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로만 Narrative

[시나리오] 다우징 - 김윤태

버블건 2007. 11. 17. 09:46
감독 : 김윤태

다우징(가제)


진(15세, 여)

1. 어둠속에서부터
간유리의 벗겨진 페인트 무늬들이 서서히 떠오른다.
부식된 초록색의 무늬들은 마치 이끼처럼 보인다.

2. 화면안으로 들어서는 한 인물의 뒷모습, 상반신,
소켓에서 전구를 돌려 빼낸다.
다른 전구를 갈아끼우고 꼭지를 돌리면 희뿌연 산광이 가득찬다.

타이틀 - 다 우 징 -

3. 진은 커다란 거울이 달린 낡은 옷장 앞에 서 있다.
군데군데 옻칠이 벗겨진 반쯤 열려진 옷장안에는 퇴색한 여름
원피스 몇벌이 걸려있다.
바닥에는 풀이 먹여진 이불 안감들이 접혀져있고,
진은 옷들 사이에 얼굴을 반쯤집어넣고 매캐한 좀약 내음을 한동안
흡입한다.

4. 나무마루가 깔린 교실.
장마의 끝물로 양말을 적시고 있는 바닥,
진은 나무의자에 눈을 감고 앉아 있다.
마주앉은 교사는 조용히 초시계의 꼭지를 누르고 째깍이는 초침의
소리가 점차 커진다.
교사는 서서히 초시계를 진의 한쪽 귀에 가져 가지만 진은 멈칫하며
움직이지 않는다.
교사는 시계를 거두고 다시 이를 반복한다.
불안하게 올라가는 진의 한쪽 손.

5. 복도.
교사의 뒷모습이 보이고 책상 위에는 물주전자와 몇개의
알약상자가 놓여져 있다.
이름이 불리우면 진은 걸어나오고 교사가 건네주는 한 웅큼의
알약을 받아 입안에 털어넣고 냉수를 한모금 마신다.
구역질은 진의 목젖을 자극한다.
'몸속에 벌레가 많은 거래'

6. 거리
골목을 빠져 나오는 방역분무차의 꽁무니,
자욱한 소독약의 연기속을 진과 아이들은 눈을 감고
흡입하며 뒤쫓는다.
그녀는 어느새 홀로 된 것을 깨닫는다.
현기증.

7. 극장
진은 복도의 벽에 한쪽 귀를 댄채 숨을 죽이고 걸어온다.
창문에서 들어서는 늦은 오후의 햇볕,
객석의 출입문에 멈춘 진은 두텁게 늘어져 있는 자주색
벨벳 커튼을 만지작거린다.
이윽고 진은 커튼을 서둘러 떼어내어 복도를 빠져나온다.

8. 기차역
대합실, 진은 마악 보관함의 뚜껑을 닫는다.

9. 정차중인 기차안.
작은 거울이 달린 세안장
창문밖으로 철로가 무성한 차량기지의 모습이 보이고 진은
거울위에 달인 작은 여닫이 문을 비스듬히 열고 보관함의
열쇠를 집어넣는다.
기차와 레일사이를 빠져나오는 진의 모습

10. 헌책방
통로가 비좁은 실내에 진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선다.
먼지속을 뒤적이며 책더미를 살펴보는 진,
한동안이 지난후 그녀는 구석에서 꽤 두툼한 책을 한권 꺼낸다.
'수장'∼으로 시작되는 백과사전 중의 낱권.
진은 가방에서 오래된 앨범하나를 꺼내 주인에게 보인다.
펼치면 어느 먼나라의 여왕들이 웃고 있는 소인이 찍힌
우표가 가득하다.
앨범을 주인에게 주고 책을 얻어 나오는 진.

11. 저녁, 알전구가 휘황한 상가집앞.
유유히 오가는 상제들의 우울한 젖통,
마당 한자락, 웅얼대는 조객들의 사이,
진은 한아이와 같이 화투를 한장씩 바닥에 젖혀가며
운세점을 본다.
연속되는 흑사리

12. 상가의 전등이 배경으로 보이는 신작로
진과 아이는 오락가락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부시시한 흰 깃털의 공은 수차례 공중을 왕복한다.
그들은 이내 공을 잃어버린다.

13. 저녁 방안.
진은 금색줄자로 자신의 신체를 측정한다.
목과 가슴둘레와 양팔의 너비와 그리고 지체,
그녀의 곁에는 옷장에서 꺼내놓은 원피스들이 나란히 펼쳐있다.
진은 면도칼로 오래된 남자 자켓의 안주머니에 새겨진
한자이름을 도려낸다.

14. 방안, 재봉틀.
흰천으로 덮여있는 재봉틀위에 펼쳐있는 자주색의 벳벳커튼,
시선을 옮기면 책방에서 바꿔온 백과사전이 펼쳐있고
그안에는 단정한 옷본 그림들이 선명하다.
진은 커튼위에 손을 얹어놓고 분필로 손가락의 본을 뜨고 있다.

15. 밤 벌판,
막대로 고정된 빨래줄 위에는 흰시트들이 알코올에 젖은 채 휘날리며
불타오른다.

16. 밤, 간이 유원지
들뜬 위락의 소음들이 뒤섞여 있는 유원지의 전등,
경품추첨장, 연신 경품번호를 불러대는 핸드마이크의 기묘한
억양속에 탁자에 앉아 색연필로 경품종이에 표시를 하고 있는 진
그녀는 벨벳으로 가봉한 소매없는 원피스를 입고 있다.
색연필이 들린 손에는 목이 긴 검은 벨벳의 장갑.

17. 밤, 벌판.
들판으로 이동되는 가재도구들,
식탁, 재봉틀, 의자가 흰 천으로 하나씩 덮여진다.

18. 밤, 달리는 버스안.
어두운 실내등 밑에는 흔들리는 자욱한 승객들의 모습.
손잡이를 잡은 그들의 팔들, 어둠속의 바깥 풍경이 지나친다.
터널을 지나 이윽고 버스가 서서히 정차하면
승객들은 하나씩 하차하고 버스 뒷편 침침한 그늘속에
서 있던 한 승객이 진의 곁에서 몸을 풀며 꿈꾸듯 떨어져
나온다.
망연히 서있는 진의 모습.
물기가 흥건한 버스통로에는 물에서 건져 낸 듯한 한 신체가
누워있다.

19. 밤거리, 정차하는 버스
문이 열리면 더듬듯 내려서는 진.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코피 때문에 고개를 뒤로 젖힌채
무방비 상태로 보도에 내려선다.
길에는 색바랜 숲의 대형사진들이 반복해서 부착된 공사장의
야간등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걷기 시작하는 진,
코피는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발목을 적시는 혈흔.

20. 새벽, 공중목욕탕
흰 증기가 피어오르는 커다란 공동욕조.
진은 옷을 입은 채로 욕탕안에 혼자서 앉아있다.
물은 넘쳐 타일 바닥 위로 흥건하고
진은 동그랗게 얼굴을 물밖으로 내놓은 채
수중으로 가라앉는다.
새벽의 빛이 증기속으로 가득찬다.

끝.