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로만 Narrative

[단편소설] 나는 아름답다 - 김영하

버블건 2007. 11. 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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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름답다

김영하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기형도의 "비가 2" 중에서



  그해 7월. 아직 여름은 오지 않았다. 마치 종말이라도 닥쳐올 듯이, 나는 여름을 기다렸다.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사막이 더욱더 황량해지기를 갈망했다.

  그 목마름이 미처 우물을 파기도 전에 어느 날, 하늘에서는 천사들의 나팔소리처럼 시원한 뇌성 한 줄기가 울려 퍼지며 그 여름이 당도했음을 알렸다. 그 나팔소리와 함께 몰려온 비구름은 내리 나흘낮 나흘밤 동안 빗줄기를 뿌려댔다. 그리고 나자 빗발은 서서히 실팍해지면서 아스팔트 위로는 여린 김이 모락거리는 것이었다. 세상은 이그러진 채로 승천하고 있었다.

  서서히 몸을 일으켜 창을 열고 밖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하여, 토큰을 사기 위하여, 신문을 사기 위하여,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하여,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 위하여, 사람들은 여름을 알리는 나팔소리도 듣지 못한 채 뛰어다녔다. 드디어 여름이 왔는데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여름이 왔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름을 맞이하듯 죽음을 대면할 것이다. 생명이 우리에게 깃들던 때처럼 마지막도 그런 식으로 스며들 것이다.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갑작스레 당도한 여름 때문이었다. 그해 7월. 나는 죽음보다 여름이 더 두려웠다. 최후의 순간이올 때까지 여름은 반복될 것이다. 매주 잘라야 하는 손톱처럼, 매일 세번씩 찾아오는 공복감처럼, 계절은 그렇게 출몰할 것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나의 방주를 만들고 있었다. 그 방주는 나를 태우고 여름을 건너 종말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직 하나의 희망만을 남겨둔 채 그 외의 모든 것을 버렸다.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나의 방주는 거의 완성된 셈이었으나 나는 떠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단 한 가지가 부족했다. 그것을 채워야했다.

  몇 벌 남지 않은 옷 중에서 한 벌을 꺼내 입고는 얼마간의 돈과 한 보루의 담배와 카메라 가방, 그리고 로댕의 화집을 챙겼다. 그러고 나자 내 마음은 마치 휴가라도 떠나는 듯이 홀가분해졌다. 이제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었다.

  사막을 떠났으나 가는 곳마다 폐허였다. 그 폐허 속 어딘가에 내 방주에 실을 마지막 한 가지가 숨어 있을 것이었다. 그것만 찾는다면, 그 일만 이룰 수 있다면, 나는 홍수를 기원하며 배를 띄울 수 있을 터인데.

  한 달이 지나가자 희망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나는 서해 바다에 면한 이름 없는 포구에서, 태양이 하루종일 홑뿌려둔 자신의 빛을 삼켜가며 자진하고야 마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일몰의 무명 포구를 등뒤로 하고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내가 향한 곳은 A시였다. 한때 번창했으나, 지금은 밀려들어오는 토사로 해수면이 낮아져 큰 배는 얼씬도 하지 않는, 쇠락해 가는 항구도시였다. 기껏해야 연안의 섬들을 오가는 연락선과 멸치잡이 배들이나 얼씬거릴 것이었다.

  A시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펼쳐든 로댕의 화집으로부터 예기치 않았던 물건이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아마 노아의 방주에서도 그랬으리라. 간택 받은 짐승만 탔으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저주받았으나 살아남은 짐승처럼 로댕의 화집에 스며든 그 불청객을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바닥에서 주어 올린 그 봉투 속에는 몇 장의 흑백 사진이 담겨 있었다.

  아내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아내가 천정에 매달려 있었다. 그녀의 허리와 대들보를 연결하는 밧줄 끝에 아내는 대롱대롱 묶여 있었고 눈은 똑바로 렌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이.

  두 장째 사진. 아내는 하얀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있었다. 목에서부터 발목까지 밧줄로 칭칭 감긴 채로, 역시 렌즈를 주시하고 있었다. 가슴 언저리를 동여맨 밧줄 때문에 그녀의 젖은 괴상한 형태로 튀어나와 있었다.

  세 장째 사진에서 아내는 발목이 묶인 채로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녀의 긴 머리가 흘러내려 바닥에 닿아 있었다. 천정에서 바닥까지 일직선으로 내리꽂히는, 그녀는 마치 하나의 기둥 같았다. 이번에는 그녀의 젖이 얼굴 쪽으로 처져 있어 이 또한 기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아내와 이혼하기 두 달 전에 찍은 그 세 장의 사진 아래 쪽에는 촬영한 날짜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이 날짜표시 기능을 사용하지 않지만 나는 즐겨 사용한다. 흑백의 누드와 함께 찍혀 나오는 액정의 시각. 그 서늘한 전율을 난 좋아한다.



  12. 21 13:02:37



  아내가 거꾸로 매달린 채 렌즈를 노려보고 있는 사진에 적혀 있는 촬영 시각이다.

  셔터를 누르는 시각, 내 오감이 곤두서던 그 시각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60분의 1초 동안, 아내의 벗은 몸을 비추던 빛은 렌즈를 통과해 벌려진 조리개 사이로 달려와 필름에 부딪혀 감광된 것이다.

  아마도 아내는 이 사진들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하면 언제라도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던 아내였지만, 애써 자신이 나온 사진을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니, 내가 찍은 대부분의 사진에 관심이 없었다. 그건 일종의 시위이자 그녀가 나와 지내는 방식이었다.

  돌아보면 그녀의 모든 행위가 그랬다. 우리는 가끔 잠자리를 함께 하곤 하였지만 단 한 번도 그녀의 제안에 의해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내가 원하면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옷을 벗었고, 별다른 반응 없이 섹스를 치렀고, 치르고 나면 나보다 먼저 잠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서서히 죽여가고 있었다. 나는 사진 속에서 그녀를 살해하고 그녀는 그녀의 방식으로 나를 살해했다.

   세 장의 사진을 다시 봉투에 집어넣는 순간 하나의 시선이 내 손끝을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어떤 경우 그 세 장의 사진은 다른 이들에게 다소 기괴하게 보일 수 있다. 나는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사진 봉투를 천천히 카메라 가방 옆구리에 쑤셔 넣은 수에 그 시선의 근원을 힐끔거렸다. 그제서야 시선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내 옆자리에 앉은 이는 20 대 후반의 여자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주황색 티셔츠, 그리고 블랙 진을 입고 있었다. 그밖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A시까지는 4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핸드백 하나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냄새. 그녀에게선 냄새가 났다. 오슬거리며 내 팔뚝 언저리에는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나는 그 냄새를 알고 있다. 그것은 아내의 냄새였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가장 먼저 손을 씻는다. 손을 씻은 연후에 라야 샤워를 한다. 수술이 있었던 날이면 더 오래 손을 씻는다. 나는 그런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는 종종 묻는다. 무슨 냄새 안 나요? 나는 고개를 가로 젖는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거짓말이다. 그녀에게서는 분명하게 그 냄새가 난다. 그런 날이면 나는 짐작한다. 아내가 오늘도 채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삭제해버렸음을.

  그런 날이면 아내를 매어달고 싶어진다. 그런 그녀를 인화해버리고픈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매번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냄새. 내 사진에는 그 냄새가 담겨지지 않는다.

  돈을 건네주는 아내의 손에도 그 냄새가 배어 있어 그 돈을 건네 받는 내 팔뚝에는 어김없이 소름이 돋는다. 그게 싫어 1 년 정도 광고 사진만을 찍어대던 시절이 있었다. 사이판의 해변에서, 제주의 오름에서, 광화문의 스튜디오에서 웃음이 흐벅진 여자들과 엉덩이가 아름다운 남자들을 찍어댔다. 그런데 그 시절, 왜 나는 한번도 아내를 찍어보지 못했던 것일까. 그건 아마도 아내에게서 더 이상 그 냄새가, 더 이상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도 아내는 여전히 손을 씻었고 아침이면 돈을 건네주었다. 그 시절의 내가 둘이 쓰기에도 풍족한 돈을 벌고 있음을 능히 알고 있었을 텐데도 아내는 아침이면 여전히 지갑을 펼치며 내 표정을 살핀다.

  내 표정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의무적으로 내 표정을 살필 뿐이고, 내 표정이 어떠하든 그녀는 자신이 줘야 한다고 믿는 만큼의 돈을 식탁 위에 얹어놓고 집을 나선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내의 냄새가 왜 사라졌는지 깨달았다. 저녁에 들어온 아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오늘은 글쎄, 열네 살짜리가 왔더라구요. 그러면서 그녀는 여느 날보다 더 열심히 손을 씻었다. 그리고는 식탁 위에 놓여진 고사리 나물을 손가락으로 집어먹으며 말했다. 음, 고사리가 맛있네. 나는 그 냄새의 비밀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웃음이 흐벅진 여자들과 엉덩이가 아름다운 남자들을 찍어 대는 나도 아내처럼 열심히 손을 씻어야만 했음을. 후각은 가장 민감하고 그래서 가장 빨리 마비된다. 아내와 나는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냄새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멋진 사진이네요.

  옆자리의 주황색 티셔츠가 말했다. 그러나 버스의 소음 때문에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네?

  멋진 사진이라구요. 사진 작가신가 봐요?

  아, 네.

  갑자기 좀 머쓱해졌다. 그녀가 나를 사진 작가가 아닌 다른 누군가쯤으로 알아주길 내심 바랬던 모양이었다. 비밀을 들켜버린 소년처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익명성의 자유. 내가 내가 아닐 수 있는 자유. 일상의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으로 얼마간이나마 살아보고 싶은 자유. 그것을 위해 떠나는 여행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럴 때면 나는 장 그르니에의 '섬'을 떠올리곤 했다.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씩이나 해보았었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나는 '비밀'을 고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정체를 들켜버렸다고 생각하자 불현듯 내가 세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내 '비밀을 고이 간직'하지 못할 것 같다는.

  직접 찍으신 건가요?

  무표정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묻는 그녀의 말투는 뭐랄까. 흐르는 강물에 조약돌을 던지는 행위처럼 무심해 보였다. 그녀가 던지는 말은 차창을 그대로 투과해 길 위로 버려지는 것 같았다. 버스는 계속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제가 찍었죠.

  나 역시 손에 든 봉투 쪽으로 시선을 주며 애써 무심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게서 튀어나가는 어휘들은 그녀의 말과는 달리 쉽게 가벼워지지 않았다.

나는 조금 불편해졌다. 몸을 약간 뒤틀며 자세를 바꾸어보았으나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다음에 물어올 말이 무엇일까. 나는 대답을 준비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이름, 나이, 고향. 나는 여러 가지 예상문제를 만들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뒤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예상질문 만들기를 포기하고 로댕의 화집을 펼쳐들었다. 5 년 전 파리의 로댕 미술관에 들렀을 때 사두었던 것이었다. 그 시절 나는 장마비에 젖어드는 양서류처럼 로댕에 빠져들었다. 로댕은 나를 발정시켰던 유일한 조각가였다. 나는 그의 대리석 조각 앞에서 반나절을 서성거리며 그를 탐했다.

  아니 그의 창조물들을 탐했다. 내 몸에 걸친 모든 옷을 벗어 던지고 그의 대리석과 성교하고 싶었다.

  로댕도 그랬을까? 그도 그랬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살아 숨쉬는 인간보다 자신의 조각품을 사랑했던, 그래서 결국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간청하여 그 조각과 결혼하고야 말았던 그리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처럼, 그도 어쩌면 살아있는 인간보다도 자신의 피조물을 사랑했을 것이다.

  내가 찾아냈던 증거; 코펜하겐의 한 미술관에서 나는, 바로 그 피그말리온 신화를 형상화한 로댕의 작품을 보았다. 아, 오만한 로댕. 나는 그를 질투했다.

  다시 주황색 티셔츠의 시선이 로댕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펼쳐진 페이지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자신의 어깨 위에 얹고 있는 '나는 아름답다'라는 작품이었다. 여자가 최대한으로 몸을 웅크린 채, 한 남자의 어깨 위에 개구리처럼 얹혀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이 뭔지 아세요? 나는 주황색 티셔츠에게 물었다.

  아뇨. 뭔데요? 그녀가 되물었다.

  나는 아름답다, 랍니다.

  아.

  그녀가 짧게 탄식했다.

  로댕이 아니었다면 감히 이런 제목을 붙이지 못했을 겁니다.

  나는 화집을 그녀 쪽으로 기울이며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그는.

  그녀 역시 화집 쪽으로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죽음의 비밀을 알고 있었을 거에요.

  그러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주황색 티셔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 눈길에 무표정하게 눈을 찡긋거렸을 뿐이었다.

  죽음의 비밀이라뇨?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예술하는 자들의 죽음 말이에요. 선생님은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지금 나르시스 얘기를 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녀는 내 물음에 대꾸하지 않고 차창 밖에서 쉴새없이 소멸해가는 풍경에 눈길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나르시스라.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종국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바라보다 익사하고야만, 그리하여 종국엔 수선화로 피어난.

  그렇다. 나르시스는 종종 예술가로 비유되곤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반영물. 그것은 곧 자아의 분신. 예술작품에 다름 아닌 것. 자신의 이상과 반영물을 일치시키고자 한없이 다가가면 가면 거기 죽음이 있다는, 섬뜩한 진실.

  나는 천천히 페이지를 넘겨갔다. '나는 아름답다'의 다음 페이지에는 '다나이드'가 수록되어 있었다. 결혼 첫날밤.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고 지옥으로 끌려간 다나이드는 그 벌로 영원히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야만 했다. 그리스 신화에선 별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나는 다나이드가 왜 남편을 살해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는 마음대로 유추할 자유를 획득하였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는 것은, 어쩌면 욕망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하수구. 그 출구에 죽음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일 터인데, 저 죄 지은 여인은 왜 저토록 아름다운 것인가. 로댕의 다나이드는 한 여자가 무릎을 꿇은 채로 비스듬히 엎어져 있는 형상이다. 그녀의 긴 머리칼이 어깨 위로 흘러내리고 깨어진 독은 오른팔 옆에서 뒹굴고 있다. 그 자세는 그녀의 아름다운 엉덩이를 더욱 강렬하게 드러낸다.

  아마도 다나이드에게는 사랑하던 다른 남자가 있었을지 모른다. 밤새 뒹굴며 열락의 끝까지 오가던, 함께 쾌락의 환성을 질러대던, 다나이드의 우윳빛 엉덩이를 사랑해주던 그런 남자가 있었을 것이다. 죽음의 냄새를 맛보게 했던 독약 같던 연애가 그녀로 하여금 첫날밤에 남편을 살해하도록 충동하지는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아내를 처음 만났던 것도 다나이드 앞에서였다. 발정하기 직전의 수캐처럼 흰 대리석 앞을 맴돌던 내 앞으로 아내가 다가왔었다. 저,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단발 머리를 한 자그마한 키의 한국 여자가 자동 카메라를 들이대며 그렇게 말했다. 머뭇거리는 내게 그녀가 친절하게 덧붙였다. 그냥 누르기만 하면 돼요.

  물론 '누르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단지 누르기만 하면 다나이드의 가없는 고통과 아내의 사소한 추억거리는 사각의 인화지에 함께 동거하게 될 것이었다. 독기 어린 악녀의 누드와 헤설피 웃는 성녀의 입상은 자동노출, 자동초점으로 한 몸이 될 것이었다.

  그날, 다나이드를 끝내 범하지 못한 나는, 다나이드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여자와 뒹굴었다. 기념사진처럼 무미건조한 섹스였다. 의사고시에 합격하고 얻은 짧은 휴가는 아내 인생의 유일한 휴지기였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방종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로댕 미술관을 나와서 생 미셸 거리의 이름 모를 바에서 몇 잔의 맥주를 마시고는 그녀의 호텔 방에서 첫 섹스를 가졌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잊었다.

  잠깐 봐도 될까요?

  주황색 티셔츠가 정중하게 청했다. 나는 선선히 화집을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정말 아름다운 조각이네요.

  다나이드를 쓰다듬는 그녀의 실팍한 손가락. 그 하얀 손가락이 물결치듯 풀어헤친 다나이드의 머리카락에서부터 매끈한 등허리를 지나 높게 치솟은 백색 질감의 엉덩이까지 천천히 더듬는 동안 쩌릿거리는 한 줄기의 전류가 내 척추를 관통했다.

  그것은 다나이드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느끼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였다. 그녀처럼 나 역시 다나이드의 등줄기와 엉덩이 사이의 굴곡을 어루만져 보았거니, 그때, 내 때묻은 손끝에서 성기까지 팽팽하게 긴장시키던 대리석의 질감이란.

  머리꼭대기까지 차 오르는 성욕. 이 여자라면 다나이드 앞에서 기념사진 따위는 찍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그녀는 다나이드에게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지옥에서 벌을 받는 여자에요.

  내 말에 주황색 티셔츠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게 물었다.

  무슨 죄를 지었나요?

  첫날밤에 남편을 죽였답니다.

  툭, 로댕의 화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도 놀랐던지 황급히 손을 뻗쳐 화집을 주어 올리려 하였다. 우리의 두 손끝이 부딪혔다.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나는 화집에 묻었을 먼지를 가볍게 툭툭 털어내고는 다시 그녀에게 건네주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머쓱해진 나는 다시 화집을 내 무릎에 얹어놓았다. 그러는 동안 팽팽하게 차 올랐던 성욕도 어느 샌가 사그라들었다. 그 즈음 다시 그녀에게선 예의 그 냄새가 피어올랐다.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버스는 천천히 속도를 줄여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출발한 지 두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휴게소에 들를 심산인 것 같았다. 잠시 후 버스가 휴게소에 도착하자 그녀는 몸을 일으켰고 나는 몸을 웅크려 그녀가 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녀의 엉덩이가 내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다. 잠시 사그라들었던 욕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맥주를 사들고 돌아왔다.

  드세요.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맥주를 건네던 그녀. 우리는 별 말 없이 홀짝거리며 맥주를 마셨다.

  A시에는 왜 가세요?

  그녀의 말이 다시 차창을 투과해 도로변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어휘들이 되튕겨 날아왔고 나는 머뭇거렸다. 딱히 대답할 말을 준비해 두지 못했던 탓이다. 방주를 완성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씀하기 싫으심 안 하셔도 돼요. 그녀가 피식 웃으며 다시 맥주를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저 역시 그래요. 선생님처럼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집어탄 거에요. 왠지 A시에 한번 가보고 싶었거든요. 왜 그럴 때 있잖아요? 지금 안가면 영영 가보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때 말이에요.

  왜 내가 아무 목적도 없이 A시로 간다고 생각하죠? 내가 물었다.

  그럼 목적이 있단 말이에요? 그녀는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투로 반문했다. 변기에 물이 빠지듯, 나는 허허롭게 웃었다.

  한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부들에게 인기가 좋은 프로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 있는 코너는, 방청객인 주부들로 하여금 영문 모르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모종의 부탁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부탁의 종류는 매주 바뀌었는데 남편이 그 부탁을 들어주면 상품이 수여되는 게임이었다. 어떤 주에 출제된 문제는 남편에게 여행을 허락 받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여자 혼자 2박 3일 동안의 여행을 다녀와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던져 허락을 받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유 없음'이었다. 남편들에게는 '이유 없음'이 절대로 여행의 이유가 되지 않았다.

  남편들의 잎에서 튀어나온 첫마디는 공히 '미쳤군'이었다. 처음엔 선물에 눈이 멀어 애걸복걸하던 여자들의 목소리는 통화가 길어지면서 점차 분노로 격앙되어갔다.

  목적 없는 여행이란 없어요. 나는 주황색 티셔츠에게 말했다. 목적을 알 수 없거나, 알려고 하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겠죠.

  맞아요. 그녀는 의외로 순순히 수긍했다.

  참.

  그녀가 맥주 캔에서 입을 떼며 중요한 일이라도 생각난 듯이 말했다.

  왜요?

  아까 그 사진 좀 봐도 될까요?

  아내의 누드를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그녀의 돌연한 요구에 놀라 잠시 주저했다.

그러나 나는 다나이드를 쓰다듬던 그녀의 손길을 기억했다. 작품 속에 숨겨진 내 삶의 비의를, 그녀가 과연 감지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순순히 봉투에서 세 장의 사진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사진을 응시하였다. 사진 속의 아내는 밧줄에 묶인 채로 나와 주황색 티셔츠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았지만 아내와 그녀는 눈싸움을 계속했다. 내가 조금은 불안스레 그녀의 표정을 살피는 동안 아내의 벗은 몸 위로 몇 방울의 물기가 떨어져내렸다. 나는 그녀의 얼굴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괜찮아요?

  그녀는 손등으로 눈가를 매만지며 코를 훌쩍였다.

  네. 전 괜찮아요.

  나는 그녀에게서 사진을 넘겨받은 후, 물기를 살짝 닦아내고는 봉투에 담았다.

  이건 실제 상황이 아니에요.

  그녀의 돌연한 눈물에 다소 당황한 나는 그녀에게 그 사진에 대해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

  연출 사진이요. 이 사람은 제 옛날 아내구요. 이건 그저.

  행여 있을 지 모르는 오해에 쐐기를 박기 위해 다소 장황하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을 사실까지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러자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내 말을 막았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아요. 괜찮아요. 됐어요.

  잠시 후 그녀의 훌쩍임이 멎었다. 그녀는 애써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사진 작가시라고 했죠?

  그런 셈이죠. 작가라기보다는 그냥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왜요? 멋진 작품이던데 미안해요. 전 단지. 그냥 그 사진이 좀 슬펐을 따름이에요. 가끔 이래요.

  그건 슬픔을 자아내기 위한 작품이라기보다는, 그저 배반, 맞아요. 배반을 위한 작품이에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학적 속성을 조롱하는 거죠. 여자를 발가벗겨 밧줄로 매다는 것은 단지 새디스틱한 행위에 지나지 않지요. 또 많은 포르노들이 그렇게 하구요. 그래서 전 포르노와는 달리 모델로 하여금 렌즈를 주시하게 한 겁니다. 관람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장치죠. 그건 말하자면.

  나는 불필요한 말을 주워섬기고 있었다. 금기시하는, 작품에 대해 주절대는, 그야말로 사족에 다름 아닌. 나는 입을 다물고 그녀 쪽을 힐끔거렸다.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는 게 분명해 보였다.

  이혼하셨나요?

  그녀가 창밖으로 시선을 준 채 무심하게 물었다. 민감한 질문을 하기에는 적절한 태도였다. 불필요한 혐의에서 면제될 수 있는 그런 시선처리.

  네.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유럽에서 돌아와 아내를 잊었을 무렵,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내였다. 어느 여성지에 실린 내 사진을 보고 전화를 했노라고 했다. 나는 파리에서의 건조한 섹스를 다시 떠올리면서 전화기 옆에 놓여진 담뱃갑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저 기억 하시죠?

  아내가 물었다.

  그럼요.

  여성지에도 나오시는 유명한 분인지는 몰랐는데요.

  유명하긴요. 지면이 남으니까 끼워 넣은 거죠.

  어쨌든 잘됐네요. 그러지 않아도 찾았더랬어요.

  그러셨군요.

  한 번 뵀으면 하는데요.

  아내의 말투는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날 밤 이후에 제 몸에 작은 변화가 있었답니다.

  나는 입에 문 담배를 떨어뜨렸다. 아내의 어투는 마치 '당신의 계좌에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현금 서비스 기계의 메시지 같았다.

  그렇게 아내를 다시 만났다. 그로부터 세 달이 지나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결혼 후 몇 달이 지나도 아내의 배는 불러오지 않았다. 여섯 달이 되던 어느 날, 참다 못한 내가 아내에게 물었을 때 아내는, 이미 납부한 세금고지서가 다시 날아온 것처럼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말 안했던가? 지웠어요.

  나는 납부한 세금은 다시 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언제 지웠어?

  식 올리자마자요.

  왜?

  몰라서 물어요? 차라리 당신 자신에게 물어보시는 게 빠를 걸요.

  그 뒤로도 우리는 5년을 함께 살았다. 그 동안 아내는 레지던트 생활을 끝내고 집 근처 주택가에 산부인가 의사로 개업했다. 그 후로 아내는 계속 손을 씻었고, 그래도 냄새는 여전했다. 오직, 그녀를 천정에 매다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한 순간도 그 냄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믿었다. 믿고 싶었다.

  왜 이혼하셨어요? 주황색 티셔츠가 다시 물었다.

  아내는 산부인과 의사였어요. 매일 사람을 죽이고 들어오죠. 언젠가 나도 죽일 것 같았거든요. 모르핀 주사를 내 팔뚝 깊숙이 꽂고 가위로 나를 잘게 잘라버릴 것 같았거든요.

  사랑하셨군요. 그녀가 맑게 웃었다. 나는 그 말의 울림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리고 나서 부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아무 말도 떠오르질 않았다. 사라? 아내와 나 사이에도 그렇게 이름 붙일 만한 감정이 있었을까? 혹여, 아내를 매어다는 순간에 느끼는 희열 같은 게 그런 종류의 감정일 수 있을까.

  제게도 비밀이 있어요.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기대며 속삭였다.

  뭔데요?

  궁금하시죠?

  글쎄요.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듣고 싶으시다면, 조건이 있어요.

  중대한 비밀인가 보군요.

  네.

  조건이 뭔데요?

  저와 함께 섬으로 가셔야 해요.

  섬이요?

  네. 섬.

  잠시 후 버스는 A시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주황색 티셔츠와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부두로 향했다. 그녀는 부두 매표소 창구에 죽 적혀 있는 섬들을 일별하고는 그 중에 하나를 골라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였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그녀와 카메라 가방을 맨 나는 작은 통통배에 올라 1시간이 걸린다는 한 섬으로 향했다.

  수많은 섬들이 하늘에서 던져놓은 것처럼 바다 위에 깔려 있었다. 파도가 약간 높이 이는 바람에 배는 출렁출렁거리면서 위태하게 항해하였다. 뱃머리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내 여행의 목적을 상기할 수 있었다. 방주를 채울 마지막 한 가지를 찾아야한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것을 저 섬에서 채울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것마저도.

  그녀는 섬으로 향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가끔 물살이 뱃전에 부딪혀 물보라를 튕겨올렸지만 그녀는 눈살 찌푸리지 않고 물기로 몸을 적셨다.

  도착한 섬은 매우 작았다. 그러나 여름에는 어설프나마 해수욕장이라도 마련되는지 해변에는 파라솔 몇 개가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긴 했다. 우리는 마당에는 그물이 널려 있고 마당 한 켠으로는 생선을 말리는 막대기들이 정연하게 설치되어 있는 민박집 하나를 잡았다. 햇볕에 그을린 검은 살갗의 아낙이 수선스레 방을 치워주었다.

  이어 맛깔스런 해물이 그득하게 담긴 매운탕에 소주를 곁들인 저녁이 들어왔다.

열어 젖힌 창 너머로 바다가 그득하게 밀려들었고 나는 잠시 내 방주를 망각했다. 그 사이로 그녀의 소주잔이 자주 비었다.

  선생님은 왜 사진을 찍으세요?

  밀려오는 바닷바람 사이로 그녀의 질문이 섞여들었다.

  나를 찍기 위해서지요.

  그렇게 말하고 나자 바닷바람 한 줄기가 세차게 방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나? 나라면. 나가 뭔데요?

  내 자아겠죠. 내 욕망, 내 본능, 내 삶, 내 행위, 그 모든 것이겠죠. 하지만 이제는 다 끝났어요.

  나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왜요?

  내 욕망의 끝이 있어요. 그런데 나는 감히 그 끝으로 가지 못하겠거든요. 그리고 어쩌면 거긴 사실 끝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욕망의 끝? 그게 뭘까요?

  그녀가 술상에 턱을 괴며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까 내가 찍은 사진들 봤죠?

  네.

  그건 가짜에요. 내가 정말로 찍고 싶은 것, 죽음이에요. 그런데 언제나 가짜 죽음만 찍는 거에요. 내 곁에는 그다지도 죽음이 흔히 빠졌는데 정작 내 사진에는 진짜가 없어요.

  그녀는 잠시 술잔을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반짝 들고는 말했다.

  선생님은 결국 나르시스가 되고 싶은 거네요. 자신에게 끝없이 다가가면 거기 죽음이 있잖아요. 선생님, 제 생각에는 말이죠. 진짜 죽음을 찍고 싶으시다면 진짜 삶을 사셔야 할 것 같은데요?

  진짜 삶. 내가 그녀의 말을 웅얼거리는 사이 그녀는 다시 소주잔을 비웠다. 멀리 창밖으로는 노을이 밀려들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당신의 비밀이란 건 뭐죠?

  나 역시 찬 소주를 목으로 넘기며 물었다. 소주가 식도 여기저기에 걸리적거리면서 내려갔다. 그녀는 천천히 잔을 술상 위에 내려놓으며 매운탕 속에 담겨 있는 미더덕을 꺼내 입 속에 집어넣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미더덕이 그녀의 입 속에서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뜨거운 물이 그녀의 입천장에 분사되었는지 그녀가 잠시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우두둑거리며 미더덕을 씹던 그녀가 찌꺼기를 뱉어내며 내게 물었다.

  다나이드라고 했던가요? 아까 그 화집 속에 있던 엎드린 여자 말이에요.

  맞아요.

  다나이드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녀의 눈빛이 몽롱하게 흐려져갔다. 나는 들려던 소주잔을 살며시 내려놓으며 그녀를 주시했다.

  주황색 티셔츠를 벗어 올린 그녀는 손을 뒤로 돌려 검은 색 브래지어의 걸개를 풀었으며 허물벗는 고지처럼 몸을 비틀며 천천히 바지를 벗어 내렸다. 마지막 남은 팬티도 스스럼없이 제거하고는 무릎을 꿇었다. 나는 갑자기 벌어진 일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한 뼘쯤 뒤로 물러앉았다. 무릎을 꿇은 그녀는 몸을 앞으로 숙여 머리를 방바닥에 대고 왼팔을 가슴 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녀의 긴 머리가 부스스 흘러내렸고 석양 빛은 그녀의 엉덩이 선을 뚜렷하게 드러내주었다. 그러나 등, 그녀의 등에 비친 햇살은 참혹했다. 그녀의 등줄기에는 뱀이 기어간 듯한 벌건 상처들이 수십 개로 얽혀 있었다.

  얼굴을 바닥에 댄 채로 그녀가 물었다.

  제 자세가 비슷한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습기에 잠겨 있었다.

  아,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그녀의 어깨를 안아 올렸다. 어느새 그녀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이봐요, 왜 그래요?

  제가 그 다나이드거든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에요?

  남편을 죽였거든요. 주, 죽여버렸어요.

  그녀의 어깨가 흔들렸다. 나는 그 어깨를 더 꼭 껴안았다.

  속이 시원해요. 정말이에요. 아녜요. 좀 미안하기도 해요. 그래도 별 고통은 없었을 거에요. 아니, 아니, 좀더 고통스럽게 죽였어도 좋았을 걸 그랬어요.



  그녀는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내 어깨로 그녀의 눈물이 더 많이 흘러내렸다. 그 사이 창밖으로는 완전히 해가 저물어 어둠이 깃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한참을 끌어안고 어둠이 세상의 빛을 이길 때까지 기다렸다. 그 어둠과 함께 나는 다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죽인 자, 죽은 자, 죽은 듯이 사는 자, 그 일체의 죽음들이 풍겨대는 냄새가 아니었을는지.

  내가 잠시 어깨를 풀고 나서 천천히 옷을 벗는 동안 그녀는 멍하니 앉아 내 동작을 지켜보았다. 남편을 살해한 여자. 다소곳이 앉아 나를 기다리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를 엎드리게 하고는 그녀의 등에 난 상처들을 정성스레 핥아주었다. 어떤 상처는 오래된 것이었고 어떤 상처는 최근의 것이었다. 상처에 따라 그녀의 출렁임이 달라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곧 하나가 되었다. 이불 섶 뜯어지는 소리, 들려다. 술상, 누군가의 발에 채여서 방 끝으로 밀려갔고 파도소리, 간간이 섞여들었다. 타액과 점액, 장판 위에 질퍽하게 깔렸고 30촉 짜리 전등의 불빛, 심하게 흔들렸다. 점멸하는 초라한 불빛 사이로 나, 죽음을 본다. 쾌락의 절정에는 죽음이 있었다. 일체의 욕망이 자진하는 지점, 일체의 사고가 정지하는 지점, 일체의 행위가 그 의미를 잃는 지점, 그곳에 죽음이, 살아 있었다.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잊었다. 사진 작업, 암실 속의 고독과 자유, 죽음과 나르시스, 피그말리온, 그리고 아내의 부정까지.

  그렇다. 아내는 다른 남자를 사랑했다. 다른 남자는 아내와의 정사를 캠코더로 녹화했다. 아내의 침실에서 그 테입을 발견한 나는 그 테입을 보았다. 그것은 조악했다. 건조해질 것. 그때 나는 다짐했고 지금도 그러고자 애쓰고 있다. 그러나 그 조악한 필름에도 한 가지 진실만은 남아 있었다. 아내가 특정한 누군가 앞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내가 아내를 니콘 카메라에 코닥 필름으로 정교하게 연출하며 찍어대는 동안, 누군가는 아내의 속살 깊숙히에 가라앉아 있는 욕망을 흡입하고 있었다는 것.

  우리는 다시 서로의 땀을 핥았다. 몸 여기저기에 남겨진 흔적들을 지워버리기라도 하듯이 우리는 나란히 누워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었다.

  선생님.

  예?

  제 비밀을 들어주셨으니 저도 선물을 드리고 싶어요.

  그녀는 비 개인 호수처럼 차분했다.

  선생님의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어요.

  제 소원을 알아요?

  전 알아요. 진짜 죽음을 보여드릴게요.

  나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그건 안돼요.

  아니 괜찮아요. 어차피 저는 여기 죽으러 온 거에요. 여기서 죽지 않는다 해도 사형 당하고 말겠죠. 내일 새벽에 첫 배가 있을 거에요. 그 배를 타고 나가시면 선생님께서는 아무 일 없을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남편을 죽인 건 정당방위가 성립할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그녀의 등에 난 상처들을 떠올리며 외쳤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청산가리를 탔어요. 콩나물 국에다 말이에요. 금세 죽어 나자빠지더군요. 그런데, 이상하죠, 선생님. 전 두렵지 않아요. 기껏 지옥에서 받는 벌이라는 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거라면서요? 그런 건 여기서도 얼마든지 하는 일이지 않아요? 그건 이 땅의 여자들이 낮이나 밤이나 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전 어릴 때부터 이와 죽을 거면 멋지게 죽고 싶었어요. 차를 운전하다가도 절벽이 있는 커브길이면 늘 핸들을 거꾸로 돌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어요. 선생님은 그런 적 없으세요? 그런데 얼마나 다행이에요. 선생님은 진짜 죽음을 찍고 싶으시고 전 진짜로 죽고 싶으니, 이보다 다행한 일이 어딨어요? 게다가 선생님은 제 죽음을 정말로 아름답게 만들어 주실 분이구요. 아, 전 나체로 목을 매달 거에요. 바다가 보이는 절벽 위에서 나무에 목을 매달고 웃으면서 죽어가고 싶어요.

  일어서며 옷을 입는 그녀의 표정은 마치 첫 전투에 참가하는 신병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전 그렇게 못합니다.

  나는 한 뼘쯤 뒤로 물러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군요. 저 혼자 갈 수밖에요. 그녀는 허위적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나는 멍하니 앉아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방문을 나서려던 그녀는 뒤로 돌아보며 말했다.

  참, 선생님. 끝까지 가보시지 않고는 그것이 끝인지 절대로 알 수 없을 겉 같네요. 어쨌든 고마웠어요. 그러고 보니 제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드렸나보네요.

  그녀를 삼킨 어촌의 어둠이 방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동안 나는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흔적 없는 연기가 흩어져 갔다. 내 방주에 실을 마지막 한 가지는 무엇이었을까. 죽음을, 진짜 죽음을 찍고 싶다는 내 욕망은 과연 어디에서 발원한 것이었을까.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황급히 담배를 술병 속으로 던져 넣고는 옷을 걸쳐 입었다.

그리고는 카메라 가방을 들고 그녀가 열고 나간 장지문으로 달려나갔다. 그저, 그녀를 한 번 보고 싶었다. 사진도 그 무엇도 그 순간에는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달빛이 교교한 모래톱을 따라 그녀가 멀찌감치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모래를 차올리며 세차게 그녀에게 달려갔다.

  오실 줄 알았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손에는 민박집 마당에 널려 있던 그물 몇 조각이 들려 있었다. 달이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우리는 해변을 걸었다. 곧 모래사장이 끝나고 언덕이 나타났다. 우리는 수풀을 헤치며 바다를 끼고 계속 걸었다.

  여기가 좋겠네요.

  그녀가 바다 쪽을 한번 휘 둘러보고는 말했다. 나도 그녀의 시선을 좇아 바다 쪽을 일별하였다. 멀리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보였다. 그녀가 털썩 주저앉은 언덕 위로 늙은 소나무의 구부러진 가지가 스산한 배경으로 자리잡았다.

  담배 한 대 주실래요?

  그녀는 내가 불을 붙여준 담배를 한 모금 빨더니 컥컥거리며 연기를 뱉어냈다.

  그러고 보면 전 참 바보 같이 살았어요. 여태 담배도 못 배우고 살았다는 게 갑자기 억울한 거 있죠? 그리고 남편 말고 다른 남자랑 자본 것도 선생님이 처음이에요.

심지어 배를 타본 것도 처음이고 섬에 와본 것도 처음이에요. 모두 다 무지무지 하고 싶었던 것들이에요. 혼자서 여행하는 것도 그렇고 여행하다 맘에 맞는 남자를 만나서 하룻밤 보내보는 것도 그랬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좀 쑥스러운 건데.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첫 연애를 겪는 사춘기 소녀와 다를 바 없는 모습.

  죽음을 앞둔 여자에게서 배어나는 수줍음.

  뭔데요?

  제 누드를 찍고 싶었더랬어요. 그래서 아까 선생님 작품을 그렇게 뚫어져라 봤던 거에요. 아, 지금 제 기분이 얼마나 좋은 지 선생님은 짐작도 못하실 거에요. 하루만에 이 모든 걸 다 해볼 수 있을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거든요.

  그녀는 다시 한번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또 한번 캑캑거렸다. 그러다가는 깔깔거리며 웃어대기를 반복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나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내 소멸할 존재의 아름다움. 나는 그 아름다움을 어떤 도구로도 담아낼 수 없음에 절망하였고 어떤 기기로도 재생할 수 없음에 다시 절망하였다. 로댕의 어떤 조각보다도 아름다운 그 순간의 그녀를 보며 나는 피그말리온의 신화를 다시 떠올려야만 했다. 지상의 어떤 여자보다도 자신이 만든 조각을 사랑하여 마치 사람에게 하듯이 장신구도 선물하고 식사까지 가져다 주었던 피그말리온. 그러나 그런 피그말리온조차도 종국에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자신이 만든 상아조각을 아내로 점지해달라고 기원하였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자 그다지도 기뻐했다지 않은가. 그렇다. 어떤 조각보다도, 그 어떤 예술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살아있는 존재, 불완전한 인가, 그 유한함에 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녀의 볼을 가까이하고 입을 맞추었다. 우리의 입술 언저리로 그녀와 나의 눈물이 빙하처럼 천천히 흘러내렸다. 긴 입맞춤이 끝나고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 꼭 찍어주셔야 해요.

  그 말을 힘주어 말한 후에 그녀는 마치 무대에 등장하는 무용수처럼 우아한 동선으로 움직였다. 먼저 티셔츠와 바지를 벗고는 나뭇가지에 그물을 걸고 매듭을 만들었다. 매듭 속으로 하얀 목을 집어 놓고 알맞게 매듭을 조였다. 파리한 달빛이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훑어 내렸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그네라도 타듯이 훌쩍 몸을 던졌다.

  나는 사각의 뷰 파인더를 통해 흐릿하게 드러난 푸른 피사체를 보았다. 싶은 밤, 섬 한 구석에서는 연달아 플래시가 터졌다. 나는 한 통의 필름을 완전히 소모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그녀의 표정과 몸짓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의 타이머는 시시각각, 그녀가 죽어 가는 일초일초를 기록할 것이었다. 나는 흐려지는 눈을 애써 치뜨며 달빛 아래에서 서서히 사그라지는 나신을 담아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렌즈를 바라보려고 애쓰던 그녀.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더 이상 필름이 돌아가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푸른 새도 날개를 접었다. 나는 뷰 파인더에서 눈을 뗐다. 그리고는 고요히 매달린 그녀의 눈을 직시하였다. 내 작품 속의 아내처럼 그녀도 내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피하지 않았다.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그녀의 시선에 내 시선을 맞추며 아름다운 살인자의 소멸을 축복했다.

  다음 날 새벽, 연락선은 일찌감치 육지를 향해 떠났고 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이 그 배에 올랐다. 섬이 작아져 종내는 하나의 점이 되어 파도에 부서져버릴 때까지 섬 쪽을 바라보았다. 그 섬에서 그녀는 내게 죽음이 아닌 삶을 건네주고 떠났다.

  아름다운 그녀를 향해, 그리고 그 섬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나는 한 통의 필름을 던졌다. 다나이드의 승천에 벗할 동무는 그것으로 족할 것이었다. 필름은 물결 위에서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멀리멀리 작아져갔다. 작아지는 필름을 향해,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름다움이란 죽음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나 죽음보다 숭엄하고 삶보다 저열하다. 그 여름이 내 몸에 새긴 문신의 글귀는 바로 그것이었다.


 

출처 - 좋은 글의 美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