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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바보각시 - 이윤택

바보각시 이윤택 작/이윤택 연출/ 연희단 거리패 (등장인물) 각시 맹인가수 걸식소년 미카엘 (맹인가수와 걸식소년 역은 한 인물로 표현될 수 있다.) 취객 파출소장 실직청년 밤처녀 (소외자 뒤에 종말론 교주가 됨) 우국청년 앵벌이 춤추는 꼭두 노래하는 꼭두 [경] 1경 아름다운 사람을 기다리며 ((무대는 신도림역전 풍경이다. 신도림은 新都林으로 그 뜻은 수풀 속에 난 새로운 길이다. 수풀 속에 난 새로운 길, 상당히 의미심장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는 지금 여기 신도림역 일대는 서울의 도시 빈민 밀집지역으로 주의로 구로공단을 끼고 서울과 주변 위성도시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계지로서 지금 여기 신도림은 유난히 종말론이 성행하고 온갖 야바위꾼이 들끓는 서울의 오지이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 [안내..

[희곡] 이강백 - 자살에 관하여

자살에 관하여 / 이 강백 등장인물 남지인 - 라디오 방송국 프로듀서 유경화 - 소설가 무대 독신자 아파트, 라디오 방송실 이 연극은 남지인이 살고있는 독신자용 아파트와 라디오 방송실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아파트와 방송실이 각각 별도의 무대로 독립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 방송실 장면에서는 아파트의 붙박이 장롱이 두 쪽으로 나뉘어 벌어지면서, 벽 뒤에서 방음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이 「방송중」이라는 전광표시판과 함께 나타난다. 독 신자용 아파트의 구조는 침실, 거실, 부엌의 구분이 없는 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침대가 놓인 곳이 침실, 식탁과 냉장고가 있는 곳이 부엌, 소파와 탁자가 있는 곳이 거실의 용도로 쓰여진다. 남지인은 그러한 비좁은 공간 속에 크고 작은 생활도구들과 장식품들을..

[단편소설] 파산세일 - 백민석

파산 세일 백민석 ꡒ밴댕이 소갈머리!ꡓ 박태자는 거실 소파에 앉아 졸았다 깨었다 하면서, 탁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배앤댕이, 배앤댕이…… 그녀는 그닥 추위를 타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히터도 얼마 전에야 켰다. 히터를 켜니, 실내온도를 겨우 19도로 맞춰놓았는데도, 기분이 나빠졌다. 실내온도가 높아진 탓이 아니었다. 히터에 의해 데워진 공기가 기분을 가라앉히고, 탁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바지를 벗어던지고, 팬티 바람으로 돌아갔다. 손님이 찾아오거나 외출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팬티에 히프를 덮는 기다란 티셔츠만으로 온 집 안을 쏘다닐 것이었다. 겨울이 지날 때까지 항시. 박태자는 깜빡깜빡 정신이 나갔다 들었다 하다가, 문득 눈을 떴다. 흐렸다. 수정체가, 박아넣은 유리 눈알처럼 투명하니 텅 비어..

[단편소설] 백민석 - 없는 작가

없는 작가 백민석 ci가 찾아왔다. 뭘 잃어버렸으니, 행방을 좀 알아봐달라는 것이었다. 미망인이 되기엔 너무 젊지 않아? 하고 항의하는 표정이었다. 당혹이나 놀람보다는, 노여움이 느껴졌다. 아직 대상을 찾지 못한. 그래서 나는 ci의 얘기를 귀담아듣는 척하다가, 그녀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거절한다면 그녀 이마를 벌겋게 물들이고 있는 노여움이 대상을 찾게 될 것 같아서였다. 격한 김에 과장된 표현을 쓴 것이겠지만 ci는 역시, 미망인이 되기에는 너무 젊다. 나는 그녀의 실제 나이도 안다. 결혼까지는 봐줄 수 있어도 임신이나 아기, 더욱이 미망인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게, 낯 뜨겁게 들릴 나이다. 몇 년째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버린 싱글인 총각의 편협해진 눈엔 거의 그렇다. ?결혼은 안 해?? ci는 그제..

[단편소설] 너의 의미 - 김영하

너의 의미 김영하 1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뇌 속에 숨어 있던 작은 성기가 힘차게 발기하는 느낌을. 저 지중해 어딘가에 있다는 누드 비치에 처음 당도한 관광객처럼 독자들은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책은 밝게 웃으며 어서 오라고 우리를 향해 손짓한다. 요염한 그 책들은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암시를 풍기면서 손만 대면 가랑이를 벌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르가슴이 멀지 않았다. 바야흐로 우리의 뇌는 팽창하여 부풀어오르는 중이다. 우리는 허겁지겁 아무 책이나 뽑아 펼쳐댄다. 외설스런 장면이다. 그러나 이 누드비치의 풍경이 눈에 익으면 어느새 정신의 성기는 늘어지고 광대무변해 보였던 가능성의 세계는 1제곱미터 면적의 책상으로 한정된다. 졸음이 쏟아지거나 식..

[단편소설] 갈매기 - 이윤기

갈매기 이윤기 "...바닷가에서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은 갈매기를 좋아해서 날마다 바닷가로 나가 갈매기와 놀았다. 갈매기는 그를 도무지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날아와 함께 놀아주었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이웃사람들로부터 그 소문을 듣고는 아들에게, 내 들으니 너는 매양 바닷가로 나가 갈매기를 벗삼아 논다고 하니, 나도 갈매기와 놀고 싶다. 그러니 몇마리 잡아 와서 나도 재미있게 놀게 해다오, 하고 말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라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리 하겠다고 하고는 바닷가로 나갔다. 그러나 갈매기는 그의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더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그는, 백구야, 날지를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다, 이런 노래를 불렀지만 갈매기는 끝내 그의 곁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이것은 그..

[단편소설] 당신의 나무 - 김영하

당신의 나무 김영하 1 어렸을 적 당신은 떡갈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이제는 제목도 생각나지 않고, 책의 장정도 떠오르지 않는, 그저 그렇고 그런 동화책에서였을 것이다. 거대한 나무의 밑둥엔 위로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심술궂게 다문 입이 그려져 있었고, 그 삽화들은 어린 당신을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무. 그때부터 당신은 나무를 두려워했다. 미친 여자의 머리카락처럼 산발하며 뻗어 내려간 뿌리와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는 나뭇잎들. 나무들은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곳에 있었고 당신이 죽은 뒤에도 계속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 시절 당신의 집 앞에도 나무가 있었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아카시아 나무. 나무는 지붕을 덮었고 몇몇 가지는 당신 방 창문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둥치로는 개미들이 줄줄이 기어오..

[단편소설] 바람이 분다 - 김영하

바람이 분다 김영하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은 분다, 바람이 분다. 다섯번을 되뇌고 하늘 을 본다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를 끈다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를 끈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한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다 게임을 한다. 게임이 한다. 게임을 한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 시간은 가지 않는다. 불을 끈다. 이제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그녀가 온다 머리를 짧게 자른 그녀가 온다. 치렁한 흑갈색 원피스에 머리를 짧게 자른 그녀가 온다. 한 때 나를 미치게 했던 치렁한 흑갈색 원피스에 머리를 짧게 잘라 더 고혹스 러워진 그녀가 온다. 1 훼밍웨이의 소설 킬라만자로의 표범을 읽고 있었다. 그 소설엔 왠지 커피가 어울릴 것같 아 ..

[단편소설] 손가락 - 이윤기 (9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수록)

손가락 (이윤기) "나는 올라가고 싶지 않아. 게다가 이 술, 내일 아침까지 말짱하게 깰 것 같지 않고……." "그래도 선생님……." "그러니까 상선사는 너희들이나 올라갔다 내려오너라. 완허 스님 찾아보는 거 잊지 말고……." 한재기 교수가 전날 밤에 이렇게 분명히 일렀는데도 불구하고 학생 대표는 신새벽에 한 교수와 내가 자고 있던 여관방 문을 두드리면서, 함께 상선사 오르자고 졸랐다. "선생님께서 올라가 주시면 저희들은, 저희들 눈으로 볼 수 없던 것들도 볼 수 있게 됩니다." "지금 그 눈으로 보고 와도 좋아. 내가 본 것은 내 것이지 너희들 것이 아니야. 그러니까 힘 좋은 너희들이나 올라갔다가 내려오너라." "하지만 선생님께서 보신 것을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시면 저희들은 선생님 눈으로……." "네가..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中 [모텔 탈출기] 박동식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中 [모텔 탈출기] 박동식 영화화가 진행중이다. ---------------------------------------------------------------- 이건 정말 큰일이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아끼던 200만 원 짜리 도자기를 깼을 때보다 더 혼이 날 것 같다. 물론, 그 도자기보다 비싼 건 아니지만, 욕실에 나뒹굴고 있는 이 육체는 자칫하면 내 인생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 어쩐지 너무 쉽게 모텔까지 데리고 오나 했는데, 사람일이란 새옹지마 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 터져 버린 것이다. 엄마의 화난 얼굴과 이제 한 달 후면 결혼하게 될 나의 피앙세 (fiance), 정화의 실망한 얼굴이 오버랩 되기 시작한다. 두 시간 전, 채팅에서 만난 가출소녀와 20만원으로 밤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