또한 청은 아주 낮은 음과 아주 높은 음에서만 운다. 내가 알던 어떤 여자를 닮았다. 그녀도 청처럼 자기 삶의 아주 낮은 곳, 그리고 아주 높은 곳에서 울었다.

  내게 대금을 배웠던 여자였는데, 어느 날 내게 황동규의 시를 적어주었다. ꡒ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주면은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드리겠습니다.ꡓ 그녀는 갈대의 속으로 만들어진 청이었고 나는 음습한 곳에서만 자라나는 굵디굵은 쌍골죽이었다. 나는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도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 내 대금의 청은 늘어질 대로 늘어져 모든 음에서 떨린다. 모든 음에서 떨린다면 그건 더이상 청으로서 가치가 없다. 하지만 그건 다 내 탓이다. 내 무심함과 게으름 때문. 미안하다.



  도마뱀



  98년 11월 4일, ꡐ보고서/보고서ꡑ 팀과의 채팅 인터뷰 중에서



  안:작업실. 풍경을. 그려주십시오.

  김영하:책상 놓고 책꽂이 놓으면 한 사람 드러누울 자리도 안 되구요.

  금:멋진. 작업실…….

  김영하:위에는 담배 연기를 빼기 위한 팬이 걸려 있구요.

  금:꽉 찬. 작업실…….

  유:밀도 있는 작업실…….

  김영하:옆에는 프린터,

  김영하:후안 미로 포스터가 액자에 든 채로 놓여 있구요.

  김영하:발리에서 산, 도마뱀왕이 양각된 방패가 걸려 있습니다.

  안:…….

  김영하:그리고 아프리카 산 여자 목각 가면이 반대편에 있습니다.

  김영하:좀 혼란스럽죠.

  유:ꡐ좁은 방ꡑ 그 방에서 「바람이 분다」가 나왔나요?

  김영하:예.

  금:안전한. 방패. 작업실…….

  김영하:방패인데 저를 보호하는 방향이 아니라,

  유:빛이 적은 작은 방.

  김영하:저를 적대하는 방향으로 걸려 있습니다.

  금:태풍 있는. 작업실…….

  유:ㅎㅎㅎ

  김영하:서북향 방이어서 오후 늦어야 햇빛이 들어옵니다.

  금:서쪽에서. 해가 뜨는. 작업실…….



  레너드 코헨



  당신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한 독자가 내게 말했다.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s〉를 들으면서는 자살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물었다. 왜죠? 그 다음 곡이 〈Take This Waltz〉이기 때문이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 그래서요? 왈츠를 들으면서는 팔목을 그을 수가 없습니다. 왈츠는 삼박자니까요.



  맥주



  내 사주를 보면 나무가 나온다고 한다. 나무, 그런데 그 나무는 커다란 바위에 짓눌려 있다는 것이었다. 점쟁이는 덧붙이기를, 바위가 짓누르고 있으니 세상에 대해 원한이 많겠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나무는 자라게 마련이고 바위는 부서지게 마련이니, 서른이 넘으면 부드러워지겠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내 나이 스물셋이었다. 점집을 나와 길을 걷는데 어깨가 무거웠다. 하늘을 보았다. 달리의 그림처럼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바위. 그 무게를 느꼈다고 하면 좀 심한가? 어쨌든 그날부터 난 내가 나무라는 걸 한시도 의심하지 않았다. 달  한때 나는 프란체스코 회의 수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며칠씩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들과 똑같은 생활을 했다. 수도원의 모든 것이 좋았다. 둥글고 커다란 식탁. 짙은 밤색의 수사복. 식사는 일제히 시작해 마지막 사람이 끝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단촐하지만 장엄한 미사. 단선율로 깔리는 그레고리안 성가. 저녁식사 후부터 아침까지 이어지는 대침묵. 적막. 고요.

  왜 그렇게 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이유는, 글쎄, 공포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가장이, 아버지가 된다는 일의 두려움. 수사라는 직업의 매력은 가장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저 기도하고 일하고 공부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만했다. 그때 내 나이 열여섯이었으니까.

  어쨌든 나는 수사가 되지 않았다. 아이는 없지만 결혼도 했다. 그런데,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의 내 생활도 수사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는 않다고. 나는 소설이라는 정체불명의 신을 모시는 문단이라는 수도원에 살고 있다고. 수사들은 식사시간 이외에는 말을 나누지 않고 각자 자기의 방으로 흩어져 대침묵에 들어간다. 그들 개개인의 신앙의 깊이는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자기의 골방에서 신을 의심하며 자신을 자책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묵주기도를 바친다. 여전히 신은 응답이 없다.



  번호



  155-19-332852-5 681111-1244787 384-1809 012-26-04750-8 197-18-01319-2 226-18-0002-103 155-70-022283-2 017-222-1809 015-394-3688 경기1수5508



  내가 늘 외우고 다니는 번호. 내 몸의 제5원소. 나는 번호에 강한 편이다. 이름보다는.



  삐삐



  ꡒ삐삐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세상에 대해 변명할 여지는 점점 궁색해지고 은거할 비트는 사라져간다. 세상과 격리될 자유를 잃음으로써 우리는 좀더 외로워진다. 스스로의 얼굴을 대면할 기회는 사라져가고 우리는 점점 더 외부에 기대게 되고 그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방식이 된다.ꡓ

  단편 「호출」을 어딘가에 재수록했을 때, 얼떨결에 쓴 창작노트의 일부다. 그 소설을 쓴 지 삼 년밖에 안 지났는데, 그때의 삐삐는 미래에서 날아온 터미네이터 같았는데, 어느새 퇴물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의 속도가 소설의 속도를 앞질러 간다.



  산울림



  소년기의 나를 지배하던 뮤지션. 독백, 청춘, 더더더, 회상, 웃는 모습으로 그냥 간직하고 싶어. 그 노래들을 무수히 들으며 또 권하며 살았다. 고등학교 때의 나를 혹시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특히 그가 여자라면, 아마 자동적으로 산울림을 떠올릴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여자친구도 그중 하나일 텐데, 난 그녀를 생각하면 김수영이 떠오른다. 그녀는 민음사에서 나온 김수영의 시집, 『거대한 뿌리』를 내게 선물했다. 그러나 나는 한자가 어려워 읽지 못했다. 한자를 다 해독하고 나서도 이해할 수 없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절망했다. 그녀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고등학생치고는 문학적 소양이 깊었다. 황석영 원작의 연극, 〈한씨연대기〉의 표를 끊어와 연우무대로 나를 끌고 간 것도 그녀였다. 늘 밝고 명랑했던 그녀는 그러면서도 차분하고 일정하게 삶의 톤을 유지할 줄 아는 재능이 있었다. 그런 그녀와의 만남은 고3 내내 이어졌다. 모범생들이 으레 그렇듯, 모의고사 시험지를 교환하고 대학생활에 대한 환상들을 나누어 먹으면서, 만남의 빈도는 일 주일에 한 번. 그것도 일요일 아침 일곱시였다.

  대학 입학시험을 보고 나서, 미안하다, 나는 돌연 그녀와의 모든 연락을 끊었다. 한 달 후, 그녀가 내게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촛농으로 밀봉한 편지 안에는 달랑 김수영의 시 한 수만 적혀 있었다.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내 평생 최초로 시적 에피파니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도 어렵던 김수영의 시가 단박에 이해되었고 동시에 소름이 저르르 끼쳤다. 나는 시는 아름다운 거라고 배웠다. 그런데 몇 줄의 시가 저렇게 한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다니! 그러니까 그날 나는 비로소 시의 현대성에 눈을 뜬 셈이었다. 나는 김수영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가끔 그 시집을 들춰본다. 그러면서 그때 그 친구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엉뚱하게 소설가가 되어버린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가끔 궁금해한다.



  성서



   어린 시절 나의 독서경향은 전 세계인의 경향과 일치했다. 가장 많이 본 책, 성서, 그 다음으로 많이 본 책, 삼국지였다. 성서 독서는 강제된 것이었고 삼국지는 성서가 싫어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성당에 가라고 내몰린 날이면 아파트 놀이터에 앉아 삼국지를 읽었다.

  성서를 자발적으로 읽은 건 대학교 3학년 때, ROTC 전방입소훈련 때문이었다. 입소시에 허용된 책은 성서와 불경밖에 없었기에 나는 성서라도 집어들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신병교육대에서 진행됐던 그 혹독한 훈련이 끝나고 취침시간이 되면 담요를 뒤집어쓰고 플래시에 빨간 셀로판지를 끼워 광도를 줄이고 성서를 읽었다. 그러니 그 시절은 나의 중세였다.



   세제



  나는 결벽증은 아니지만 닦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키보드 글자쇠와 글자쇠 사이의 빈틈은 칫솔로, 전등 스위치에 묻은 손때는 지프(찌든 때 전문 세제다)로, TV처럼 정전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것에는 정전기 방지제로, 옷을 헹굴 때는 피존으로, 드레스 셔츠 깃에 묻은 때는 부분 세척제로, 세면대는 락스로, 구두는 구두약으로(물론 굽과 가죽 사이는 칫솔로, 구두코는 1차 양말, 2차는 융으로, 구두 옆구리는 구둣솔로), 스티커 자국은 라이터 기름으로, 거울과 유리창은 신문지로, 잘 닦이지 않는 나무무늬 장판의 틈새에 낀 때는 바닥용 지프로 닦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불필요한 기억도 잘 지운다. 컴퓨터에 널려 있는 쓸데없는 파일들을 찾아 삭제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잘 지워지지 않는 것도 있다. 일테면 벽지에 침착된 담배 연기, 허리의 튼살, 야멸차게 떠나간 이들의 기억 따위. 내 소설쓰기가 그런 것들을 말끔히 씻어내는 세제였으면, 때와 한몸이 되어, 스스로 더러워져서 더 더러운 것들과 엉겨, 후루룩, 씻겨 내려가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꿈을, 가끔 꾼다.

  이면 중부고속도로를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차는 또한 처음으로 완벽하게 주어진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그런 차가 너무 좋아서 자동차동호회에 가입했고 용돈을 모두 털어 켄우드 카스테레오를 장만했다. 어느 날, 그 차가 멈춰버렸다. 운행거리 18만 킬로미터였다. 고치러 온 카센터 주인은 고치는 값이 차값보다 비쌀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 차를 그냥 그 주인에게 넘겨버렸다.

  지금도 가끔 그 차를 처음 운전하던 때의 순정한 설레임이 그립다. 어떤 동창, 어떤 친척 못지않게 그 청색 스텔라 GX가 그립다. 그래서 나는 교통사고로 아끼던 차가 폐차되는 장면을 보며 엉엉 울던 중년의 남자를 이해할 수 있다.



   액세서리



   98년 10월 28일, ꡐ보고서/보고서ꡑ 팀과의 인터뷰 중에서



  안:동그라미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

  김영하:링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반지는 전통적으로 구속을 뜻하지만 한때 내게 있어 링은 해방이라든지 퇴폐의 의미가 강했다. 귀를 뚫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취직할 생각도 없었고 그저 인생을 퇴폐해보자는 느낌이었다. ꡐ오늘예감ꡑ이라는 그룹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펑키한 잡지를 만들던 친구들이었다. 환각의 자유라든지, 게으를 권리를 특집으로 잡아서 했는데 그 특집 중 하나가 ꡐ나에게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ꡑ였다. 나중에 내 소설 제목이 되었는데 그 특집은 이른바 환각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기획이었다. 이를테면 환각을 보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라는 내용이다. 대원사에서 나온 『환각제와 마약』이라는 책에서는 왜 똑같은 마약 성분이 인디언들에게는 집단의 통합을 강화하고 다른 세상을 보게 해주는데 현대의 미국인에게는 총질을 충동하는 물질이 되는가, 다시 말하면 약물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라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그러니까 ꡐ오늘예감ꡑ의 주장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집에서 광선총을 쏘는 것은 나라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차량을 탈취하거나 하는 경우엔 형법으로 다스리면 될 일을 단순히 환각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경고를 받았다. 투표하지 않을 권리, 정치에 무관심할 권리, 그런 것을 내세웠다. 그 친구들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다. 그때 내게 있어 귀걸이나 액세서리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는 표징이었다. 취직을 하면서 귀걸이를 뺐는데 그때 ꡐ귀걸이는 뺐지만 보이지 않는 더 큰 코뚜레가 생기고 그것이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수만 개의 코뚜레구나, 링을 뺐기 때문에 더 큰 링에 걸린다ꡑ라는 역설에 관하여 생각했다. 반면 링에 관한 또다른 생각은 해방과 관련된 것이다. 동기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학생운동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하던 날 귀를 뚫었다. 같이 가서 보았는데 그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화장을 하거나 귀를 뚫는다는 것은 그 대열에서 빠지겠다라는 의사 표현이었다. 귀를 뚫을 때 귀에서 피 한 방울,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배경은 그냥 액세서리 가게였지만 그 장면만큼은 프랑스 영화처럼 인상이 깊었다. 그 친구는 결국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액세서리를 좋아한다. 집에 나만의 액세서리함이 있다.



  안:주로 어떤 액세서리가 있는가.

  김영하:은제 액세서리가 많다. 가장 좋아하는 액세서리는 짐승의 뿔로 만든 큰 목걸이다. 흉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대 앞 인도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에서 샀다. 일종의 페티시즘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에곤 쉴레



  이제는 그가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다.



  지포 라이터



  칠 년째 가지고 다니는 라이터가 있다. 앞면에 이렇게 써 있다.



  ꡒLimited Edition No.0339ꡓ 이건 뚜껑 부분이고 몸통 부분엔 ꡒPteranodon The Cretaceous Period(익룡, 백악기)ꡓ라는 글자가 금박으로 양각되어 있다. 그리고 뚜껑과 몸통에 걸쳐 날개를 펼친 익룡 한 마리가 아래를 굽어보며 날고 있다. 그 아래에는 ꡒLength(길이) 8mꡓ라고 친절하게 부연해놓았다.

  불을 붙이려 뚜껑을 열 때마다 목이 잘리는 이 괴수의 몸을 장식한 금박은 이제 귀퉁이가 하나 둘 떨어져나가 그야말로 화석처럼 보인다. 이 라이터를 선물한 친구가 그랬다. 널 닮아서 샀어. 칠 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그 익룡이 날 닮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백악기라는 낯선 시대에도 관심이 없다. 단지, 이 라이터는 잃어버리기엔 너무 오래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없어진다면, 무척 마음이 아플 것만 같다. 그러지 않으려고 나는 불만 붙이고 나면 그걸 신속하게 오른쪽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버릇을 들였다. 야, 안 가져간다 안 가져가. 테이블에다 좀 올려놔라. 애타게 불을 찾는 술친구들의 성화에도 굴하지 않고 나는 꿋꿋이 라이터를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가 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꺼내어 라이터를 건네준다. 주머니 속의 익룡, No.0339. 아직은 멀쩡하다.



   키보드



    내가 생각해낸 말인지 아니면 어디서 들은 말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내게 너무 적절한 말이어서 늘 내 말처럼 하고 다니는 말이 있다. 내 뇌는 (머리를 두드리며) 여기가 아니라 손가락 끝에 있어. 키보드에 올려놓아야 비로소 돌아가기 시작하거든.

  나는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도 타자기로 일기와 편지를 썼다. 타고난 악필을 감춰보려고 시작한 일이 어느새 뇌의 위치까지 바꿔버렸다.



    트래블 가이드



    가장 선뜻, 대담하게 사는 책. 나를 가장 오랫동안 행복한 무념무상의 경지로 이끌어준다.



    포스트잇



    아무 흔적 없이 떨어졌다 별 저항 없이 다시 붙는 포스트잇 같은 관계들. 여태 이루지 못한, 내 은밀한 유토피아이즘.



  한영애



  그제, 한영애의 새 앨범을 샀다. 그녀는 여전히, 멋지다. 이번에 그녀는 〈봄날은 간다〉를 재해석했다. 무슨 노래든 그녀가 부르면 원작의 아우라는 사라지고 한영애의 노래가 돼버린다. 88년 내 생일에 그녀의 테이프를 선물했던 친구는 이 년 후,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유학을 가버렸다. 지금은 돌아와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었다. 그가 아직도 한영애를 듣는지 궁금하다. 아마, 내 짐작이 맞다면, 그는 이제 더이상 한영애를 듣지 않을 것만 같다.



   OLD SPICE



    아까 소년기에 나를 알았던 이들이 산울림으로 나를 떠올릴 거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청년기의 나는 아마 올드 스파이스 냄새로 기억될 것이다. 그걸 처음 발랐을 때는 뺨에서 피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오래 사용하면 그것처럼 부드러운 애프터셰이브가 없다. 그

건, 아직, 내가 이르지 못한 경지다.



출처 - 좋은 글의 美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